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대전 대둔산에서 황홀한 일출을 맞이하다
만추의 대전 대둔산에서 황홀한 일출을 맞이하다
  • 정영숙 기자
  • 승인 2020.10.29 17: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은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찰칵찰칵’ 이는 기계음이 조용한 산천의 새벽을 일깨운다.
원효대사는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 극찬했다.
사람과 하나가 된 대전 대둔산의 일출. 정영숙 기자
사람과 하나가 된 대전 대둔산의 일출. 정영숙 기자

가을은 여행을 떠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빨갛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면 왠지 감성을 담은 시를 써서 읊고픈 마음에 에메랄드빛 하늘을 올려다보고 노래가사처럼 주소 없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하루하루가 아깝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때 대둔산을 가자는 지인들의 요청에 주저 없이 따라나선다.

대둔산은 전북과 충남을 경계로 하나의 산을 두고 전북과 충남에서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한 산이다. 보통은 충남 대전을 들어서 ‘대전 대둔산’이라 부른다. 한국 8경의 하나로 산림과 수석의 아름다움은 당연지사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기암괴석들이 각기 위용을 자랑하며 진시왕의 용병처럼 늘어서있다. 따라서 대둔산 도립공원하면 기암괴석, 단애와 단풍이 어우러지는 가을철이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지만 기온이 급강하하는 겨울철이면 무서리 흠뻑 덮어 쓴 듯 뽀얀 상고대로도 유명한 산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싹이 연푸르게 돋는 봄 산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완주 방면의 대둔산 집단시설지구에서는 케이블카로 삼선구름다리 아래까지 올라 1시간 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어 나들이 코스로도 인기 있다.

대둔산의 가을을 담기위해 일행은 태고사주차장- 낙조대 삼거리 –V계곡 –장군봉 –태고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새벽 4시경 태고사주차장을 출발한 일행은 어둠을 뚫고 산을 오른다. 산행하기 좋은 가을철이라지만 카메라장비와 간단한 간식거리를 짊어진 어깨가 터벅터벅 돌부리를 타고 넘는 무딘 발걸음에 쉼을 재촉한다. 거기에 코로나19의 심술로 인해 거추장스러운 마스크까지 덤으로 한몫 보탠다. 1/3지점에서 물 한 모금으로 원기를 보충하고 2/3지점에서 재차 숨을 고른다.

출발하고 1시간이 지난 5시경 낙조대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낙조대로 가는 길이다. 낙조대는 말 그대로 서해안으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는 포인트다. 하지만 오늘은 일출을 보기 위해서 나선 참이다. 오른쪽이 아닌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만추의 일출을 맞는 대전 대둔산의 명품 소나무. 정영숙 기자
만추의 일출을 맞는 대전 대둔산의 명품 소나무. 정영숙 기자

그동안 SNS 등에서 떠도는 명품 소나무의 일출이 불현 듯 눈앞에서 삼삼하다. “어떻게 흉내라도 내어야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자 막차 시간에 쫓기는 승객인양 마음이 바쁘다. 그런 소박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벌써 주 포인트에는 새벽을 달려온 우리들보다 부지런한 진사님들이 장사진을 치고선 동녘은 향해서 일렬횡대로 섰다. 염치불구하고 자리를 잡을 차례다. 어림짐작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빈틈이다 싶은 곳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 삼각대를 펼쳐 원래부터 내 자리인양 꿰찬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사위풍경이 눈에 들고 때마침 동녘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해말갛게 얼굴을 내민 태양이 찬란한 빛을 산정으로부터 흩뿌려 내린다. 속세의 모든 짐을 훌훌 벗고선 자연에 동화되고 싶은 시간이다. 하지만 아직은 욕심이란 앙금이 가슴속에서 부풀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새 눈은 카메라의 뷰에 꽂혔고 손은 셔터를 누르고 있다. ‘찰칵찰칵’ 여기저기서 이는 기계음이 조용한 산천의 새벽을 일깨운다.

모처럼 만에 나선 어려운 걸음이 또 다른 욕심을 불러 다음 포인트로 이끌고 잠시 뒤 귀신에 홀린 듯 칼바위 포인트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역시나 이곳에도 골짜기에 든 삼밭처럼 진사님들이 빼곡하다. 틈을 비집고 내려다보는 계곡으로 새벽을 여는 운무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크고 작고 올망졸망한 산들의 하반신을 적당하게 감싸 안은 운무가 첫사랑 앞에 선 떠꺼머리총각의 설레는 가슴처럼 일렁거린다.

대둔산의 새벽을 여는 운무가 발 아래에서 넘실거린다. 정영숙 기자
대둔산의 새벽을 여는 운무가 발 아래에서 넘실거린다. 정영숙 기자

세상의 아름답고 가슴이 먹먹한 풍경을 감상하려면 사진을 배우라는 말처럼 멋진 장관의 연출이다. V계곡의 소나무와 태양 빛이 연출하는 풍경도 그렇고 국민 포인트로 이름난 장군봉 암벽 위도 그렇다. 무위자연(無爲自然 : 전혀 손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말뜻은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을 가리키는데,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태도를 가리키기도 함)이 연출하는 아름답고도 황홀한 시간과 풍광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산 곳곳에서 넘쳐난다. 그 중 나도 하나다. 기암괴석과 구부러지고 휘어진 소나무, 넘실거리는 운무, 그 사이를 부드럽게 파고드는 일출의 붉은 햇살이 오늘 하루의 일상을 함께하자며 부추겨 이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오늘의 미완은 미구의 어느 날, 다음을 예약할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마음속에 그려서 품었던 풍경을 초월함에 그저 아름답다는 감탄사의 연발이다. 대둔산이 아낌없이 내어주는 풍경에 몸과 마음이 힐링에 충만한 시간들이다.

전북 완주군 방면으론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다. 케이블카로 올라 구름다리를 건너고 삼선계단을 타고 오르면 마천대가 있는 정상까지 갈수 있다. 신라 때 원효대사는 대둔산을 둘러보고 난 후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산’이라 극찬했고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