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와촌면 박사리 반공 희생자 38위 위령제 거행
경산 와촌면 박사리 반공 희생자 38위 위령제 거행
  • 김정호 기자
  • 승인 2020.11.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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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위의 영혼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초헌관 헌작. 김정호 기자
초헌관 헌작. 김정호 기자

지난 10월 30일 오전 11시 30분. 경북 경산시 와촌면 박사리에서는 뜻깊은 위령제가 거행되었다. 1949년 11월 29일(음 10월 10일) 북한 무장공비들에게 무참하게 희생된 38위에 대한 진혼 위령제였다.

예년에는 경산시 관계자, 지역 유지들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위령제를 올렸으나 올해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몇몇 유지들과 유족회 중심으로 조촐하지만, 정성을 담은 행사로 치러졌다.

이날 위령제의 사회는 수필가이자 향토사학자인 박기옥 씨가 맡았다. 사회자의 내빈 소개에 이어 윤성해 유족회 회장의 헌사로 위령제는 시작되었다. 분향, 강신, 참신에 이어 윤성해 회장이 독축을 했다. 이어 자유총연맹 경산지회 이용희 지회장이 초헌관을, 김헌수 와촌면장이 아헌관을, 유족 원로이신 배일수 어르신이 종헌관을 맡았다.

위령탑 모습과 우령제 전 모습 김정호 기자
위령탑 모습과 위령제 전 모습 김정호 기자

이날 위령제에는 조선일보 최보식 대기자, 와촌 출신 도광의 시인, 김헌수 와촌 면장, 그리고 강수면 (전) 경산시의회 의장, 이정렬 와촌 농협 조합장,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관계자 등과 50여 명의 유족이 참석하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한마음으로 추모하였다.

 

수필가 박기옥이 당시의 상황과 유족들의 증언을 모아서 저술한 '박사리의 핏빛 목소리'에 의하면 박사리 학살 사건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나라가 해방되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1949년 11월 29일 와촌면 동강리 나무꾼 도달권이 양시골(兩城谷)에서 공비의 소굴을 발견하였다.

“어디에 사느냐? 신고하면 너와 너희 마을을 박살내버리겠다고.”고 위협하였다 엉겁결에 도달권은 “박사리에 삽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비에게 풀려난 그는 바로 지서에 신고하였다. 당국은 군경합동작전을 펼쳐 공비 78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였다. 잔당은 동료의 원수를 갚고자 운문산 공비들과 합세하여 박사리 마을을 습격하였다. 소위 보복성 공격이었다.’ 이 사건으로 박사리 남자 38명이 희생당하고 수많은 가옥이 화마에 휩싸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70여 년이 지난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어제의 일 같이 안타까움과 유족들의 서러움이 묻어나는 위령제 앞에서 숙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