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가보(家寶)를 빚는 설봉 스님
천년 가보(家寶)를 빚는 설봉 스님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01.13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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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자존심을 지킨 진정한 도공
한 작품을 만나기 위해 2천여 개를 깨트렸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 황학리 '토향암 흙내음 도예마을'의 마지막 공정에서 설봉 스님이 불을 지피고 있다.  토향암 제공
천년의 산실이자, 산파의 정성으로 기다리는 흙내음 도예마을 가마.  유무근 기자

도예가, 설봉(卨䭰) 스님

경북 칠곡군 지천면 황학리 ‘토향암(土香痷) 흙내음 도예마을'에는 설봉 스님의 개인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생산지로는 여주, 이천, 김해 등이 있고, 박물관으로는 문경 도자기 박물관, 김해 ‘분청’ 박물관 등 지역 도자기 박물관이 있으나, 개인 도자기 박물관으로의 인가는 토향암 박물관이 유일하다.

토향암 마당 우측에 장작 가마 아궁이들이 큰 입을 벌리며 수문장 역할을 한다. 토향암 3층은 법당이며, 1, 2층은 스님의 분신인 생활자기, 수조 작품과 고서들이 있는 사찰 전시장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혼(魂)과 불(火)의 합작으로 빚어낸 찬란한 색상에 보는 이들은 우주 만물을 형상하는 아름다움을 넘어 신성함에 옷깃을 여민다.

토향암 간판 뒤 3층 건물에 법당과 전시장이 있다.  유무근 기자

우주 만물을 형상하는 설봉 작품

설봉 작품 10여 개는 국립박물관에 등록되어 있다. 거래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수천 점이 단독 수작업 한 것이란 점과, 작품마다 수백 또는 수천 대 일의 확률로 완성품이 되어 그 형태에 따라 이름이 지어지고 브랜드가 있는 ‘설봉’(卨䭰)' 작품이 된다. ‘산 두고 산에 가네’, ‘하늘 끝에서 온 미소’, ‘사랑방과 정’, ‘만추’, ‘내일은 있다’, ‘빛은 초원에 뛰어놀고’, ‘세월이 놀다 간 자리’, ‘동토의 생명’, ‘화려한 변신’, ‘별이 쏟아지는 해변’, ‘엄마의 새댁시’ 등이 설봉 작품의 이름들이다.

도자기는 깨어지지 않은 한 천년을 이을 수 있어 사람의 수명보다 긴 생명력을 지닌다.

설봉 스님의 제조 공정은 원료, 성형, 정형, 시유, 조각 그림, 유약, 소승까지 7단계나 된다. 사찰 전시장의 7단계를 거친 스님의 단독 작품들은 남다르게 인정받고 있다. 경기도 여주, 이천, 광주 등에서는 단계마다 분업화되어 있어 조각이나 성형 한 가지만의 기술로도 여러 집을 순회하며 똑같은 조각을 만들어 낸다. 혼자서 순수한 혼을 담아 제작하는 설봉 스님의 작품은 그래서 더 귀한 가치를 지닌다.

설봉 스님(가운뎨)이 전시장을 찾은 시니어매일 1기 4부 기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 

 

도자기는 우리 문화의 자존심

집요하게 가격을 흥정한 일본인 수집가가 있었다. 도자기 네 점에 1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그 수집가는 몇 달 후 직접 와서 10억 원(약 1억 엔)을 주겠다고 했지만, 팔지 않았다. 왜 팔지 않느냐는 물음에 "홋카이도와 바꾸자고 했더니,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고 한다. 우리나라 도자기의 가치와 숭고한 우리 문화의 자존심을 지킨 설봉 스님은 진정한 도공(陶工)이다.

스님은 "혼신의 정성으로 태어날 분신에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산파의 마음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토향암의 장작 가마는 석 달 전부터 준비하여 일 년에 네 번 도자기를 생산한다. 지천면의 ‘신동 아카시아 축제’에 매년 토향암 도예 전시회를 한다. ‘만추’, ‘별이 쏟아지는 해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다정이었네’, ‘자작나무’ 등 10여 점의 작품은 유약 배분과 불(火)이 최상인 상태를 뚫고 2,000:1의 경쟁으로 태어난 작품이다. 최고의 완성도를 위해 2천 개를 깨고 한 작품을 건지는 것이다.

설봉 스님의 저서로 '눈물로 배운 찬불가'와 '나의 길은 없어도 내가 갈 길은 있다'가 있다.  유무근 기자

 

자연을 재료로 탄생한 오묘한 빛깔

설봉 스님은 "주재료는 지천에 널브러져 있다. 바닷가, 산사태 현장이나 고물상에서도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다. 울진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청석 조각과 금강송을 배합한 것, 제주도 돌하르방과 화산석 잔해들을 갈아서 만든 완성품은 두드려보면 소리가 투명하고 맑다. 검은빛 도자기는 포스코 철 잔해물의 녹, 황토, 은행나무 가지를 배합한 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또, 경북 상주 백토, 칠곡군의 밤나무 태운 재와 전남 강진 청자토를 배합해서 만들기도 하는데 천 개를 구우면 작품 한 개를 건지기도 힘든다. 구리의 녹을 섞은 자기도 200대 1 정도로 성공 확률이 낮다."라고 설명한다. 40년간 1,700개를 버린 것과 4천 개를 깨어버리고 한 개 나온 작품도 소개되었다.

한 점의 작품을 건지기까지 수천 개를 깨뜨려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유무근 기자

 

설봉 스님의 삶

스님은 군부대, 포스코, 기업체, 대학교 등지에서 요청을 받아 강의를 한다. 종교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는다. 맑고 밝은 영혼이 부처님, 예수님, 성모님 마음이기 때문이다. 젊은 층이 스님 강의를 선호한다. 단체로 강의 요청이 오면 일정을 조율하여 사찰에서 강의하기도 한다. 강의가 끝난 뒤, 스님은 자신이 쓴 ‘눈물로 배운 찬불가’와 ‘나의 길은 없어도 내가 갈 길은 있다’와 같은 책들을 친필로 정서하여 선물하기도 한다.

지역 주요 대표들을 초청한 백선기 칠곡 군수가 설봉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유무근 기자

 

설봉 스님은 불기 2515년에 출가하여 40년 동안 그늘진 곳에서 나눔을 실천해 온 봉사자다. 문학과 봉사 정신이 생활화된 스님은 불우 청소년 돕기, 소년·소녀 가장 돕기,  위안부 할머니 돕기 등 사회봉사활동으로 ‘전시전’, ‘도예전’, ‘목공예’, ‘서각 개인전’ 등을 30여 회 열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전통 공예전 목공예 특선과 전국 각 지역 공예전 민속 대상, 금상, 은상, 장려상을 두루 수상한 경력도 있다. 수필로 등단하여 중앙 일간지에 칼럼도 썼다. 두 편의 저서도 출간했다. 요즘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고 상좌 스님과 전수자도 모두 군에 입대했지만, 나눔을 실천하는 설봉 스님의 삶은 지금도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