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건강한 우울과 병적 우울 (우울증, 그 다양함에 대하여)
[건강 칼럼] 건강한 우울과 병적 우울 (우울증, 그 다양함에 대하여)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11.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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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기분’은 요즘같은 가을철에 매우 흔한 현상이다. 우울한 기분이 일시적으로 있다고 그것을 ‘우울장애’로 진단하지는 않는다. 즉 우울한 기분은 정상적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우울장애’는 심하고 걱정스러운 우울 상태를 말한다. 단순한 우울 기분은 일상적이지만 우울장애는 일상적인 것을 파괴하는 병적인 것이다.

우울증상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기분이 저하되고 우울한 느낌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흥미나 즐거움이 적어지는 것도 우울 증상이다. 죄책감을 가지고 힘들어 하는 것도, 지나치게 후회되고 내 탓인 것 같은 기분도 우울증상이다. 피로감이나 의욕 없는 상태도 우울증상이다. 불면증과 그 반대인 수면과다 현상도 우울증상에 속한다. 식욕 또한 마찬가지다. 식욕의 저하는 당연히 우울증상이지만 식욕 과다도 우울증상이다. 그래서 ‘섭식장애’도 그 뿌리는 우울장애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또한 체중이 감소하는 것을 우울증상으로 보지만 반대로 체중이 증가하는 것도 우울증상이다. 집중력의 저하와 심지어는 치매처럼 기억의 장애까지 우울증상으로 판단한다. 이렇게 다양한 현상들을 다 우울증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도 우울증이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울장애는 단지 이런 증상들만 있다고 해서 진단하는 병은 아니다. 현재 우울장애로 진단 되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6가지이다. ‘주요 우울장애, 지속적 우울장애, 파괴적 기분 조절장애, 월경 전 기분 불쾌장애, 물질이나 질병에 의한 우울장애,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한 우울장애’ 들이 그들이다. 이들 진단명은 각각 그 기준이 있다. 진단명을 붙이기 위해서는 우선 우울증상의 정도와 그 개수가 필요하며 또 우울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증상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적응에 큰 어려움을 느끼거나 혹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제를 나타내어야 진단된다. 정리하자면,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기본적인 증상이며 게다가 이런 증상들 몇 가지가 동반되고 적어도 2주 이상의 기간 동안 상당한 고통이 있으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우울장애로 진단하게 된다.

우울장애는 이런 공식적인 명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울장애는 수많은 비공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비공식적인 이름을 우리는 더 많이 사용한다. ‘주부 우울증’ ‘고3병’ IMF증후군, 빈둥지 증후군, 며느리 우울증, 중년남성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노인 우울증, 신경성 우울증, 반응성 우울증, 내면성 우울증, 경도 우울증, 만성 우울증, 2차성 우울증, 계절성 우울증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우울장애는 또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서 나타내는 증상들이 다르다. ‘월경 전 불쾌감 장애’는 가임기 여성의 월경 주기에서 두드러진 불안한 기분, 과민한 기분, 분노, 대인관계의 갈등, 현저한 우울 기분 등의 증상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진단할 수 있다.

소아나 청소년들의 우울장애는 또 다른 모습이다. 우울한 기분보다 ‘분노발작’이나 ‘과민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래서 분노발작이 일주일에 3회 이상 나타나거나 그 사이 기분이 지속적으로 과민하거나 하루 대부분의 시간 화가 나 있을 경우에는 ‘파괴적 기분조절 부전장애’라는 진단명을 사용한다. 이는 소아나 청소년들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우울 반응을 고려하여 새롭게 개념을 정리한 우울장애이다.

노인들의 우울은 또 다른 모습으로 앓는다. 노인들의 우울은 모호한 신체적 증상을 많이 호소하며 불안과 불면이 잘 동반된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차이는 집중력과 기억력의 저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치 치매 증상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이를 ‘가성치매’라고 부른다. 노인 우울증을 진단할 때 꼭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이렇듯 나이와 성별에 따라 진단 기준들이 다르므로 단지 우울한 기분이 있다고 우울장애라고 쉽게 진단해서는 안 된다.

우울한 기분이 다 나쁘게 작용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때로는 정서를 살찌우는 것에 우울한 기분도 필요하다. 우울한 기분은 사색하게 하고 통찰하게 하고 깊은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 우울한 기분으로 시작된 자기 내면의 탐색이 창조적인 힘으로 변환된다면 바로 ‘건강한 우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적인 우울’은 이런 창조적인 힘으로 극복되지 않고 자기 파괴의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 그것이 건강한 우울과 병적인 우울의 큰 차이다.

곽호순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곽호순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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