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㊵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㊵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 정재용 (엘레오스) 기자
  • 승인 2021.01.11 17: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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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산 너머로 사라지던 해를 바라보며 듣던 ‘올드 랭 사인’
칠흑 같은 섣달그믐 밤 지나면 햇빛 찬란한 새해

한 해는 옥산서원이 있는 도덕산(703m) 너머로 사라지는 해와 더불어 갔다. 저녁 소죽을 끓이던 소년은 짚단을 아궁이 깊숙이 밀어 넣고는 장독간 쪽으로 달려갔다. 해는 아직 한 발이나 남아 있었다. 햇살은 어래산 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타고 소년의 얼굴로 쏟아졌다. 산등성이 위의 두툼하게 쌓인 구름은 석양에 붉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해에게 나온 불을 댕길 기세였다.

날마다 해는 양동산 위로 솟아올라 도덕산 산등성이 너머로 넘어갔다. 지금 그 해가 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일 하루는 오늘 하루와 다르듯이 내일 해는 오늘 해가 아닐 터였다. 거기다 한 해가 간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소죽간 부뚜막 라디오에서는 벌써 며칠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내 보내고 있었다. 로버트 번스가 1788년에 작곡한 ‘그리운 옛날’이라는 뜻의 스코틀랜드의 민요라고 했다. 교회에서는 그 곡에 맞춰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찬송가를 불렀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 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졸업식 노래’ (강소천 작사)도 그 멜로디였다. 1948년 안익태 작곡 ‘코리아판타지’(Kores Fantasy, 한국 환상곡)가 나오기 전까지는 애국가도 이 곡에 맞춰 불렀다.

아버지는 온종일 거름더미 터에 매어 두었던 소를 외양간으로 들이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먼저 외양간에 새 볏짚을 깔고 다음에 대나무 마당비로 소 등을 쓸어내렸다. 소털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소삼정(소덕석) 치고 외양간에 들였다. 어머니는 저녁을 짓고 아이들은 방청소를 하고 요강을 씻어 안방과 멀방에 들여 놓았다.

뜨거운 소죽을 물고 고개를 내젖던 소는 냉수를 반 물통 끼얹어 주자 북적부적 소리를 내면서 맛있게 먹었다. 빈 소죽솥에는 내일 아침 소죽 끓일 구정물을 미리 부어다 놓았다. 그러는 사이에 해는 완전히 산을 넘어가고 집안은 어둠이 둘러 싸였다.

겨울 해는 짧고 밤은 길었다. 전깃불이 없는 소평마을은 암흑 천지였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는 뜨끈뜨끈한 뜨물숭늉을 커다란 백철 양푼 가득 들고 들어와 벽장 안에 넣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끝냈다. 벽장은 부엌에서 봤을 때 가마솥의 위쪽 공간을 활용하여 튀어나오게 만든 것으로 안방에서 일어선 채로 여닫게 돼 있었다. 그 많은 물은 밤새 오줌이 되어 아버지는 밤중에 요강을 한 차례 비워야 했다. 아이는 똥이 마려우면 변소 대신 거름더미 곁에서 눴다. 이때면 한 사람이 따라 나가서 보초를 서든지 아니면 방문을 열어놓아야 했다. 아닌 밤중에 찬바람이 휑하니 들이닥치자 등잔불은 펄럭이고 “닭이 자다가 똥 누지 사람이 무슨” 이불을 끌어당기며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한풍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바깥과의 경계는 창호지 한 장, 밤새 문풍지는 춥다고 울고 잠금장치는 손잡이문고리를 수놈문고리에 걸고 수놈문고리 가운데 위아래로 뚫려 있는 구멍에 술총(숟가락총)을 꽂는 게 전부였다. 창호지 밖으로 새 나가던 호롱불까지 꺼지고 나면 마을 전체는 도깨비와 귀신들이 나와서 굿을 해도 알 바 아니었다. "마당비나 지게 작대기 등 농사 도구에 사람 피가 묻으면 그것들은 밤이면 도깨비로 변해서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어느 집에 초상이라도 나는 날이면 한층 무서운 밤이 됐다. 믿는 거라고는 마루 밑 개집에 웅크려 잠을 자고 있는 검둥이뿐이었다.

