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일기] (22) 보리 볶기
[이장님 일기] (22) 보리 볶기
  • 예윤희 기자
  • 승인 2020.12.14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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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솥뚜껑을 거꾸로 해서 보리 볶기
눈물은 나고 허리는 아프고 고생
돈도 아끼고 구수한 보리차의 맛볼 수 알 수 있어 다행
솥뚜껑을 뒤집어 보리 뽂기. 예윤희 기자
솥뚜껑을 뒤집어 보리 뽂기. 예윤희 기자

 

보리를 볶았다.

지난 6월에 수확해 놓은 보리를 가을걷이를 마치고 여유가 있는 요즘에야 볶았다. 지난해까지는 떡방앗간에 가서 돈을 주고 볶았는데, 1되에 3천 원씩이라 돈 아낄 욕심에 집에서 볶아보자고 시작했다.

겨울철이지만 한낮에는 따뜻해 바깥 솥에 쇠솥뚜껑을 거꾸로 해서 장작불을 지폈다. 매콤한 연기가 눈으로 들어와 눈물이 나고 시간이 지나니 허리도 이프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시작한 일이라 참고 끝을 내야한다.

 

우리 마을은 들이 좋아 대부분 이모작을 할 수 있는 논들이 많다. 골짜기에 있는 천수답 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모작을 할 수 있는 논들이 마을 앞에 있다. 그래서 가을에 벼를 수확하고 바로 보리를 갈아 겨울을 나면 봄에 김매기를 하고 초여름에 수확해 양식 걱정을 해야 하는 다른 마을에 비하면 밥걱정을 덜 하는 마을이 되어 인근 골짜기 마을에서 부러워하는 마을이었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선친이 면사무소에 다닌 우리 집은 큰들에 논이 많아 벼농사도 많이 짓고 보리농사도 많이 지어 양식 걱정은 없었다. 어릴 때 보리농사 뒷바라지 심부름을 하면서 깔끄러운 보리 이삭이 바짓가랑이를 타고 들어와 몸을 가렵게 한 기억도 난다.

보리 타작도 간단하다. 처음에는 모두 베어와  빈집인 뒷집  마당에서 도리깨로 타작을 했는데 마을 어르신이  차가 많이 다니는 회관 주차장에 늘어 놓으면 저절로 타작이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윗쪽만 베어 자루에 담아와서 뒷집 마당에 늘어놓고 내 화물차로 열 번 정도 왔다갔다하니 타작이 끝났다. 보리짚을 치우고 선풍기를 이용해 알곡을 깨끗이 하면 타작 끝이다.

이런 보리 농사를 지금은 양파나 마늘을 심느라 보리 농사를 짓는 집은 없어졌다. 나혼자 올해 4년째 짓고 있다.

시작은 이렇다!

이서면문고회 여부회장님이 차를 하시는 분인데 보리차하라고 씨앗을 한 줌 주신다. 한 줌을 얻어다 심은 게 첫해는 3되 정도 나더니 이듬해부터는 반 되정도 씨앗을 뿌리니 서 말이나 되었다. 해마다 한 말 정도는 팔고 나머지는 면소재지 떡방앗간에 가서 볶아 여기저기 나누어 먹고 있다. 숙부님과 고모님들이 팔순이 넘은 분들이라 구수한 보리차의 맛을 알고 좋아하신다. 그래서 해마다 보내드리고 있다. 60대인 동생들도 해마다 보내주니 보리차 맛을 알고 이제는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윗동네 석천아재가 한 말 사가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다.

그런데 올해는 집에서 볶아본다고 시작했는데 연기는 나고 열이 센 곳에서는 튀밥 튀듯이 되고 만다. 그만둘 수도 없어서 눈물을 흘리며 고생을 하는데, 나무주걱으로 이리저리 잘 저어주고 시간이 지나니 연기도 덜나고 튀밥도 튀지 않아 잘되고 있다.

떡방앗간에 갖다 주었으면 기계에 온도를 맞추어 놓으면 빙빙 돌아가는 기계 솥에서 골고루 멋지게 볶아지는데 왜 이런 고생을 택했는지 후회가 된다. 눈물을 흘리며 돕던 옆지기도 요즘 세상에 누가 집에서 볶느냐고 원망을 한다.

그래도 콩타작을 하고 남은 콩깍대기가 많이 있고, 뒷산 대밭에서 주어온 대나무들도 화력이 좋아 연료로 쓸려고 쪼개놓은 것이 많이 있다. 두 말이면 돈도 6만원이나 아낄 수 있어 시작한 일이라 이래저래 무사히 잘 마쳤다.

시골 바깥마당에 솥을 걸어두고 물도 데워 쓰고 오늘처럼 보리도 볶고 이런 것이 시골 사는 재미라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낸 것이 보람스럽다.

보리를 볶아내고 달궈진 솥뚜껑에서 호박전을 부쳐 먹은건 그 다음의 재미였다.

이게 귀촌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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