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 산청 정취암에는 쌍거북바위가 있다.
절벽 끝, 산청 정취암에는 쌍거북바위가 있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12.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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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사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이무기의 등을 올라탄 기분이다.
자식을 업은 부모의 형상 같기도 하다.
시선이 아닐지라도 어쭙잖게 흉내는 낼 수 있으리라!
거무칙칙하던 구름을 벗어나는 산청 정취암이 한 폭의 그림니다.
거무칙칙하던 구름을 벗어나는 산청 정취암이 한 폭의 그림이다. 이원선 기자

경상남도 산청 대성산 기슭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암자 정취암(淨趣庵), 찾아가는 길은 녹록치가 않았다. 네비게이션 안에 들어앉은 미스 김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오른쪽, 왼쪽을 지칭하여 끊임없는 주문이다. 입으로만 나불나불, 가늠을 할 수 없는 길에 참 편하다는 불만이 어느 순간 대단타는 감탄으로 바꾼다. 길을 묻고 싶어도 추수가 끝난 들판으론 바람들이 운동회를 열어 부산할 뿐 산촌의 고갯길에 인적이 끊어지다보니 더 그렇다. 조선 순조 때 김삿갓이 만나 해학을 주고받았다던 남정네와 아낙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수소문 끝에 서울 사는 김 서방 집을 찾아가듯 나선 길에 기계의 도움 없이는 애당초 불가능이다.

둔철 생태 체험 숲 근처에 이르자 커다란 돌에 아로새긴 ‘정취암’이란 글자가 '이제 다 왔구나!'하는 안도감을 불러 생경스럽게 맞는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시기상조다. 남은 약 900m, 휘어지고 꺾어지고 아래로 내리 꽂는 길이 흡사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이무기의 등을 올라탄 기분이다. 겨울이 주는 을씨년스러움 속에 만난 굴곡의 초행길은 '이 길을 어떻게 다시 오르지!'하는 염려와 함께 고소공포증의 짜릿한 전율까지 부른다. 중간 중간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하고픈 마음이 모락모락 일어 핸들을 돌리고 싶지만 끝까지 가보잔다. 위태위태한 커브 길 서너 구비를 조린 마음만큼이나 천천히 돌았다. 이윽고 시야가 넓어지고 손바닥처럼 작은 공터의 오르막 위로 금박을 입힌 원통보전(圓通寶殿)이란 전각이 눈에 환하다.

대성산의 우듬지 쯤 하여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신라 신문왕 6년에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불쑥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쫒아 금강산에는 원통암(圓通庵)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淨趣寺)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 때에 중수하고 조선 효종 때에 소실되었다가 봉성당 치헌선사가 중건하면서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1987년 도영당은 원통보전공사를 완공하고 대웅전을 개칭하여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 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95년에 응진전에 16나한상과 탱화를 봉안하고 이 탱화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청 정취암 원통보전
산청 정취암의 원통보전. 이원선 기자

한편 원통보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山淸 淨趣庵 木造觀音菩薩坐像)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14호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크기는 약 50㎝로 작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낮은 대좌 위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으며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를 다소 앞으로 숙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단아해 보이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제작 시기는 조선 후기일 것으로 짐작되며 1996년에 개금(改金: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하였다.

원통보전의 왼편 수돗가에서 뻣뻣한 목을 축이고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로 보이는 거사님이 "이 물은 저 바윗돌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를 연결한 것으로 몸에 이롭다며 꼭 마시세요!”하며 은근한 자랑과 더불어 권한다. 이어 마당의 가장자리로 안내하여 위를 쳐다보란다. 못이기는 척 위를 보자 돌 거북이가 보인다. 처음에는 한 마린 줄 알았는데 두 마리다. 거사님은 대한민국에서 이런 형상의 돌 거북은 이곳 밖에 없다며 침이 마르도록 자랑이다. 그 자랑은 사람들이 들어설 때마다 도돌이표를 만난 듯 계속된다. 보는 자리 또한 매번 같은 자리로 가장 확실하고 잘 보인단다. 거사님의 자랑처럼 자연미를 물씬 풍기는 것이 참 특별하게도 생겼다. 사람마다 보는 느낌과 생각은 다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양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자식을 업은 부모의 형상 같기도 하다. 이런 상상에 지식을 더하듯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돌 거북을 소개하고 있다.

