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 '저명해외인도학자상' 세계 4번째 수상 이거룡 교수
인도 정부 '저명해외인도학자상' 세계 4번째 수상 이거룡 교수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11.17 10: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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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음으로 못 갈 곳이 없다고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한다. 한 번 만들어낸 생각, 관념에 갇히게 되면 스스로 안주하게 된다. 그러나 관념속에 안주하게 되는 한 걸림없는 자유는 없다. 가슴 떨리는 삶도 기대할 수 없다.

 

평생을 함께한 책들과 함께 서재에서 이거룡 교수     강지윤 기자
이거룡 교수가 평생을 함께한 책들이 있는 서재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지윤 기자

이거룡(62) 교수는 지난 3월 인도 외교부 산하 인도문화교류위원회(ICCR:Indian Council for Cultural Relations)가 선정하는 ‘2019년 저명해외인도학자상(ICCR Distinguished Indologist Award 2019)'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인도 정부가 인도학 연구분야에서 학술적 성과를 거둔 외국인 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인도 정부는 2015년부터 해마다 해외학자 1명을 선정하여 시상해 왔다. 지금까지 독일, 중국, 일본에서 수상자가 나왔으며 2018년에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거룡 교수는 세계에서 4번째 수상자가 됐다. 그는 현재 ‘한국인도학회 회장’이며 선문대 대학원 통합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58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으며 델리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아름다운 파괴' '두려워하면 갇혀버린다' '인도사원순례' 등이 있다. 번역서로 '요가수뜨라 해설'과 라다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 전 4권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광역시교육청 강의로 부산을 찾은 이 교수와 어렵게 시간을 잡았다.

- 인도 정부에서 주는 큰 상을 받으셨다니 축하드립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으니, 이번 수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인도 외교부 산하에 해외학자와 문화를 총괄해서 살피는 부서가 있습니다. 규정에는 해외에 사는 비인도인으로서 인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탁월한 인도학자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2015년에 제정되어 제가 4번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인도 정부가 각국에 나가 있는 인도 대사관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면 관련 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쳐 선정합니다. 작년에 서류를 보냈는데 연락이 없어 기대도 않고 있었는데 2020년 2월에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9년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3월24일 대통령궁에서 대통령이 직접 시상을 하고 상금 2만불과 수상자 부부에게 인도 지역에 원하는 곳을 1주일간 보내주는 특전이 있다는 얘기였지요. 집사람(이행지, 요가원-리아슈람원장)이 무척 좋아했습니다만...(웃음)

그후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면서 무기 연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상장도 못 보았습니다. 인도 대사께서 본인이 한국 있을때 수상자가 나와서 영광이라고 인도학 하시는 분들 초대해서 파티를 열어 주셨습니다. 섭섭해서 그냥은 못 지나간다며...시상식은 아직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인도라는 나라, 또 인도의 철학을 공부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또한 남다른 선택을 하시면서 겪게 된 일화가 있으시면 들려 주시지요.

▶원래부터 종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다 어떤 연유로 강원도의 산에서 2, 3년 산 적이 있는데, 이때 대학원에 가서 종교학을 한 번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모대학에 가서 문의를 하고 추천을 받아 책을 한 짐 싸들고 산으로 갔지요. 그런데 보니까 종교의 시원이 인도가 많아요. 대학원을 마치고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인도로 가면 종교에 대해 폭넓게 공부하겠구나 하고...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한항공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인도로 가려면 인도항공을 이용해야겠지요. 예약을 하고 티켓을 샀습니다. 최종 목적지는 남인도의 마드라스, 지금의 첸나이였습니다. 티켓을 보니까 김포-방콕-캘커타-마드라스(국내항공)으로 돼 있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해서까지 비행기를 탄다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마드라스까지는 기차로 가기로 했지요. 인도로 가는 날 공항에 갔더니 인도항공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인도항공은 없고 방콕까지는 대한항공을 이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시간 후에 환승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결국 13시간을 기다려 캘커타행 비행기를 탔지요. 자정 무렵 캘커타 공항에 도착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공항 대합실에서 배낭을 안고 꼬박 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 택시를 타고 하울라역으로 가서 마드라스행 열차를 탔습니다. 이틀 후에 마드라스에 도착했는데 김포에서 사나흘이 걸린 셈이지요.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인도항공 대신 싱가포르 항공을 이용했더라면, 방콕에서 캘커타를 경유하지 않고 곧장 마드라스로 갈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한 나라에는 한 개의 항공사가 있다’는 나의 갇힌 생각 때문에 그 고생을 한 거지요.

그때는 그게 내 생각의 한계였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란 이렇듯 한정되어 있습니다. 흔히 마음으로 못 갈 곳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합니다. 한 번 만들어진 생각, 관념에 갇히게 되면 스스로 안주하게 됩니다. 우선은 편안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관념 속에 안주하는 한, 걸림없는 자유는 없습니다. 가슴 떨리는 삶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얘기가 다른 쪽으로 가버렸습니다만 그렇게 인도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긴 길을 걸어 오게 되었습니다. 왜 가는지도 모르고 가지만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되잖아요. 가서 보니까 내가 인도로 왔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후로 인도로 가는 여정이 화두가 되어 후에 ‘아름다운 파괴’라는 책을 쓰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지요.

