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을 빌어 가을 만찬을 즐기는 새들
까치밥을 빌어 가을 만찬을 즐기는 새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11.0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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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가을이 좋다. 홍시가 좋다.
더 이상 까치 밥은 까치 밥이 아니다.
홍시 맛에 반한 직박구리는 아예 얼굴을 감 속에 파 묻었다. 이원선 기자
홍시 맛에 반한 직박구리는 아예 얼굴을 감 속에 파묻었다. 이원선 기자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 매년 이맘때가 되면 치르는 연례행사처럼 대구수목원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단풍도 단풍이려니와 까치밥을 탐내는 뭇 새들을 보기 위함이다.

까치는 옛날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라 여겼다. 그런 까닭에 인간들은 될 수 있으면 까치에게만은 양보의 미덕을 보였다. 곧장 겨울로 접어들면 춥고 배고플 까치들을 위한 배려는 특히 더 그랬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감나무 꼭대기엔 두서너 개의 감이 달렸다. 까치를 위한 까치밥이다. 기다란 장대 끝이 허공에 삐죽한 것이 분명 따기가 힘들어서 남긴 것은 아닐 것이다. 누렇게 익은 홍시를 보고는 '아버지~' 하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이 있건만 필연인 듯 남긴다.

본래 까치는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새다. 높은 곳을 좋아하다보니 동구 밖에 있는 미루나무나 키 큰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나무를 즐겨 찾는다. 그렇다고 맨 꼭대기에 집을 지으면 천적에게 노출되기도 싶거니와 바람이 불면 심하게 흔들려서 위험하다. 그래서 택한 곳이 우듬지쯤이며 잎이 무성한 곳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다 둥지를 틀다 보니 사방이 훤하게 보인다. 아침 일찍 일어난 까치는 동구 밖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가장 빨리 본다. 게다가 시력은 인간들에 비해서 보통 5배나 밝고 머리는 좋아 웬만한 마을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배부른 직박구리가 감 속을 파서 입에 물고는 가을을 만끽하고 앉았다. 이원선 기자
배부른 직박구리가 감 속을 파서 입에 물고는 가을을 만끽하고 앉았다. 이원선 기자

그런 눈에 이방인이 눈에 들어오면 까치들은 위험을 알리려 ‘까악~까악’운다. 까치가 기쁜 소식 나쁜 소식을 어찌 알까마는 하여간 본능에 따라서 그저 운다. 그런 까치의 울음소리를 사람들은 달리 해석하여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 한다. 특히나 집배원이 나타나면 더 기쁜 소식이 왔단다. 두메산골이다 보니 집배원도 열흘씩, 보름씩 온다. 대처로 시집간 딸이 아기를 낳고, 일자리를 찾아 떠난 아들이 용돈을 보낸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하지만 다 기쁜 소식을 아니다. 가끔 부고장도 양념처럼 곁들여 온다.

애교스럽게도 앵두나무 우물가에 빨래하던 처녀가 서울로 도망가서 편지를 하고, 장가갈 요량에 잡겠다고 따라간 동네총각도 편지를 한다. 나쁜 년, 나쁜 놈! 보고 또 보고 눈물 콧물바람에 편지지가 해지도록 봐도 기쁘단다. 그래서 까치가 고맙단다.

가을 만찬에 숟가락을 올린 오색딱다구리도 배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원선 기자
가을 만찬에 숟가락을 올린 오색딱다구리도 배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원선 기자

하지만 요즈음 까치밥이 따로 없다. 먹을 것이 흥청망청 지천에 널려서 감 따위는 아예 따질 않는다. 인건비도 안 나온단다. 덕분에 새들이 호강에 뻗쳤다. 가끔 청설모도 양발로 대붕(감) 한 개를 움켜잡고는 배부른 가을이 된다. 재주껏! 날짐승은 물론 나무를 타는 짐승까지 배가 터지게 다 먹는다. 미처 못다 먹은 것은 홍시가 되어 능소화의 붉은 통꽃처럼 툭툭 떨어진다. 그 귀하던 감이 천덕꾸러기로 전락, 마당에도 떨어지고 뒤란에도 떨어진다. 떨어진 곳마다 벌겋게 물들고 게다가 찐득찐득하여 청소하기만 귀찮다고 하소연이다.

약주가 지나쳐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의 입에서 달콤하게 풍기던 감 홍시 냄새와 같은 감일진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