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추억-어린 제자가 건내준 책 한 권
이 가을의 추억-어린 제자가 건내준 책 한 권
  • 김대한 기자
  • 승인 2020.11.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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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은 그다지 길지 않을 듯하다. 몹시도 더웠던 여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기 그지 없다. 이런 쌀쌀한 날씨에 가을 길을 달려온 고사리 손에 담긴 가을의 추억을 가만히 만져본다.

20년도 더 된 옛날, 안동 복주여자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교정에는 잎사귀 큰 미루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 운동회를 열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치장을 한 가을 소년 소녀들이 한바구니 가득 가을을 담아 교정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가을을 대접하고 있었다. 교실 창 너머로 이러한 풍경을 감상하는 이들도 어느새 가을옷을 입고 있었다.

하늘이 한층 더 높아진 어느 가을 아침, 신작로를 달려온 여학생이 내 책상 위에 ‘오늘은 기쁨의 집’ 이란 예쁜 탁상용 책 한 권을 놓고 갔다. “선생님 마음 앞에 놓아드립니다”라고 쓴 쪽지글과 함께였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가슴 따뜻한 글들이, 1년 365일 매일 매일 영혼이 맑은 님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 글들을, 그 님들을 혼자서만 만나는 것이 죄스럽기도 해서 학생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수업 시작하기 전 고요한 마음으로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목소리가 맑은 한 학생이 글을 읽어 내려가자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날이 갈수록 분위기는 점차 차분해졌다.

“일을 하며 살아라. 무슨 일이어도 좋다. 다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베갯잇에 눈물을 적셔본 사람만이 별빛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는 이여, 영혼의 향기는 고난 중에 발산됩니다” 등등. 듣고 있는 학생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하나같이 아주 해맑은 모습들이었다. 내 마음 또한 맑아진 듯했다.

맑아진 눈으로 한층 높이 솟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본다. 향기 높은 가을에게 부탁하고 싶다. 코로나19로 시름이 깊어가는 이 가을에도 모든 사람들의 삶이 더없이 행복했으면, 그런 마음을 갖게 해달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