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죄일까? 늙음이 죌까?
돈이 죄일까? 늙음이 죌까?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11.26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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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조카가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까마귀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조카들 또한 이제는 한두 명 또는 한명이 고작이다.
“내 죽으며 다 네 재산인데 그 새를 못 참아!”

이발소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 달에 한번 치르는 월래 행사다. 여름한철 머리가 무겁도록 뒤집어 쓴 이파리들의 절반 이상을 떨어뜨린 양버즘나무의 엉성한 가지사이로 날을 세운 늦가을의 찬바람이 윙윙거린다. 문득 머리위로 올라간 손이 민망스럽다. 젊어서는 양손으로 헤집어도 빽빽하던 머리칼이 이제는 바람만 불어도 머리 밑이 훤하다. 누구는 대머리보단 났다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쑥스러운 것은 대동소이하다.

지금껏 약 15여년을 출입하다보니 어느새 단골이 되었고 가끔은 아득한 기억속의 사랑방 같은 느낌이다. 추수가 끝나가는 지금쯤이면 사랑방은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동네어른들의 차지다. 더러더러 술판도 벌어지고 도박판도 벌어진다. 그 틈에 끼어 앉은 유년시절은 엽연초가 타는 매캐함에 눈물은 찔끔거리면서도 안주를 얻어먹는 즐거움에 잠을 잊고는 방구석으로 물러나 앉아있었다. 아니 그보단 뒷집 순이를 들먹여 심장이 콩콩 뛰고 싶은지도 모른다.

사랑방에서는 인생의 진득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감 없이 오간다. 아들 장가보내는 이야기, 딸 시집보내는 이야기, 도회지로 나간 아무개의 딸이 신랑도 없이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 담배감장에서 생각을 넘어 특등을 받았다는 이야기에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고추 값이 흥정이 될 때면 너나없이 명년 농사걱정에 내품는 한숨이 문풍지를 때리는 황소바람보다 거세다. 도저히 막걸리 한 사발 없이는 속에서 이는 불길을 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 또한 이 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잔망스런 녀석들은 오는 길에 주전자 꼭지를 엄마 젖꼭지로 알아 한 모금씩 쪽쪽 빨고는 빈만큼은 물을 채워 상위에 던지듯 털썩 내려놓고 불콰한 얼굴을 수그려 꿈길을 달리는 방이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상투적인 인사말로 이발소를 들어서는데 미리 자리한 몇몇 분은 비록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일면식이 있는 분들이다. 이발을 하려는 사람보다 사랑방으로 여겨 오신 분들이다. 이런 날이면 으레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진다. 그 주제는 옛날의 사랑방처럼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앞장을 서고 주로 고스톱으로 먹기 내기의 이야기다. 서너 사람이 모여서 판을 벌여 2~3만원씩 추렴한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저녁을 즐겼다는 이야기다. 도박으로 치부하기엔 사람 사는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다. 숫자노름이라 오히려 치매 예방에 좋다며 또 날을 잡자는 얼굴에는 벌써부터 웃음꽃이 활짝 피는 데는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본인들이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줄을 짓는다. 그 이야기의 내용 또한 뻔해서 자식과 부모에 관한 돈 이야기와 유산 문제가 주다. 어떻게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에서는 왈가왈부 정답이 없다. 그적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어차피 심신이 제구실을 못할 지경이면 양로원, 요양원 등등으로 자식들이 등을 떠미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단다. 그나마 과자부스러기라도 사서 가물에 콩 나듯 얼굴이나 보이면 행복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 상책이라 입을 모은다. 그런데 이런 상례를 깨고 조카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뜬금없이 웬 조카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찰라 귀를 기울이자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천성이 그래서인지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온 습성 때문인지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단다. 그런 할머니의 성품에 먹는 것인들 온전했겠나! 빵과 우유, 무료급식 등등 그저 목숨을 연명할 만큼 먹고는 백 원이든 천원이든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다. 모으는 방법도 옹색해서 은행이 아닌 집이다. 금고라도 재대로 갖추었으면 좋으련만 숨기고 숨긴다는 곳이 접시 밑, 신발장, 장판 밑, 치마안단, 장롱 속 등등 생각나는 대로 두서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겨울 준비를 하는 청설모나 다람쥐 같은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식도 할아버지도 없다보니 할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세상과 동떨어진 듯 요지경이다. 그 모습을 조카가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까마귀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껏 할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악마의 탈은 보이지가 않아 늘 고마운 조카다. 따라서 늙어서 죽고 나면 남부럽지 않게 장례나 치르고 남은 재산은 유산으로 물려주리라 마음먹은 지도 오래 전이다. 그 와중에 가끔 “숙모, 숙모!”하며 찾아 올 때는 눈물 나도록 고맙고 피붙이라고 당겨서 주고 또 줘도 아깝지가 않아 고기가 먹고 싶다면 허벅지살이라도 벨 심정이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춘하추동, 몸에 배인 몸은 오늘도 거리를 헤매며 파지를 줍고 빵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어느 날 질부가 찾아와서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조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지경인데 질부라고 어찌 다르랴! 감격에 겨워 입은 “고맙다”를 연말하고 고개는 연신 주억거려 의심 없이 차를 탔다. 하지만 그 시각 악마의 탈을 뒤집어 쓴 조카는 할머니의 집을 버선목을 뒤집듯 샅샅이 뒤져 애면글면 모은 할머니의 전 재산을 챙겼다. 반면 질부의 꾐에 따라나섰던 할머니는 점심도 거른 채 거친 바람이 휑하니 뒹굴어가는 메마른 언덕에 홀로 앉았다.