'아름다운 파괴' 와 '요가 수뜨라' 책표지.  강지윤 기자
'아름다운 파괴' 와 '요가 수뜨라' 책표지. 강지윤 기자

-‘아름다운 파괴’라는 책은 저도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인도와 인도문화에 대해 편하게 얘기해 주셨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셨듯 콩에 물이 스쳐가 콩나물을 기르듯 성글게 틈새를 빠져 나간 생각들이 인도에 대한 스케치가 되어 인도 사회와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국대학에서 ‘인도의 철학과 문화’라는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파괴’는 그 강의를 엮어 세상에 나온 책으로 상식 수준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상식를 전하자는 뜻만은 아니었고 지금까지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관념들을 한번쯤 되짚어 보자는게 나의 의도였습니다. 인도얘기를 하고 있지만 강의의 주제는 우리의 생각과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도 되고 하니까(권장도서가 되면 책을 안산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웃음) 제게는 명함과도 같은 책이 되어 버렸습니다. 10년 만에 그동안의 질문과 대답을 덧붙여 개정판도 내고 했으니까요.

마드라스로 가는 여정을 얘기하면서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것 이상은 가지 못한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사실 그런 점이 인도가 가진 중요한 사유방식의 틀이지요. 서양철학이 존재론과 인식론을 다르게 본다면 인도에서는 ‘네 자신을 실천하라’고 합니다. 인도 사상에서 안다는 것은 된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컨대 ‘신을 안다는 것은 신이 된다’는 말로 받아 들입니다. 물론 힌두교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아니라 수천 수만의 신이 있습니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인연에 따라 ‘네 자신이 점점 너다워 지라’고 얘기합니다. 인도 사상이 가리키는건 자기 자신을 정말 알아간다는 것이고 차근 차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라 마음을 바라보라고 하지요. 요즘에 와서 양자역학이 발달하면서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마음을 알아가는 시대가 되었지요. 생각해 보면 역설이지요.

-인도는 대륙에 버금가는 영토와 13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또한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 역사 등으로 복잡한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도에 계셨고 인도에 대해 공부해 오셨습니다. 인도에 대한 얘기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인도를 다 안다는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인도의 매력을 묻는다면 다양성이 수용되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2차 대전 후 인도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 당시 공용어가 16개였습니다. 지금은 18개 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줄어야 할텐데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효율을 따질때는 독이 되는 얘기지요. 30만명 이상 사용하는 언어가 100개가 넘습니다. 이렇다 보니 모든 분야에서 나와 다른것에 대해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적극적인 의미의 포용은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거지요. 나도 젊은 시절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머리 기르고 산에 있으니 수상한 사람으로 신고도 하고 학교에서도 이교수 머리 좀 어떡하라는 얘기. 심지어는 어머님도 이 사람아 머리 좀 깍지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도 사람들 머리 단정합니다. 수행자들이나 부랑자들이나 산발할까? 그래도 아무도 간섭 안 합니다. 인도가서 처음 느낀게 ‘아, 이 동네는 엄청 자유롭구나’ 였습니다.

갠지스 강가의 집회에 모인 사람들.  강지윤 기자
갠지스 강가의 집회에 모인 사람들. 강지윤 기자

다양성의 뿌리는 수용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삶은 기후 풍토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남인도 지방으로 내려가면 섭씨 50도가 넘어 갑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지런히 다녀봐도 별로 소득이 없다는걸 알게 됩니다. 먹고 살기 급급한 하층민들이야 다니지만 식자층은 차츰 깨닫게 됩니다. 고급한 삶이란 관조하는 자발적 수동성이라는걸.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게 됩니다. 환경에 적응하지만 생각에도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인도사상에 현저히 나타나는 것이 수동성입니다. 이 수동성은 다양성으로 나타납니다. 적극적인 포용이 아니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스펀지에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배려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비틀즈의 ‘Let it be’라고나 할까요. 다양성이 공간적 느낌이라면 느릿느릿함은 시간적 다양성이지요. 인도에 간, 한국 여행자들이 견디지 못하는게 열차나 버스가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이죠. 제가 말합니다. 여행지에선 그 나라의 시공간 개념을 받아 들이라고요. 도리가 없어요. 흔히들 얘기하죠. 인도에 안 가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고. 그게 또 인도의 저력이나 매력일지도 모르지요.

-요즘은 몸이 화두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가 인구도 엄청납니다. 막상 요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요가란 무엇일까요?

▶요즘 우리 사회의 질문은 대부분 how(어떻게)만 있고 what(무엇)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가 규정되었을 때, 어떻게 할까를 결정하는 기준이 서겠지요. 요가는 길(道)입니다. 과정인 동시에 목적지입니다. 지금 앉아있는 이 순간이 다음 순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체가 목적이지요. 작두날 위에 두 발을 올린 것처럼, 현재의 순간에 온 마음을 다해야 요가를 닦는다 하겠지요. 요가는 심법(心法)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려면 숨이 고요하고, 숨 고요하면 몸 고요하고, 몸 고요하려면 사는게 고요해져야지요. 너와 내가, 나와 풀이 척지지 않고 살아 가는 일, 모든 생명이 유기적으로 연관 되어 있다는 생각 자체가 수련이지요.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 되신데에는 <인도철학사> 전 4권의 번역작업이 크게 작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책 소개와 번역에 얽힌 뒷얘기가 궁금합니다.

