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산 청설모
대불산 청설모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12.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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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공원 생태 회복

오솔길마다 수북수북 쌓인 젖은 철이 지난 낙엽들은 이제는 더 이상 감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미끄럽고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복병처럼 반려동물 배설물도 품고 있어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양보하자’는 빛바랜 현수막이 펄럭이는 가운데 나무들은 벌거벗은 채로 하늘만 쳐다 보고 있다.

대불산(大佛山, 대불공원, 대구시 북구 산격2동)은 해발 100여 미터, 둘레가 2 km 남짓한 대구 북구의 근린공원(近隣公園)으로 대구 엑스코와 유통단지와 인접한 야산이다.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유통단지, 검단공단 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접근성이 좋고, 쉼터와 간단한 편의 운동 시설, 둘레길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직장인과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 공간이다.

봄이면 접시꽃과 개나리뿐만 아니라, 달맞이꽃, 산도화, 달개비, 망초, 으아리 같은 들꽃들이 피고, 날씨가 더워지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둘레길에 가득해서 산보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가끔 오솔길에서 장끼를 만나기도 하며, 드물게는 숲 덤불 사이로 장끼가 솔가해서 까투리와 꺼벙이를 데리고 달아나는 것도 구경할 수 있다.

청설모는 쉼터와 운동 시설에서 주민들이 가장 쉽게 대하는 대불산의 터줏대감이다. 이놈은 정자 그늘에서 할머니들의 대화를 가만히 엿듣기도 하고, 운동하는 주민들 위로 나무 둥치를 오르락내리락하거나,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타며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청설모의 본래 이름은 청서(靑鼠)이며, 쥐목의 다람쥐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몸통은 회갈색으로 꼬리가 길며, 숱이 많아서 꼬리털로 붓을 만들어서 청설모가 되었다고 한다. 다람쥐가 돌 틈이나 땅속 등지에 굴을 파고 사는 반면에 청설모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나무 열매나 도토리 등을 먹고 살며, 다람쥐와는 달리 월동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 덕분에 주민들이 대불공원을 자주 찾게 되면서 개중에는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비닐봉지를 든 어르신네들은 경쟁하듯이 좁은 산비탈을 휘젓고 다니며 도토리를 쓸어가고, 고삐 풀린 반려동물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좁은 오솔길을 휘젓고 다니며 군데군데 배설물들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숲 덤불 아래서 멀뚱멀뚱하던 꿩은 물론이고 흔해 빠진 비둘기도, 그렇게 자주 나타나던 청설모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들까지 나타나 법석을 떠는, 먹이가 사라진 근린공원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청설모는 떠난 것일까?

가만히 올려다보는 나무 꼭대기의 청설모 보금자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팔공산만 희미하게 웃고 있는듯하다.

코로나 시대와 더불어, 야생동물과 인간, 그리고 반려동물이 공존하는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서 근린공원의 자연 생태 회복을 위하여 주민과 관련 단체, 기관들의 거버넌스가 더욱 절실히 요망된다.

청설모 보금자리(대불공원). 정신교 기자
청설모 보금자리(대불공원).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