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에세이 5] 귀도 레니의 ‘십계명 판을 든 모세’
[성화에세이 5] 귀도 레니의 ‘십계명 판을 든 모세’
  • 이동백 기자
  • 승인 2021.01.0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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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 유화,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1624년, 유화,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출애굽기 20장 18절~20절)

문득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불기둥을 이루었다. 야훼를 만나던 날의 그 엘모의 불일 터였다.

“나는 나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불기둥은 시내산 암벽에 불빛을 쏘아 글을 새겼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은 불로 모세에게 임하여 그 첫 계명을 내린다. 한 판을 다 새기는 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두려움에 떤다. 한 판을 마무리한 후에,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은 또 하나의 돌판에 불로 글을 새겼다. 그런 후에,

“가라. 네 백성들이 타락하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는 돌판을 들고, 산을 내려온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들어, 그것을 숭배하고 그것에게 제물을 바쳤다. 그들은 사악한 빵을 먹고 위법의 술을 마시며 철저히 타락하였다. 빛에 싸여 산을 내려오는 모세를 여호수아가 기쁘게 영접한다.

“당신에게 하나님의 빛이 있나이다.”

타락에 탐닉한 무리를 본 모세는 돌판을 높이 들어 금송아지를 향하여 집어던지며,

“십계명을 받을 자격이 없다. 법이 없는 자는 자유가 없다.”

라고 일갈한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한, 세실 B, 데빌 감독의 영화 <십계>의 한 장면이다. 4백 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낸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냄으로써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한다. 모세의 이런 삶을 장엄한 화면으로 재현한 영화가 <십계>이다.

이 그림은 귀도 레니의 <십계명 판을 든 모세>이다.

심상찮게 일어나는 먹구름이 불길한 조짐을 예감한다. 그 먹구름은 이미 땅을 덮어버린 뒤라서 땅은 검다. 불길한 조짐이 땅을 지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먹구름 사이로 쏟아져 내린 한 줄기 빛이 모세의 이마를 때리고 수염에 부딪힌다. 이마에 부딪힌 빛은 강해서 눈이 부시다. 한 손을 치켜든 서슬에 모세의 몸을 휘두른 붉은 망토가 크게 출렁거린다. 그 출렁거림에 따라 빛이 망토의 주름을 타고 구겨지고 있다.

모세의 쭉 뻗은 팔과 뾰족한 코는 의지의 강도를 나타내는데, 그 의지는 분노에 가서 머문다. 분노는 강렬한 눈빛에 집중되어 있다. 타락한 무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강철보다도 견고하다. 모세는 분노의 눈을 부릅뜨고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세우고 신을 버린 무리를 향해 입을 열어 포효하듯 꾸짖는다. 천둥처럼 울려 퍼진 포효는 악령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으리라.

그 순간 모세는 하나님이 손수 새긴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린다. 타락하고 우상 숭배의 덫에 갇힌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강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모세의 분노에 찬 순간을 포착한 귀도 레니의 그림에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귀도 레니는 하늘과 땅, 하나님의 법과 우상에 매몰된 인간의 타락을 가르는 지점에서 고뇌하는 모세를 강렬한 인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영화는 서사로 이야기하지만 그림은 이미지로서 이야기를 압축한다. 영화는 수많은 장면으로 처리되므로 이야기를 따라 마음과 눈을 화면에 맡겨 놓으면 된다. 그러나 그림은 수많은 이야기를 단 하나의 도상에 남기므로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이것이 그림을 마음으로 느끼는 즐거움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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