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추억-진목정으로 가는 길
이 가을의 추억-진목정으로 가는 길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11.17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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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일본 나고야 단풍놀이 중 토마스(오른쪽)와 함께 기념촬영했다. 정신교 기자

 

진목정은 경주시 산내면에 위치한 천주교 대교구 성지이다. 사촌 아우 토마스는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던 2018년 추석 명절을 며칠 앞두고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순직하여 이곳 봉안당에 안치됐다.

또래의 사촌 형제들 가운데 나와는 연년생으로서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을 거쳐 가정을 꾸리고, 교수 생활을 하면서 공유한 추억들이 너무나 많다. 전공과 대학은 다르지만, 같은 해에 전임강사로 임용되고 명절 연휴나 휴가철에는 호선 바둑과 테니스에 몰입하여 날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해 입동을 며칠 앞둔 일요일 우리 부부는 그가 영면하고 있는 진목정을 찾았다. 차에서 내려 봉안당으로 가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노부부가 반색하고 반긴다. 중학 동기인 L 원장 부부였다.

우연한 만남을 자축하는 의미로 우리는 읍내로 나와 늦은 점심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L 원장 부부는 ‘영혼의 안식처로 마땅한 사후 저택을 찾으러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천년만년 사는 것이 아니니,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충고도 곁들여서…. 큰애도 아직 출가 전이고, 막내도 사회 초년병인 우리 내외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동기들의 산행 모임(이오산우회)이 있다. 지난 8월에는 열성회원들이 근교 산을 타고 하산해서 근처 시장에서 수육과 막걸리로 해갈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도 감염병 고위험군에 접어들었으니, 사후 저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몇 해 전 진목정 이야기를 꺼냈다.

그후 사나흘이 채 되지 않아서 출장지인 여수에서 산우회원 R 교수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직전 산행 모임의 화두가 마음에 걸려서 여수 밤바다를 앞에 두고 괴로워했다.

‘공수래공수거.’ 최근 작고한 모 그룹 회장의 사무실에 걸린 현판이다. 하나둘씩 비워가면서, 지치고 피곤한 몸과 영혼의 안식처가 될 진목정을 찾아 나서는 것도 웰빙의 한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