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세네카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장서 산책] 세네카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것인가?'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01.04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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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정심을 찾고 싶은 현대인을 위한 고대의 지혜

지은이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정치가다. 클라우디우스(41~54년) 황제 시절 코르시카에 유배되었다가 49년에 네로의 스승이 되어 핵심 권력층으로 복귀한 후 권력과 부를 누렸다. 65년에 황제 암살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자결을 명령받고 독약을 마심으로써 목숨을 잃었다. 뛰어난 웅변가이기도 했던 그는 ‘화에 대하여’, ‘서간집’, ‘대화’ 같은 역사적 저작들과 비극 9편을 남겼다.

엮은이 제임스 롬(James Romm)은 1958년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대학교에서 고전을 전공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바드대학에서 그리스어 및 그리스 문학과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옮긴이 안규남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책은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De Ira)’ 중 일부를 발췌 번역하고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1부 분노의 민낯, 2부 마음속 분노를 잠재우는 법, 3부 폭발 직전의 분노를 다스리는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1.1) 노바투스(Novatus, 세네카의 형)여! 너는 내게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써보라고 권했다. 네가 분노라는 감정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분노는 모든 감정 중 가장 추악하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감정들에는 얼마간의 고요함과 차분함이 있지만, 분노라는 놈은 사납게 미쳐 날뛰며-인간에게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격렬하게-고통, 무기, 피, 고문을 갈구하다가 급기야 자신의 이익까지도 내동댕이치면서 남들에게 해를 입히려 든다.(21쪽)

(2.18) 이제 분노 치료법을 다루어볼까 한다. 내 생각에 치료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예 분노라는 감정 자체에 빠지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가 났을 때 잘못된 행위를 피하는 것이다. 신체의 경우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치료가 있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치료가 있듯이, 분노의 경우에도 아예 분노를 차단하는 방법을 써야 할 때가 있고 분노를 억제하는 방법을 써야 할 때가 있다.(41쪽)

(2.29) 분노에 대한 최고의 치료법은 분노를 지연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의 분노에 부탁하라.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판단하기 위해 잠시 시간을 달라고. 분노의 감정은 처음에는 거칠지만,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누그러진다. 그러니 분노의 감정을 단번에 없애려고 애쓰지 마라. 조금씩 나누어 제거하다 보면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59쪽)

(2.32) 자신이 받은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위대한 정신의 지표다. 상대를 복수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야말로 상대에 대한 가장 모욕적인 복수다. 많은 이들이 복수를 함으로써 대수롭지 않은 일을 심각한 일로 만들어버린다. 이와 달리 위대하고 고귀한 사람은 작은 사냥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도 커다란 맹수처럼 아랑곳하지 않는다.(69쪽)

(2.34) 그러니 상대가 우리와 대등하건 우리보다 잘나거나 못났건 간에 우리는 분노를 억제해야 한다. 대등한 자와 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잘난 사람과 싸우는 것은 미친 짓이다. 못난 사람과 싸우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자신을 문 사람을 똑같이 물어뜯는 것은 비겁하고 천박한 자나 하는 짓이다.(74쪽)

누군가 화를 내면, 친절함으로 대응하라. 한쪽이 물러서면, 싸움은 끝난다. 상대가 없으니 싸움도 없다. 싸움은 양측 모두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를 때 일어난다. 먼저 물러서는 자가 더 나은 자다. 패배한 자가 ‘승자’다. 누군가가 너를 치면, 물러서라. 그에 맞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더 잦은 폭력의 기회와 구실이 될 뿐이고, 나중에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75~76쪽)

(2.36) 섹스티우스(Sextius, 기원전 1세기에 살았던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의 말처럼, 화난 사람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도움을 받곤 했다. 그들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거울은 진짜 추한 모습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던가!(81쪽)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분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해를 입혔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과도한 분노는 많은 이들의 혈관을 파열시켰고, 목이 터질 듯한 외침은 피를 토하게 했고, 쏟아지는 눈물은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으며, 고통을 견디다 못해 병으로 몸져눕게 했다. 분노보다 더 빨리 광기에 이르는 길은 없다.(82쪽)

(3.1) 분노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은 각 개인의 특성에 맞춰 세워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간청이 통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어떤 사람은 겁을 주면 잠잠해진다. 어떤 사람은 질책을 받으면, 어떤 사람은 고백을 들으면, 어떤 사람은 수치심이 들게 하면 분노가 진정된다. 그리고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는 악에 대한 치료법으로는 지연(delay)이 있는데,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88쪽)

