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이 너무 어렵다.
의사소통이 너무 어렵다.
  • 장명희 기자
  • 승인 2020.12.29 18: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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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의사전달은 서로 교류와 공감대를 형성한다.

말은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음의 다리를 놓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아주 중요한 행위이다. 서로가 친해지고 공감하며 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수단이다. 인간관계의 근원이 되는 의사수단에 조금 서툴러서 생각하지 못한 상황도 가끔 일어난다. 말하기가 익숙하지 못해 자신의 진심이 올바로 전달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처럼 “말”이라는 것은 사람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에 중매를 하는 연세 많은 할머니가 우리 집을 자주 방문 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거늘 “신랑 쪽은 집안이 넓습니까?”하고 물었다. 어르신들은 그 당시에만 해도 대가족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연세가 많고 귀가 좀 어두운 할머니께서 “집안이 넓어서 상추도 심고, 고추도 조금씩 심어서 반찬거리는 걱정을 안 합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웃음을 참느라고 혼이 났다고 했다. 진지한 말씀에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도 연세답지 않고 순수하고 선하신 할머니를 한 번씩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오고가는 의사소통이 너무나 어려울 때가 있다. 자신은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마음의 문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말이라는 것은 항상 자신의 입장과 기준에 따라 받아들이고 말하는 것 같다.

어느 날 한 행자 스님이 큰 스님에게 “저도 스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하고 묻자. 큰 스님께서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니라”고 하셨다. ‘즉심시불’, ‘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을 ‘짚신시불(짚신이 부처이니라)’라는 말로 잘못 알아들은 행자 스님은 그날부터 짚신을 신고 다닐 수가 없어서 짚신을 방안에 깨끗이 걸어두고 몇 년 동안 맨발로 다녔지만 큰스님은 오랜 수행의 덕분에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짚신을 부처라고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하잘 것 없는 미물도 부처처럼 보였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존경의 대상이고, 부처로 보이더니 결국은 자기 자신이 부처라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자신이 부처임을 깨달은 행자 스님은 큰스님을 찾아가서 “스님, 짚신이 부처임을 깨달았습니다”라고 했더니 “짚신이 부처가 아니라, 마음이 부처야!”라고 했지만 “스님은 즉심시불하십시요. 저는 짚신시불합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살아가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전하기가 정말로 어렵다. 혹시 서로의 오해로 잘못 이해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말의 의미 전달이 어렵다는 것을 한 번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왔기에 자신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말을 풀어 나가려고 한다. 행자 스님처럼 아름다운 오해는 큰 깨달음에 이르게도 하지만 자칫 실수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가가서 좀 더 사려 깊게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