▶인도에서 <인도철학사>는 철학하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책입니다. 저자 라다 크리슈난은 인도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전통적인 힌두교 가정에서 자라고 기독교 교육기관에서 교육 받았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캘커타대 철학교수, 델리대 총장을 거쳐 구소련과 중국대사 등을 거쳐 제3대(1962~1967) 인도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전문 철학자가 대통령이 되는 세계 최초의 선례를 남겼지요. 그의 <인도철학사>는 인도의 철학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명저이며, 인도 고유의 근본적인 통찰을 명쾌하게 풀어 내면서 동시에 동서 사상 비교를 통해 인도철학을 세계무대에 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제가 번역을 시작한게 1996년으로 인도에 교환교수로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부터 5년에 걸쳐 했습니다. 4권을 합치면 2천5백 페이지 가량 됩니다. 하루에 적어도 7~8시간은 꼬박 매달려서 했지요. 4권이 전부 번역된 곳은 한국이 처음인 걸로 압니다. 정년이 3년 남았으니 정년 후 다시 한번 교정본을 내고 싶습니다. 젊을 때 이해하는 것이 지금과 다를 수 있고 그후 20~30년이 지났으니 깊어진 눈으로 다시 보고싶은 원이 있습니다. 온 생각을 모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지금 세상은 온통 코로나와의 싸움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우울)를 얘기합니다. 또한 양 극단으로 갈라져 서로를 탓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사태로 블루인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사회 전체를 코로나 블루로 염색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삶은 거칠게 말하면 싸움이지요. 그 점을 인정하면 필요한 건 싸우지 않는게 아니라 싸움의 기술이지요. 힌두교 경전에 <바가바드 기타>가 있습니다. 거기에선 싸움의 기술을 얘기합니다. 승리와 패배를 하나로 여기고 싸우라, 득과 실을 하나로 여기고 싸우라고 얘기합니다. 이 얘기가 추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싸움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박멸을 얘기하지는 말자는 거지요. 서로 이해의 지평을 넓히자는 말입니다. 코로나와의 싸움도 부부싸움도 마찬가집니다. 궁극적으로는 대척점으로 여기는 양측의 합일이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나의 일부와 너의 일부가 하나되어 사라지는 것, 서로의 교집합이 되었을때 화해가 되고 공존이 되는 거지요. 이것이 인도사상의 핵심이지요.

싸울 수 밖에 없지만 싸움이 좀 달라야겠지요. 공존 이외에는 방법이 없잖아요. 자기 내면을 바라보는 데에도 다 통하는 얘기지요. 그래서 명상에서는 일어나는 생각을 바라보라고 하지요. 생각을 쫓아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불필요 해서 버려야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불완전한 것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지요. 일방적으로 이기고 살 수 있습니까? 지금 이겼다 생각하더라도 반드시 반작용이 일어나지요. 세상 모든 일은 돌고 돌아서 흘러 갑니다.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이지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물어 보세요. 십중팔구는 못 듣는 것 보다 안 들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인도의 긴 사상사에서도 물음은 비슷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안세계). 해가 안 떨어지는가(바깥세계). 요즈음도 큰 차이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시면 인도와의 남다른 인연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돌아보면 내 삶은 길 위의 인생입니다. 첩첩산중 울진에서 태어나고 자라 부산, 서울, 남인도의 마드라스와 북인도의 델리를 지나왔습니다. 더러는 스스로 떠나기도 했고 또 운명에 등 떠밀려 떠난 것도 같습니다. 인도 유학을 시작으로 수십차례 인도를 오갔고, 지금도 매년 두 세차례 인도로 갑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매주 열차로 서울-부산을 다니다가 아산-부산을 다닌지도 그만큼 되어 갑니다. 주변 사람들은 열차로 오가는 길이 고단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만 열차 안이야말로 혼자 한적한 곳, 참 괜찮은 수행처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가두거나 가두어질 때 깊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아니 그 어려운 인도에 왜. 당시 칠순이 넘은 어머님도 그러셨습니다. 하필이면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그곳에 왜 가느냐고. 나를 끄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따라 흘러 온 거 같습니다. 용기도 없고 소심한 내가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곳, 험한 곳이라 말하는 곳으로 데려다준 운명에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개울가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나누는 한담처럼, 느긋하고 여유로운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긴장과 불안에 지쳐있던 마음이 어느새 기지개를 켠다. 마음을 잠잠히 하고 앉아 귀 기울이면 못 듣는게 아니라 안 들으려 했던 마음의 소리를 알아 챌지도 모르겠다. 씨앗은 어둠 속에서만 싹을 띄우듯 내 안에 발아되지 못한 채 아직도 웅크리고 있을 그 무언가를 알아가는 시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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