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형태의 연못과 육각 정자, 경주 귀래정
독특한 형태의 연못과 육각 정자, 경주 귀래정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10.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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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때(1755) 여강이씨 문중에서 학당으로 세워 육화당으로 부름.
기묘사화때 귀향부를 짓고 낙향한 지헌 이철명 추모 귀래정으로 바꿈.
자연친화적 독특한 형태 조경기법, 육각형 모양 정자 건축기법 진면목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건축적가치 뛰어나 2019년 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
귀래정의 독특한 연못형태로 볼때, 연지는 북두칠성, 다리는 오작교, 괴석 2개는 계수나무, 귀래정은 달을 상징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장희자 기자

험악하고 어려운 세상 슬프기도 하여라
우두커니 서서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서둘러 대궐 있는 서울을 떠나리라고
고향산천 가리키며 기약을 하노라
어쩌다 저 뭇 소인들이 참소질하며
그만 임금의 마음이 미혹되고 말았네
이응과 도밀을 조문하고 저녁에 돌아오노니
나라에 인재가 없는데 그 누가 알아주랴
하인을 불러다 구종을 삼고서
옛 전원에로 송죽을 다시 찾아가련다.
옛 성현의 귀감과 계훈을 읽으면서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본성을 되찾으리라. (귀향부(歸鄕賦) 이철명)

홍문관 검교(檢校)였던 지헌(止軒) 이철명(李哲明)은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와 김식 등이 투옥되자 부당함을 상소했다. 상소가 먹히지 않자 대궐까지 찾아가 항의했으나 수문관에게 쫓겨나자 나라에 희망이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귀향부(歸鄕賦)를 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국내에는 귀래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안동, 영천, 순창, 경주 여러곳에 있는데, 대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긴 중국 동진시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이름으로, 귀향부(歸鄕賦)도 여기에서 근거했다.

연못이 'ㄴ'자형태로 되어 있고 정자주변은 독특한 모양의 고목향나무가 정자 앞 뒤를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장희자 기자

경주의 귀래정(歸來亭)은 남쪽으로는 멀리 양동마을 뒷편의 설창산(雪蒼山))이 보이고 서편으로는 포항 북구 기북면 성법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주 강동면 인동리에서 형산강으로 흘러드는 기계천(杞溪川)이 있는 경북 경주시 강동면 천서길 7번지에 있다. 기계천을 과거에는 설계천(雪溪川)이라 불렀다.

조선 영조 31년(1755) 여강이씨(驪江李氏) 천서문중(川西門中)에서 학당으로 세웠으며, 멀리 보이는 설창산(雪蒼山)과 설계천(雪溪川)의 이름에서 눈(雪)의 입자인 육각형을 본떠서 짓고 육화정(六花亭)이라 불렀다. 이후 후손들이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좌랑, 예조정랑을 거쳐 홍문관 검교를 지낸 바 있는 지헌 이철명을 추모하여 1930년에 귀래정(歸來亭)으로 고쳤다.

지헌 이철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모방해 귀향부를 지은 것에 근거하여 후손들이 귀래정으로 이름 지은것이다. 지헌 이철명은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지지(知之), 호는 지헌(止軒)이다. 1495년(연산군1) 생원진사시에, 1504년(연산군10)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관직은 승문원 정자(正字)‧교서관 저작(著作)‧홍문관 박사(博士)를 지냈고, 중종 때에 병조좌랑(佐郞)‧예조정랑(正郞)‧홍문관검교(檢校) 등을 역임했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나 정암 조광조와 충암 김정 등 여러 현인들에 대하여 여러 차례 무고를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간신과 귀 먼 임금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하는 '귀향부(歸鄕賦)'를 짓고 1520년(중종 15)에 낙향하였다. 이후 모친을 봉양하며 옛 선현들의 서적을 탐독하면서 성리학에 힘써 스스로 '수분명(守分銘)을 지어 자신의 경계로 삼았다. 1522년(중종 17) 모친상을 당하여 3년상을 지내던 중 지나친 슬픔이 건강을 해쳐 이듬해 생을 마감하였다. 문집으로 후손들이 편집 간행한 '지헌일고(止軒逸稿)'가 있다.​

귀래정 사랑채 역할을 하는 정자 뒷편으로 안채가 있고 일각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귀래정은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2개의 일각문으로 된 출입구가 있는데 두개의 담장모서리에 회나무고목이 자라고 있어 첫인상부터 독특한 풍치를 자아낸다. 일각문을 열면 ''자형태의 연당이 정자 앞과 한쪽 측면을 해자처럼 두르고 있고, 연못에는 생명력을 자랑하는 싱싱한 연들이 자라고 있다. 대문에서 정자까지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고, 정자 앞쪽과 뒤쪽에는 오랜 세월을 견디어낸 향나무고목이 연못쪽으로 누워있다. 또 정자 앞 양쪽에는 바위가 정자를 지키듯 서 있다. 선조들의 자연과 조화된 건축기법과 조경기법을 집대성한 진면목과 심미안(審美眼)의 정수를 눈앞에서 보는것 같아 탄성이  나온다.

정자는 육각형의 평면 형태로, 정면 방향은 마루, 배면 방향은 온돌방과 출입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육각형 정자 중 이러한 공간구획을 갖는 경우는 드물어 유래를 찾기가 어렵다. 육각형 평면을 교묘하게 처리하여 온돌방과 누마루를 매우 짜임새있게 배치하고 자투리 공간을 최대한 이용한 매우 놀라운 평면 활용의 기지가 돋보이는 정자이다.

평면은 육각인 반면 지붕은 모임지붕을 하지 않고 팔작지붕으로 구성하여 몸체와 가구 연결부가 독특하게 구성된 보기 드문 건물이다. 또 2개의 온돌방에는 여사재(如斯齋), 연귀당(詠歸堂) 편액이 걸려 있고,  정면이 외여닫이 세살창과 들어열개문 인데, 일반적인 들어열개문은 1:1로 분합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래정의 들어열개문은 2/3의 들어열개문과 1/3의 세살창으로 보기드문 독특한 창호 구성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귀래정모습으로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는 모습이다. 장희자 기자

귀래정은 육각형 평면에 마루, 온돌방, 벽장 등이 교묘하게 분할 구성된 점, 원형과 방형의 기둥이 조화롭게 사용된 점, 마루의 바닥높이에 차이를 두어 외부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을 추구한 수법과 더불어 육각 평면위에 팔작지붕을 꾸미는 독특한 목구조결구방식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전통건축의 구조기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처럼 귀래정은 조선시대 정자 건축과 별서정원의 뛰어난 수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 1991년 5월 14일 경북 민속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되고,  또 2019년 12월 30일 대한민국 보물 제2052호로 승격됐다. 한국 전통건축과 조원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는 우리 문화재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하루였다.

출입문쪽 담벽과 주차장쪽 담벽을 연결하는 모퉁이에 자라는 고목 회나무 한그루가 귀래정의 자연친화적인 조경기법과 미적아름다움 추구에 화룡점정을 찍고 있다.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