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추억-신문에 기고한 글 한 편 때문에....
이 가을의 추억-신문에 기고한 글 한 편 때문에....
  • 남성숙 기자
  • 승인 2020.11.1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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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집안 정리를 하던 중 누렇게 빛바랜 신문 스크랩 하나를 발견했다. ‘가을 여행에서’라는 내글이 실린 1982년 10월 28일자 매일신문 지면이었다.

‘아침나절 빨래를 널기 위해 올라간 옥상 위에서 올해 들어 처음 가을을 만났다’로 시작된 글 속에서 38년 전의 나를 만났다. 잊고 있었던 약속시간을 그 몇 분 전에 생각해낸 사람처럼 서둘러 꽃단장을 하고 버스에 올라 가을 풍경을 보며 히죽거리는 철없고 엉뚱한 스물다섯 살의 처녀가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넋두리들을 글로 쓰고 신문사에 보낸 것이 사단(?)이었다. 글이 신문에 실린 후 하루에 수십 통의 편지가 집으로 날아들었다. 내 글 속에 ‘꼭 한 사람, 아니 아주 다정한 사이라면 둘이 오를 수도 있음직한 돌계단’을 함께 오르고 싶다는 제철소에 근무한다는 청년, ‘말갛게 잘 닦여진 거울같은, 그래서 하늘이 없어졌나? 하고 눈을 깜박거려 다시 본 하늘’이라는 대목에서 순수한 모습이 좋다며 꼭 연락을 달라는 예비선생님, 답장이 올 때까지 편지를 계속 보내겠다고 귀여운 협박(?)을 하는 연하남 군인아저씨….

그러나 어쩌랴. 나는 결혼을 두 달 앞둔 예비신부였던 것을. 며칠 오다가 곧 멈추려니 했던 편지가 한 달이 넘어도 계속되자 공연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덜컥 겁도 났다. 아버지께서는 결혼을 앞두고 경솔한 행동을 한 나를 심하게 꾸짖으셨고 어머니께서는 예비사위와 사돈어른들이 알면 흠 잡힌다며 매일 오는 편지를 태워 화단에 묻으셨다. 나는 다소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죄인처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가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겨울에 접어들어 결혼식은 무사히 치렀지만 ‘품절녀’인지 모르는 총각들의 편지는 그 후 겨울까지 드문드문 이어졌던 것 같다. 시대가 그랬다지만 일방적으로 보내오는 편지로 인해 죄인 취급 받았던 것에 대한 억울함, 답장을 기대하며 용기 내어 보냈을 편지들을 읽지도 않고 태워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 또 놓친 물고기가 더 크다고 했던가, ‘꽤 괜찮은 사람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등. 38년이 지난 이 가을에 문득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