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음악1-슈베르트, 김민기, 양희은과....
이 가을의 음악1-슈베르트, 김민기, 양희은과....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11.17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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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 잎들이 자고나면 성글어지고 아침 저녁이면 창문을 닫는다. 남아있는 달력 낱장이 가볍다. 혼자 건너는 터널같은 시간, 위로가 될만한 음악을 골라보았다. 그래도 가을이니까.

일 년 사계절 중 봄이 자라나는 새싹처럼 설렘과 희망의 기운이라면 여름은 생명력을 한껏 끌어올려 무성하게 펼쳐내는 팽창의 시기, 가을은 성장과 번영을 멈추고 씨앗으로 뿌리로 수렴해 가는 시기이다. 나뭇잎이 물들고 쌀쌀해지는 날씨에 코트깃을 여미다 보면 우리 마음도 문득 가라앉고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밀려든다. 이럴때는 따뜻한 차 한잔과 음악이 그리워진다. 어딘가에서 위로를 받거나 차라리 쓸쓸함의 정서에 깊이 빠져보는 것도 홀로이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다. 귀 기울여 한 두곡 듣다 보면 꾹 눌러두고 지나쳤던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리기도 한다.

오르페오 레이블의 첼로 모음곡 '저녁의 선율'의 자켓 이미지
오르페오 레이블의 첼로 모음곡 '저녁의 선율'의 자켓 이미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

이 곡은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자주 불렀던 들장미, 보리수, 송어, 세레나데 등 귀에 익은 예술가곡과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겨울 나그네’ 등으로 알려진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가 1824년에 작곡했다.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지만, 요즈음은 주로 첼로나 비올라로 연주한다. 3개의 악장으로 된 소나타 형식으로 슈베르트의 기악곡 중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공기 중에 끈적한 습기가 걷혀 하늘이 높아질 때 쯤 들어보면 초가을의 청량한 날씨와 피아노와 첼로 두 개의 악기가 주고 받으면서 빚어내는 아름답고 슬픈 선율이 가을 날씨와 잘 어울린다. 가을의 깊은 애수를 음미하며 랜선이나 유튜브를 통해 연주자의 호흡을 느끼며 들어보면 영혼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지는듯 하다.

◆고엽(Les Feuilles mortes)

오래 전 음악방송에서, 가을에 접어들 때면 계절이 바뀌었다는 신호처럼 제일 먼저 흘러 나오던 곡이 고엽이 아니었나 싶다. 자끄 프레베르(Jacques Prevert)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이 곡은 프랑스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이브 몽땅(Yves Montand,1921~1991)이 부른 샹송이 원곡으로 1946년 ‘밤의문’이라는 영화 주제곡이다. 영화는 잊혀지고 그가 떠난지도 오래지만 주제곡 ‘고엽’은 남아 가을이면 우리를 우수에 젖어들게 한다. 그의 감미롭고 따스한 음색은, 가을에 느끼는 허전함과 쓸쓸함을 가슴에 스며들게 만들어 오히려 위안이 되게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가수들이 각자의 매력으로 부른 영어 버전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를 들어 보는 것도 각별한 맛이 있다.

◆가을편지

1971년 고은(1933~ )이 작사하고 김민기(1951~ )가 작곡해 최양숙이 부른 노래다. 김민기라는 이름은 몰라도 ‘아침이슬’ 작곡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을편지’는 서울음대를 나온 최양숙의 음반 취입을 위해, 평론가인 그녀의 오빠가 친구 고은에게 가사를 부탁하자 술자리에서 바로 써 주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서울미대 입학후 음악활동을 하던 김민기가 곡을 부쳤다. 운율이 살아있는 노랫말과 맑고 청아한 음색, 서정적 선율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노래가 되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70년대 통기타 음악에서 김민기의 비중은 대중적 명망이나 인기와 무관하게 절대적이다. 김민기의 음악이 있음으로 70년대 통기타 음악은 비로소 청년 문화에 값할수 있었다. 그의 음악이 없었다면 70년대 청년 문화를 정치적 맥락과 관계없는 한 때의 유행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3년 김민기 전집에는 자신의 노래로 수록되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이 곡은 1991년, 양희은(1952~ )의 데뷔 20주년 기념 음반에 실린 곡으로 양희은이 가사를 쓰고 이병우가 곡을 썼다. 그녀는 70년대 청년 문화의 상징이자, 데뷔 50주년을 맞는 한국 포크 음악의 대모이다. 서강대 1학년이던 1971년 가수 데뷔후 그녀의 노래 ‘아침이슬’은 금지곡이 되었고 70~80년대를 지나오며 지금까지도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곡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암으로 투병후 그녀가 직접 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사랑이 끝난후 사랑을 들여다 보는 절창이다. 작곡가 이병우(1965~ )는 기타리스트이자 음악감독으로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한 대의 기타와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리듯 단단한 양희은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어두운 정서는,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는 이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묻게한다.

◆나는 당신을 원하는 바보(I’m a fool to want you)

재즈 가수의 대명사로 알려진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 1915~1959)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기, 미국 필라델피아 슬럼가에서 흑인인 10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겪은 성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적 누명으로 인한 수감생활, 무대 위의 환호와 무대 뒤의 인종차별, 3번의 결혼과 이혼, 고통스런 삶의 탈출구가 되었던 약물중독. 그녀는 45년 동안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아픔을 쉼없이 경험하면서도 자신의 아픔을 노래로 승화 시켜 가장 위대한 재즈 가수가 되었다.

상처 입은 그녀의 마지막 음반 타이틀곡이 ‘I’m a fool to want you’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의 초상’에서 이렇게 썼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삶을 통해 저질러온 많은 실수와 상처입힌 많은 사람의 마음을 그녀가 고스란히 받아드리며, 이제 됐으니 잊어 버려요라고 한꺼번에 용서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라고. 상처입은 그녀의 노래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이제 됐다고. 잊어 버리라고.

◆저녁의 선율(Harmonies du soir)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첼로 연주자 베르너 토마스-미푸네(Werner Tomas-Mifune, 1941~ )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자들의 작품들을 찿아내어, 첼로 레퍼토리를 확장 시키기는데 힘을 쏟던 시절에 나온 첼로 모음집이다. 1986년 독일의 음반 레이블인 오르페오(Orfeo)에서 발매한 음반에는 숨겨진 보석같은 첼로 소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음반의 타이틀곡인 ‘저녁의 선율’은 쟈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의 작품으로 미발표곡이었다. 음반을 구할수 있다면 듣는 순간 누구라도 첼로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하는 음반이다.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첼로의 묵직한 저음이, 우리를 슬픔과 그리움을 지나 사색의 세계로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