정취암 쌍거북바위(영귀암:靈龜岩),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듯 업은 듯 다정하다.
정취암 쌍거북바위(영귀암: 靈龜岩),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누는 듯 업은 듯 다정하다. 이원선 기자

정취암 쌍거북바위(영귀암: 靈龜岩)

“거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동서양의 많은 나라에서도 신화나 전설상의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겼으며 십장생 중의 하나로서 장수(長壽)와 복덕(福德)을 상징 합니다.

옛 이야기에 의하면 1,000살 먹은 거북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고 5,000살 먹은 거북은 신귀(神龜)라 하며 10,000살 먹은 거북은 영귀(靈龜)라 합니다.

민화에서 거북은 대개가 두 마리가 함께 그려지는데 이는 부부의 화합과 장수를 기원하기 위함이다. 또한 한 쌍의 거북을 연실(蓮實)이 달린 연꽃과 함께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연생귀자도(連生貴子圖)라는 그림으로 ‘연달아서 귀한 자식을 많이 낳는다’는 바람을 담은 그림이다.

거북이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데, 고구려 고분도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의 하나인 현무(玄武)는 거북이다. 이것은 북방의 뜻인 죽음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수명장수와 내세의 복덕(福德)을 의미합니다.

정취암 거북바위는 쌍거북바위로 부부의 금실을 좋게 하고 귀한 자손을 보게 하며 사업 번창 등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하는 수승한 영험이 있습니다.

특히 산신기도를 하면서 거북바위와 함께 기원하면 오랫동안 자손을 못 보던 분들이 자손을 본 사례와 소원하는 바를 성취한 사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볼수록 신기하고 귀한 바위다. 한 마리의 형상을 한 거북이나 자라바위는 더러 보았으나 한 쌍이 다정하게 있는 바위는 처음이다. 암자의 위치나 돌 거북을 볼 때 여수 항일암이 절로 생각난다. 사실 인공으로는 몇몇 쌍이든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하지만 자연적인 현상으로, 그것도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두 마리가 포갠 형상은 쉽지가 않다. 말은 지어내기 나름이라고 쌍 귀의 바위 뒤편으로 소나무 한그루가 섰고 그 앞으로 낙엽을 떨군 활엽수가 나란히 섰다.

거사님을 이를 두고 겨울에는 햇볕이 필요하여 낙엽을 떨구고 여름이면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두 그루가 나란히 그늘을 만들어 늘 시원하단다. 굳이 반박할 필요성은 없어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언제 시간이 나면 일출을 감상을 오란다. 힘들게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필요 없이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출 또한 감동에서 조금은 차이가 나겠지만 대동소이 하단다. 사실 절벽 끝이라 띄엄띄엄 오금이 저려오는 중에 내려다보는 겨울들판이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하다. 새벽녘 모락모락 핀 물안개가 들판을 가득 메워올 즈음 붉은 태양을 맞이한다는 생각이 들자 꿈속을 헤매는 가슴은 황홀경으로 벅차오른다.

암자 입구에 우뚝 선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섰다.
암자 입구에 우뚝 선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섰다. 이원선 기자

상상을 벗어나 응진전 뒤편으로 접어들자 산신을 모시는 제단이 있고 그 위로 눈썹 끝에 올라앉은 듯 세심대(洗心臺)가 머리위로 아득하다. 세심대를 한자대로 풀면 마음을 씻어내는 자라라는 뜻이다. 결국 오욕칠정, 탐진치(貪瞋癡: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백팔번뇌의 모든 짐을 훌훌 내려놓고 자아를 찾아 선정에 드는 단이다. 어느 선승은 인생을 한 조각의 구름이 일었다가 사라지는 형상이라 했다. 오늘의 내 구름은 또 얼마나 흩어지고 있을까? 누구든 저곳에 올라앉으면 솔바람의 가르침을 통해 시선이 아닐지라도 어쭙잖게 흉내는 낼 수 있으리라!

들어오는 길 조차 예사롭지가 않아서 그런지 되돌아 나오는 길, 장사진을 친 듯 산 밑쪽으로 죽 늘어선 시어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이라! 세파에 찌든 마음에도 어느 한 순간 아련한 고요가 스민 탓일까? 내용도 뜻도 모르는 시어를 갈 길을 잃은 듯 오도카니 서서 코흘리개가 국어책 읽어 내리듯 더듬거린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중략···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대구에서 좀 멀지만 일출을 보고 싶은 곳이다'라는 일행의 달짝지근한 목소리가 곧장 내일인 듯 싶어 자꾸만 돌아보는 정취암이 절벽 속에서 아늑하다. 그 위로 오전 내내 거무칙칙하던 구름을 벗어나는 하늘이 원통보전의 용마루 위에다 에메랄드빛을 무한으로 쏟아 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