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톺아보기] 황인숙의 ‘말의 힘’
[문학 톺아보기] 황인숙의 ‘말의 힘’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1.01.06 10: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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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픽사베이

 

황인숙의 ‘말의 힘’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보자.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

신선하다. 짜릿하다. 후련하다.

기분 좋은 말을 소리내보자.

시원하다. 달콤하다. 아늑하다. 아이스크림.

얼음. 바람. 아아아. 사랑하는. 소중한. 달린다.

 

비!

머릿속에 가득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보자.

느낌표들을 밟아보자. 만져보자. 핥아보자.

깨물어보자. 맞아보자. 터뜨려보자!

 

시집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문학과지성사. 1998.6.17.

 

'2021'이라는 연年 꾸러미를 풀었다. 플레이버튼을 클릭할 때마다 기발한 형태의 연하장이 열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평범한 문구 속엔 작은 기도가 스며있다. 미디어의 순기능이다. 뭐든 발달할수록 그에 비례하는 역기능도 따르기 마련, 정보라는 구실로 포장한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위력이 발현되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했던 화살이 돌고 돌아서 결국 자신의 심장을 찌를 수 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하고 살면 세상은 한결 아름답지 않을까. 코로나로 가뜩이나 힘든데 한 마디 말이 위로가 되면 좋겠다. 기죽지 마, 당신 덕분이야, 잘했어, 고마워, 사랑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어진 물리적 거리가 좁혀질 것 같다.

말이란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이는 음성기호다. 황인숙의 ‘말의 힘’ 1연 첫 행에서 보듯이 청유형 종결어미 ‘-보자’로 시작한다. 2연으로 가면 ‘밝아보자/만져보자/핥아보자/깨물어보자/맞아보자/터뜨려보자’ 다양한 주문의 ‘-보자’식 청유문이 나타난다. 화자가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대해 또는 대화 상대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서 어조가 결정된다. 시에서의 어조는 시적 분위기나 정서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청유문이란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함께 행동하기를 요청하거나 권유하는 문장 유형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말의 중요성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이 지닌 가치를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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