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간호사, 김병수 씨의 또 다른 노래
피아노 치는 간호사, 김병수 씨의 또 다른 노래
  • 원석태 기자
  • 승인 2020.12.10 18:26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피아니스트로 가는 길도 좋다
간호사로 가는 길도 좋다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가는 길은 더 좋다
피아노 치는 김병수간호사. 원석태기자
피아노 치는 김병수 간호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병동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원석태기자

 

손 끝에서 춤추었던 피아노 하얀 건반들을 또 다른 삶의 현장으로 불러와 새로운 감동을 선물하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경북 의성군 제일요양병원 간호사로 환자를 보살피면서 피아노를 치는 김병수 씨다. 환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이웃과 함께하는 복합의료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다. 피아니스트로, 음악치료사로. 대학 강사로 이름이 알려져 왔지만 지금은 '피아노 치는 간호사'로 더 유명하다.

평범한 시골에서 성장한 김 씨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였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였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억제할 길이 없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김천예술고등학교로 진로를 변경하였다.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꾸며, 영남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으로 전문연주자의 길을 택하였다. 많은 관객과 음악을 공유하며 보람을 찾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의료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찾고 있다. 따뜻한 뜻을 품고 우리의 이웃에게로 다가온 김병수 씨를 만나본다.

부모님 대하듯 최선을 다하는 김병수간호사. 김병수간호사
김병수 간호사가 환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원석태 기자

 

-병원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현재 간호사 4년차이며, 환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피아노를 치고 노래 지도를 하면서 음악치료사 일도 하고 있습니다.

-간호사에 앞서 음악인으로 성장 과정과 전문 연주인으로서 활동은 어땠나요?

▶어려서부터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시골에서 계속 음악공부를 한다는 게 참 어려웠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였지만 음악공부를 하고 싶어 부모님을 설득해 김천예술고등학교로 다시 진학하여 음악교육을 전문적으로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지어 단식도 하며 간청한 결과 부모님들도 제 뜻을 이해해 주신 겁니다.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와 대학원을 거치면서 전문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전문연주인으로 많은 연주활동을 했고, 수성대학, 대구예술대학, 호신대 등에서 외래교수로 출강했고 피아노 전문음악학원을 10여 년 운영하였습니다.

휴식시간엔 건반으로 손이 가는 김병수간호사. 원석태기자
김병수 간호사가 휴식시간에 피아노를 치고 있다. 원석태기자

 

-연주자에서 간호사로 다른 직업을 택한 이유는?

▶연주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연주봉사도 했습니다. 10여 명으로 구성된 ‘아마빌레 앙상블’ 단원으로 정기적으로 대구의료원 호스피스 병동과 시설단체 연주 봉사를 하면서 환자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어머니가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너무 아파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농삿일과 집안 살림으로 고생하신 어머니를 내가 직접 돌봐드리자 라는 생각이 들어 간호학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쉽지 않은 간호학을 배우는 과정은 어떠하셨나요?

▶연주활동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늦은 나이와 남자라는 약점도 극복해야 했으니까요. 피아니스트로 후진 양성과 봉사활동을 해 왔지만 간호학 분야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돌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먼저 가까운 간호조무사 양성 학원에 등록하였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그 당시 대구광역시중구합창단 반주와 왕성한 외부 활동으로 수강생이 꽤 많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학원은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를 보살피며 연주자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던 중, 전문적 교육을 받고 싶어 2012년 수성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졸업 전까지 간호조무사로 7년 정도 병원근무를 하였습니다. 음악인으로만 살아 왔기에 새로운 공부가 부담이었지만 나이도 잊고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간호학과에 남학생들이 많지 않을 때라 걱정이 안 된 것도 아니지만요. 실습 나간 병원에서 틈틈이 피아노 연주를 해드렸더니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제 나름 환자와 가까이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 건데요. 그러다보니 ‘피아니스트 남자 간호대학생’ 이라 불러 주시기 시작하더군요. 2017년 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울진의료원과 대구동산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다 이곳으로 왔습니다.

점심 식사 후 반주소리에 모여든 이들, 쑥스러워 한다. 원석태기자
점심 식사 후 피아노 반주소리에 이끌려 모여든 병원 가족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원석태 기자

 

-이 곳 병원생활은 어떤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이 곳에 온지 5개월 정도 됩니다. 농촌 특성상 연로하신 분들이 많습니다만,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환자를 중심으로 ‘에바다 중창단’을 조직하고 노래 연습을 했습니다. 긴 병원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도록 동요, 가곡.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 연습을 합니다. 모두가 열심히 합니다. 함께 모여 노래할 땐 어떤 치료제보다 더 큰 새로운 에너지가 활력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가족면회가 금지되어 있지만 가족과 함께 부르는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악이 있는 병실운동이 다른 타 병원으로 확산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가까이서 돌봐 드릴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피아노와 함께할 수 있어 간호사로서 생활은 만족합니다.

병실을 나서는데 그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 소리가 제법 익숙하게 들린다. 모두들 열심이다. 이들의 힘찬 목소리들이 병실을 따뜻하게 하는 것 같다.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연주를 멈추고 있지만, 연주자의 길과 우리의 이웃을 향한 사랑의 노래는 계속 부르리라 본다. 

철저한 방역시스템 운영 관리를 위한 배려로 문 앞까지 배웅해준 이 병원 유명숙 부이사장은 “시골이라 충분한 문화 혜택을 누릴 수 없는 환경인데, 피아노 치는 김병수 간호사는 또 다른 즐거움의 샘물을 솟아나게 하는 마력이 있어 모두가 행복하다”고 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