새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은 물러갔다. 처마를 들락거리는 참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콧노래를 불렀다. “아침 햇빛 찬란히 동쪽 하늘 비칠 때/ 지난 밤 어두운 생각 어언 간에 사라지고/ 한량없는 희망이 다시 솟아오르며/ 갈매기의 즐거운 노랫소리 들린다” 헤이스(W.S.Hays, 1837-1907) 작곡의 미국민요 ‘Molly Darling’(사랑하는 모리)에 가사를 붙인 ‘아침’이라는 노래였다. 이 노래는 윤복진의 가사에 맞춰 ‘망향’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렸다. “먼 산에 진달래 울긋불긋 피었고/ 보리밭 종달새 우지우지 노래하면/ 아득한 저 산 너머 고향집 그리워라/ 버들피리 소리 나는 고향집 그리워라” 둘 다 소평마을을 위해 만든 노래 같았다. 주일학교에서는 “아침 해 동천에 뚜렷이 솟았고/ 동산에 새들도 노래를 부른다/ 동무야 주 앞에 감사를 드리자/ 동무야 주 앞에 감사를 드리자”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안강-기계도로에서 본 양동산, 해는 여름에는 산의 왼쪽(북쪽)에서 뜨다가 겨울로 가면서 점차 오른쪽으로 옮아갔다. 소평마을은 들판 복판(비닐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정재용 기자
안강-기계도로에서 본 양동산, 해는 여름에는 산의 왼쪽(북쪽)에서 뜨다가 겨울로 가면서 점차 오른쪽으로 옮아갔다. 소평마을은 들판 복판(비닐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정재용 기자

해가 진다’는 느낌이 가장 가슴에 와 닿을 때는 음력설을 하루 앞둔, 섣달그믐날 저녁이었다. ‘설날’하면 으레 음력설을 말함이었고 구정(舊正)이라고도 부르는 음력 1월 1일이었다. 양력 1월 1일은 신정(新正)으로 불리는 양력설이었다. 한때 정부는 양력설 쇨 것을 권장했으나 사람들은 ‘일본설’이라며 따르지 않았다. 달력이 나오면 가장 먼저 음력설과 추석이 언제인지부터 살폈다. 달력은 가정 당 1부씩 배부되던 지역 국회의원 달력이었다. 황한수, 심봉섭 등이었다. 수도 없이 낙선하던 심봉섭 후보의 선거 구호는 ‘심심하다 심봉섭, 불쌍하다 심봉섭’이었다. 4절지(A3) 정도 크기에 가운데 자신의 상반신 사진과 인사말 등이 나오고 좌우로 6개월씩 표시된 한 장짜리였다.

섣달그믐 무렵을 세모(歲暮)라고 한다. 세모는 설날 준비로 바빴다. 설날을 기준으로 엿 고우고, 박상(강정 재료가 되는 튀밥) 튀기고, 대목장 일정이 잡혔다. 아무리 없는 살림에도 설은 쇠어야 했다. 쌀을 내고, 가축을 내다팔고, 이도저도 안 되면 장리(長利)를 내서라도 음식을 장만하고 설빔을 마련했다.

이 때면 추위는 기정사실이고 바람은 칼바람, 날씨는 눈이 오면 와서 좋고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좋았다. 어울리기로는 진눈깨비 내리는 칙칙한 분위기가 그리 춥지도 않고 적당하게 불편한 게 맘에 들었다. 굴뚝으로 올라가는 연기가 초가에 내리는 눈을 삼키고 마을 안길 황토는 고무신 안으로 못 들어올 만큼 질척거렸으나 앞도랑 길은 지난여름 범람할 때 날라 온 검은 논흙이 뒤꿈치의 탄력으로 윗도리까지 튀어 올랐다. 아이들은 음식을 입에 베물고 거리로 돌아다녔다. 아버지는 장을 봐다 나르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온갖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평소에 된장찌개에 보리밥으로 익숙하던 아이들의 배는 기름진 별식에 배탈이 나기 마련이었다. 덕분에 약국도 대목이었다. 체한 데 먹는 약 아니면 설사약이었다.

‘잠을 자면 눈썹 센다’는 말에 지새우던 섣달그믐 밤을 지나 먼동이 트면 설날이었다. 물기 묻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쩍쩍 들어붙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골목은 세배 다니는 사람들로 붐비고 개들은 떼를 지어 들판을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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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21-01-19 09:02:01
잘읽었습니다

지니어스 2021-01-12 20:10:59
믿고보는 가자님 글 잘읽고갑니다

김희숙 2021-01-12 20:05:40
글잘읽고갑니다 소설같이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