(3.9) 화났을 때는 중대한 일은 시작하지 말고, 시작하더라도 기력이 다할 때까지 밀어붙이지는 말아야 한다. 어려운 일 말고 즐거운 예술에 마음을 써야 한다. 시를 읽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역사 속의 이야기들에 빠져보라. 점차 감각들이 살아나면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108쪽)
또한 기력이 소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력이 소진되면 우리 안에 있는 온화하고 평온한 것이 모두 고갈되면서 거칠고 사나운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배고픔과 갈증도 피해야 한다. 그것들은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옛말에 지치고 피곤한 자들이 시빗거리를 찾는다고 했다.(109쪽)

(3.10) 그러므로 분노의 신호를 감지하는 순간 일단 멈춰선 다음, 가능한 자신의 입에 고삐를 채워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을 미리 막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의 감정이 최초로 발생하는 순간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저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전조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폭풍이나 비가 오기 전에 조짐이 있듯이, 분노나 사랑을 비롯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돌풍이 불기 전에도 그것을 미리 알리는 신호가 있다.(110쪽)

각자가 자신의 병을 알아차리고 병이 더 심해지기 전에 억제하는 것이 좋다. 그러자면 특히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마다 상처받기 쉬운 부분이 있다. 네가 할 일은 너의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를 아는 것이다. 그래야 그 부분을 잘 보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112쪽)

(3.11) 모든 것을 보고 듣는 것이 네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웬만한 손해들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라. 그러면 더 이상의 손해는 보지 않는다. 화를 덜 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캐묻는 일을 삼가라.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를 꼬치꼬치 캐묻거나 혼자 있을 때라도 악담을 퍼붓는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깨뜨릴 뿐이다. 어떤 일이 손해처럼 보이는 것은 그 일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어떤 일은 뒤로 미루어야 하고, 어떤 일은 웃어넘겨야 하고, 어떤 일은 용서해야 한다.(113쪽)

(3.13) 자신과 싸워라. 분노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분노가 너를 정복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분노를 감추고 출구를 내주지 않으면, 분노는 정복되기 시작할 것이다. 가능한 한 분노의 신호를 내보이지 말고 남들이 모르도록 분노를 감추어라. 이는 매우 힘든 일이다. 분노는 밖으로 뛰쳐나오고 싶어 하고 눈을 활활 불타오르게 만들고 싶어 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만일 분노가 우리 밖으로 뛰쳐나가게 내버려두면, 그것은 우리를 깔보게 될 것이다. 분노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115쪽)

분노가 우리를 사로잡아서는 안 되고 우리가 분노를 사로잡아야 한다. 분노의 징후들을 모두 정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얼굴을 편안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걸음걸이를 늦추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감정도 점차 외적 신호들을 따라가게 된다.(115~116쪽)

(3.42) 분노를 제거해야 한다. 마음에서 분노라는 악덕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 어딘가 조금이라도 들러붙을 곳이 있기만 하면 분노는 다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를 억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 노력을 하기만 하면, 우리는 악을 제거할 힘을 가질 수 있다.(143쪽)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유한함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각자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말해야 한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분노를 터뜨리고 짧은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뭐가 기쁜가? 명예로운 즐거움들을 위해 쓸 수 있는 날들을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바친다고 해서 무슨 기쁨이 있는가? 그런 날들은 가볍게 써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낭비해도 좋은 만큼 시간이 남아돌지 않는다. 왜 성급하게 언쟁으로 치닫는가? 왜 언쟁을 자초하는가? 왜 자신의 결함을 망각하고 엄청난 증오심에 사로잡혀 자신이 부서질 수 있는데도 남들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운명이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날들을 헤아리고 있다. 네가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하는 데 쓰고 있는 시간은 너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으로 바뀌어야 한다.(143~144쪽)

(3.43) 짧은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너 자신과 타인들을 위해 평화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어떻겠는가? 사는 동안에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죽어서는 모두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오만한 태도로 너를 대하는 인간을 왜 짓밟아버리고 싶어하는가? 왜 너를 화나게 하는 자를 너의 모든 힘을 다해 부숴버리려 하는가? 조금만 참아라. 보라, 다가오고 있는 죽음이 너를 그들과 평등하게 만들 것이다.(145쪽)

머잖아 우리는 생명의 마지막 숨을 내뱉을 것이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은, 인간 세상에 있는 동안은 인간다움을 소중히 간직하자. 누구에게든 두려움이나 위험을 안겨주는 사람이 되지 말자. 손해, 해악, 모욕, 비웃음에 경멸을 보내자. 웬만한 짜증나는 일들은 참자. 흔히들 말하듯이 몸을 돌려 뒤를 보는 순간, 죽음은 지척에 와 있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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