사연을 전해들은 동네주민들이 분개했다. 지옥나찰을 닮은 조카를 불러서는 무단주거 침입, 절도 등등으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제야 잘못했다며 가져간 금전을 도로 토해낸다. 하지만 그 금액의 정확성 여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당사자인 할머니도 모른다. 한곳에 차곡차곡 모았으면 모르겠거니와 그저 생기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이곳저곳에 모으다보니 액수를 기억할 수가 없는 것이다. 피붙이에 가깝고 지척이라 여겼던 조카의 배신이 그저 가슴이 뚫어진 듯 아프고 일엽편주, 망망대해에 던져진 듯 쓸쓸한 노년이 암담할 뿐이다.

이러한 재산분쟁은 부모자식 간에는 심심찮게 발생한다. 헌데 할머니는 조카와의 분쟁이다. 이는 현대사회가 낳는 또 다른 자화상이다. 결혼을 하지 않아 혼자가 되고, 결혼을 했더라도 무자식이다. 소위 말하는 틈새시장이랄까? 그 사이를 조카가 대신하려 나서는 것이다. 자식을 대신하려는 그 조카들 또한 이제는 한두 명 또는 한명이 고작이다.

김주영 원작 ‘겨울새’를 새로 읽는 듯하다. 주인공 ‘난옥’은 석녀에 글을 모른다. 소장수 남편이 밖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오자 질투심에 친정으로 도망친다. 글을 모르다보니 무당어머니가 남긴 전 재산을 조카가 가로챈다. 숙맥처럼 조카에게 푹 빠진 그녀가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은 재산을 이번에는 면사무소 담당자가 가로챈다. 이 또한 문맹이며 혼자가 된 여자가 겪는 설음이다. 이제 믿을 것은 옛 남편이 데리고 온 아이, 조카에게 “내 죽으며 다 네 재산인데 그 새를 못 참아!”하는 원망을 뒤로 물어물어 사팔뜨기 자식을 찾지만 그 역시 재산을 몽땅 처분하여 소장수로 집을 나가자 “어차피 내 것이 아니데!” 생면부지의 며느리와 갯벌에서 조개를 캔다.

머리를 깎고 염색을 마친 후 서성이는데 암갈색 짙은 외투에 중절모를 눌러 쓴 할아버지 한 분이 허겁지겁 문을 밀쳐 들어온다. “무얼 잃어 버리셨어요!” 묻자 “마스크가 안 보이네요!” 한다. 그러고 보니 방금 이발을 끝낸 할아버지다. 이발할 때와는 달리 번듯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옷이 날개라고 몰라봤던 것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려 찾아보지만 없단다. 다들 “다른 것은 몰라도 마스크는 안 가져갑니다” 이구동성 입을 모은다. 하지만 못들은 척 이발소 안을 두리번거려 찾아보지만 할아버지가 찾는 마스크는 없다. 작금에 상황에는 마스크가 없으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자, 이상한 사람, 옛날로 치면 간첩정도로 오인 받는 시국이다. 결국 이발소에 있는 여분의 마스크를 얻어서는 문을 나선다. 사랑방이 내 놓은 훈훈한 인심이다.

문득 유년시절 논둑을 벤다고 낫을 쥔 손으로 뒷짐을 지고선 삽짝을 나가 고샅을 돌던 아버지께서 당황한 듯 돌아와 “낫이~ 낫이”하며 새삼스레 낫을 찾던 때가 환영처럼 떠오른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깜박깜박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내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바람을 막아서는 문 입구로 할아버지의 잔상이 어릿어릿하고 이야기 중 “늘그막에 쓰고 남은 돈 푼이 무슨 죄일까?”하는 푸념이 연통을 통한 연탄가스처럼 슬그머니 문틈사이로 꼬리를 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