[장서 산책] 이석주 '나도 노인이 된다'
[장서 산책] 이석주 '나도 노인이 된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1.18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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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할 것 같은 젊음 뒤로 살며시 다가오는 노년!
우리는 어떻게 그와 마주할 것인가?

이 책의 지은이 이석주는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 중국철학 대학원 연구생, 동서사상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동국대, 대진대, 창원대에 출강하였으며, 유원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책은 머리말과 8장의 본문,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 차례는 1. 노년의 공간-자칭노년과 타칭노년, 2. '홀로 있음'과 노년-아침 햇살 같은 깨달음, 3.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퇴계 이황의 노년, 4.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라-우암 송시열의 노년, 5. 노년의 욕심과 할아버지의 육아 일기-묵재 이문건의 노년, 6. 가훈으로 미래 세대와 소통하다-난계 박연의 노년, 7. 꽃 떨어지는 시절이 봄보다 낫네-괴애 김수온의 노년, 8. 노인이라서 유쾌한 일-다산 정약용의 노입으로 되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년층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 확립에 대한 문제의식에 있다. 다시 말해서 노년은 자신에게 직면한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회의와 위기의식,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14쪽)

이 책에서는 노년이 지향하는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길과 올바르게 가야만 하는 노년의 길을 조선조 유학자들의 노년의 공간 속에서 알아보고 있다.

1. 노화와 노년, 노입의 의미

'노화(老化)'는 생물이나 그 기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물질의 기능이나 성질이 이전의 시기보다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노년(老年)'은 나이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1964년에 정한 만 65세 이상의 연령층을 말한다. 한편 2015년, UN은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 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 사람의 연령 단계를 5단계로 나누었다. 단계별 나이를 보면, 0세에서 17세까지는 미성년자, 18세에서 65세까지는 청년, 66세에서 79세까지는 중년, 80세에서 99세까지는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으로 나누고 있다.(16쪽)

나는 UN에서 정한 연령 단계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올해 만 64세이니 청년이 아닌가? 괜히 노인이 다 되었다고 기죽어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노인(80세)이 되려면 아직 16년이나 남았으니, 그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야겠다.

'노입(老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노후', 이른바 노년이 된 이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노입'은 중장년에서 노년의 계층으로 접어드는 계층의 변화에 대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다.

초로기에 '노입'으로 진입하면서 직면하는 가장 큰 한계는 내면에서 이해하는 자신과 외부로부터 보여지는 자신 간의 격차와 갈등이다. 그 누구라도 생애 첫 경험인 '노입'을 하면서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노년은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살며시 다가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노입에 무방비의 상태로 직면하게 되면서 다양한 정신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217~218쪽)

2. 퇴계와 다산의 '홀로 있음'

노년이 되어 직면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홀로 있음'이다. '홀로 있음'은 '함께 있음'과 대립되는 말로 이 책에서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있지는 않으나, '고독'보다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조정에서 벼슬을 사양하거나, 유배를 당한 후에 '홀로 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향리로 돌아간 퇴계는 '학이종신(學以終身)'에 학문적인 의지를 반영하고 '홀로 있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퇴계가 '학이종신'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독서이며, 독서 방법으로는 '경독(耕讀)'을 강조하였다. 퇴계는 경독에 대해 '그저 익숙하도록 읽는 것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비록 글의 뜻은 알았더라도, 만약 익숙하지 못하면 읽자마자 곧 잊어버리게 되어, 마음에 간직할 수 없을 것이다. 반드시 배우고 난 뒤에 또 복습하여 익숙해질 공부를 더해야, 비로소 마음에 간직할 수 있으며, 또 흠씬 젖어드는 맛도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78쪽)

퇴계가 이해한 '홀로 있음'은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충돌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 즉 노년과 젊은 세대와의 지속적인 긴장관계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을 실질적인 생활 속에 그대로 투영해서 이해하였다.(71쪽) 퇴계는 임종의 순간에도 유학자로서 자신의 성찰을 위한 '홀로 있음'의 실천을 활발한 생명력을 가진 매화나무와 같이 하였다. 퇴계 자신은 마치 수명을 다하고 병이 들어 쓰러지는 고목과 같았지만, 자신의 곁에서 항상 몽실몽실 돋아나는 새싹을 보여줄 것 같은 매화는 분명 그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매화의 고결함은 퇴계에게 행복한 마지막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93쪽)

다산은 유배지에서 일상적인 삶을 꾸려 나가기 위한 가장 큰 원동력을 독서에서 찾았다. 그가 독서를 통해서 학문에 쏟았던 열정은 육체적인 한계와 현실적인 곤궁으로부터 스며드는 '홀로 있음'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노입의 공간을 회복하기 위한 노유(老儒)의 혼신의 노력이었다. 또한 그가 직면하고 있는 곤궁한 현실적인 한계를 글을 쓰는 것으로 극복했다.(226쪽)

3. 묵재 이문건의 '양아록'

노인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문제가 손자의 양육, 또는 손자와의 갈등이다. '양아록(養兒錄)'은 묵재 이문건이 손자를 양육하면서 쓴 일기문이다. '양아록'에서 보여준 손자와의 갈등과 저항에서 묵재의 선택은 조급히 화를 내는(躁怒)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감정의 표현을 체벌에서 찾았다. 그는 손자와의 갈등을 풀기 위한 실마리를 자신의 노욕과 성급히 화내는 성질을 바로잡는 자기 성찰에서 찾았다. 그리고 손자에게 쓴 마지막 일기를 통해서 손자에게 쏟았던 몇 가지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전했다. 첫째, 손자 숙길이 시종일관 학문을 완성하여 가문을 세우기를 바랐다. 둘째, 묵재가 손자의 학습을 위한 멘토이지만, 간혹 손자의 충격적인 반항의 이유를 적절히 파악하기로 하였다. 셋째, 이러한 정황을 자각할 때 비로소 묵재가 가졌던 손자에 대한 마음이 숙길의 마음 속에 깊이 전달되었을 것이다.(154쪽)

묵재의 노년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서 자주 화를 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일에도 조급하게 화를 낸다. 노인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화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조선의 유학자 중에는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노년이 되면서 불교와 도교, 도가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표적인 유학자로 퇴계 이황, 묵재 이문건, 괴애 김수온,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다. 묵재는 무당을 불러 점을 치고 굿을 했으며, 다산은 초의선사와 교유하였다. 주유겸불무(主儒兼佛巫)라 해서 유학을 위주로 하는 생활을 하였지만 불교 등의 종교에 끌리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노입'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조선의 유학자들도 노후에는 다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다. '홀로 있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미래 세대와 소통하면서 지내기를 바랐다. 나도 그렇게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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