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추억-그 가을, 팍팍하게 계룡산을 넘다
이 가을의 추억-그 가을, 팍팍하게 계룡산을 넘다
  • 이동백 기자
  • 승인 2020.11.17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 시절 캠핑에서 찍은 최초의 컬러사진. 맨 왼쪽이 기자.
대학 시절 캠핑에서 찍은 최초의 컬러사진. 맨 왼쪽이 기자.

 

대학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대구에서 계룡산으로 떠난 2박 3일의 캠핑 여정이었다. 낮선 여행지에서의 첫날밤이 주는 마력에 이끌려 학년을 초월하고 남녀를 초월하여 한데 어울려 계룡산 은선폭포 언저리에서 낭만의 밤을 보냈다.

이튿날은 계룡산 등정으로 옹근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은선폭포에서 출발하여 남매탑, 갑사를 돌아 은선폭포로 회정하는 코스를 잡았다. 오누이의 애틋한 인연이 깃든 남매탑을 처연히 바라보고 산을 넘었다. 화엄십찰 중의 하나인 갑사를 대충 둘러본 후, 절집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본즉, 돌아가는 길도 여의치 않을 듯했다.

은선폭포로 넘어오는 길은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데, 사람이 오르기에는 가파르고 멀었다. 점심을 짜게 먹은 탓일까.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물이 떨어진 것은 가야할 길이 아득한 지점에서였다. 고갯마루에 가면 샘이 있다며, 선배들은 걸음에 속도를 붙이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예지랑날에 가파른 길에서 겪는 갈증의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고갯마루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선배 몇이서 물이라 소리치며 물을 길어왔다. 모두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순식간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물 한 모금으로 찰나에 타는 목마름의 고통에서 풀려났다. 뒤에서야 알았지만,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물을 향해 돌진한 힘은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강하더라는 사실이었다. 그 가을 계룡산 등성이에서 물병을 낚아채던 어느 여자 선배의 날랜 솜씨가 지금도 기억의 저편에 되똑하게 남아 있다.

그날 밤, 나는 여학생들 앞에서 템페스트의 노래를 흉내내느라 부끄러운 땀을 한창 흘려야만 했다. 그때 별똥별 하나가 쿵하고 지구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십 년도 훨씬 전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