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에세이 6] 렘브란트의 '장님이 된 삼손'
[성화에세이 6] 렘브란트의 '장님이 된 삼손'
  • 이동백 기자
  • 승인 2021.01.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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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 유화, 프랑크푸르트 여행 슈테델 미술관
1636, 유화, 프랑크푸르트 여행 슈테델 미술관

“들릴라가 삼손을 자기 무릎 위에다 재우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사사기 16장 19절~21절)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삼손과 들릴라> 연작 가운데 가장 참혹한 광경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이방 여인의 끈질긴 유혹에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발설한 삼손이 감당해야 할 수모를 이토록 생동감 넘치게 재현한 화가는 일찍이 없었다.

어두운 공간 안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와 삼손의 전신을 덮치고 있다. 그 빛은 블레셋 군사들이 들이닥친 시각과 일치한다. 빛이 눈으로 끼쳐드는 찰나 블레셋 군사가 내지른 칼에 눈이 찔리는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을 수습하기 전에 블레셋 군사 둘이 합세한다. 그중에 하나는 삼손의 무성한 나룻을 낚아채고 삼손을 뒤로 자빠뜨리고 있다. 머리털이 힘의 상실을 상징한다면 턱수염은 패배의 상징일까? 삼손은 순식간에 머리털을 잃고 수염의 자유를 상실하고 만다. 일련의 사태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블레셋 군사의 벗겨진 투구가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삼손의 손목을 쇠사슬로 묶어버린다. 눈에 칼이 박혀들자 삼손은 고통을 참지 못하여 이빨을 드러내며 눈살을 찌푸린다. 참혹하기 그지없다. 급기야 삼손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버둥을 쳐 보지만 이미 때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삼손은 태양의 자녀로 선택된 나실인이었다. 그는 맨손으로 사자를 잡아 죽이고, 한때는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삼천 명을 때려죽인 장사였다. 그는 힘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죽임을 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은 물론 힘의 원천인 머리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상단, 오른손에 가위를 든 들릴라가 왼손에 잘라낸 삼손의 머리털을 들고 승리를 확인하고 있다. 빛을 밑에서 받은 들릴라의 얼굴이 상당히 사악하게 보인다.

한 여자의 꼬임 때문에 어이없이 날려버린 목숨처럼, 밖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삼손의 머리털이 허망하게 날린다, 삼손에게 머리털은 남성적 힘의 상징인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언약의 상징이었다. 삼손이 스스로 머리털을 잃은 것은 남성의 상실을 의미하면서 하나님에게 한 언약의 파기였다. 이는 곧 삼손의 파멸을 뜻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

터키 복장을 한 블레셋 군사 하나가 창을 들어 곧장 삼손의 심장을 찌를 태세인데, 빛을 희미하게 반사하는 창끝이 저르릉 떤다. 터키 복장의 블레셋 군사는 역광의 위치에 서 있어서 어둡다. 빛을 받은 삼손과는 극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뜻을 이루려면 과녁은 밝아야 하고 궁사는 은밀히 숨어야 하는 법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매몰되어 사태를 그르쳐서 몸부림치는 일이 많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으로 규정한 인간은, 자기 미모에 도취한 나머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버린 나르시스이다.

사람은 자기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을 지니고 산다. 그 아킬레스건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권위에 매여 있다. 그 권위에 도전했을 때 오직 파멸이 따를 뿐이다. 언제나 인간은 신 앞의 단독자이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 한계이다.

자신의 힘에 매몰된 삼손의 만용을 경계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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