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장서 산책] 슈테판 츠바이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0.11.02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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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 1453~1917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20세에 시집 '은빛 현'으로 등단한 이후 시와 소설, 전기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1920~1930년대 유럽 최고의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1934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떠났고,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심한 우울증으로 1942년 부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안인희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밤베르크대학에서 유학했으며, 1990년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어권 대표 번역자이며 인문학자로서 유럽 문화사의 중요 저작들을 끊임없이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간적·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열두 인물의 극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1. 동로마 제국의 최후

1451년 부친의 사망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자가 된 메흐메트 2세(Mehmet Ⅱ)는 비잔티움을 공격했다. 비잔티움의 성벽은 1,000년 동안 황제들에 의해 보강되고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시대에는 난공불락의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최후의 공격이 있던 날, 예기치 않은 사고가 있었다. 주요 공격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 외벽의 갈라진 틈 한 곳으로 들어간 오스만 병사들은 어느 순간 안쪽 성벽의 작은 문들 중 하나, 이른바 '케르카포르타(Kerkaporta)'가 누군가의 실수로 잠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일 개 부대 전체가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케르카포르타를 잠그지 않은 사소한 실수 때문에 동로마제국은 멸망했다.

2.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의 부활

헨델은 1737년 4월 13일 오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다. 넉달 동안 힘없이 살던 헨델은 의사의 권유로 아헨(Aachen)의 온천지로 갔다. 헨델은 온천수에 세 시간 이상 몸을 담그지 말라는 의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매일 아홉 시간씩 몸을 담그어서 보름 만에 뇌졸중을 완치했다. 헨델은 1741년 8월 21일 찰스 제넨스가 보낸 시를 보고 작곡을 시작해 3주 후 9월 14일에 오라트리오 '메시아'를 완성했다.

3. 워털루의 세계 시간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1815년 6월 15일 벨기에의 리니 근처에서 블뤼허가 지휘하는 프로이센군을 격퇴하고 워털루로 향했다. 나폴레옹은 퇴각한 프로이센군이 웰링턴의 부대와 합세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의 군사 1/3로 추격 부대를 편성하고 지휘권을 에마뉘엘 드 그루시 장군에게 맡겼다.

1815년 6월 18일에 워털루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 개시 2시간 동안 1만 명이 사망하였다. 양쪽 군대는 지쳤고, 양쪽 사령관은 불안해했다. 양쪽 모두 지원군이 먼저 오는 쪽이 승리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웰링턴은 블뤼허를, 나폴레옹은 그루시를 기다렸다.

그날 오후 블뤼허가 지휘하는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영국군에 합세하러 나타났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명령에 충실한 그루시는 프로이센군을 추격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워털루 전투에 패함으로써 나폴레옹의 왕국, 그의 왕조, 그의 운명은 끝났다. 그루시라는 소심하고 평범한 인물로 인해 가장 용감하고 가장 멀리 내다보던 인물의 영웅적인 20년 세월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4. 칼스바트와 바이마르 중간 지점에 선 괴테

일흔넷의 노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열아홉 살짜리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마음이 향했다. 그래서 가장 오랜 친구인 대공작에게 부탁해서 울리케의 어머니에게 괴테가 울리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정확한 답변은 없었다. 괴테는 확답을 받지 못한 구혼자가 되어 울리케를 따라 마리엔바트에서 칼스바트로 왔다. 하지만 여기서도 불확실성만을 보았을 뿐이다. 아무 것도 약속받지 못한 채로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채로, 마침내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1823년 9월 5일이었다. 괴테는 울리케와 이별한 후 그 때의 감정을 담은 '마리엔바트 비가'를 완성한다. 열아홉 소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방황하던 괴테는 그 후 중단되었던 작품에 매진하여 '빌헬름 마이스터'와 '파우스트'를 완성한다. '파우스트'는 '마리엔바트 비가'를 탄생시킨 저 비극적인 운명의 날들로부터 7년 만에 완성되었다.

5. 남극에 남긴 두 번째 발자국

1910년 6월 1일, 로버트 F. 스콧(Robert Falcon Scott)을 대장으로 하는 남극 탐험선 '새로운 땅(Terra Nova)'이 영국을 출발했다. 1911년 11월 1일에는 남극점 정복을 위한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되었고, 12월 30일에는 섀클턴이 도달했던 지점인 남위 87도에 도착했다. 남극까지 가는 길은 다섯의 정예 대원(스콧, 보어스, 오츠, 윌슨, 에반스)에게만 허락됐다. 1912년 1월 18일, 스콧 대장과 네 명의 대원은 남극에 도달했다. 아문센에 이은 두 번째 남극 정복이었다. 그들은 슬픔에 차서 영국기, '너무 늦게 온 유니언잭'을 아문센의 노르웨이 깃발 옆에 꽂았다.

돌아가는 길에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들이 남긴 흔적뿐이었다. 2월 17일에 에반스가 사망하고, 3월 2일에는 오츠가 캠프를 떠난다. 3월 29일, 세 사람은 어떠한 기적도 자신들을 구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각자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고, 그들의 마지막 고통은 바깥세상으로 한숨 한 번 새어나오지 않았다.

베이스캠프에서 기다리던 대원들은 남극의 봄인 10월 29일이 되어서야 세 사람을 찾아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11월 22일, 그들은 텐트를 발견했다. 영웅들의 시체가 언 채로 침낭 안에 있었다. 스콧은 윌슨을 형제처럼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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