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창] 권위와 권위주의
[인문의 창] 권위와 권위주의
  • 장기성 기자
  • 승인 2020.10.14 10: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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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굴복시키려 한다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945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 프랑스의 지식인들과 정치계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위키백과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이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인 1945년부터 1970년대 말까지 프랑스의 지식인들과 정치계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위키백과

변호사들은 법정에 들어설 때 재판부석을 향해 고개 숙여 예의를 표한다. 재판장의 나이가 자신보다 젊다거나 쳐다보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재판을 받으러 온 당사자들이나 방청객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한다. 이런 예를 갖추는 것은 판사 개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부의 ‘권위’에 대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나아가서는 사법부와 대한민국의 국법질서에 복종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행위는 국가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하나의 질서로서 만들어지고, 정당성을 갖춘 권위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자, 공동체의 자기결정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럼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권위’란 무엇인가?

어느 개인이나 조직이 가지는 이념이 그 사회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이 영향력을 흔히 ‘권위’(權威)라 부른다. 개방된 사회, 성숙한 사회일수록 다양한 권위가 공존하며 서로 존중받기 십상이다.

우리는 때때로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다. 이런 혼동은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지만, 나아가서는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시키는 작용도 한다. 그러니 권위와 권위주의는 반드시 구분되어져야 한다. '권위'는 사전적 의미로 사회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말한다. '권위주의'는 어떤 일에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복종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과거 절대적인 지도자의 권위를 중심으로 조직된 독재국가, 즉 권위주의국가의 형태로 살아온 경험을 갖고 있다. 국가 그 자체가 국민보다 우선한다는 사고가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런 권위주의국가의 통치자들은 권위와 권위주의를 무의식적으로 혼동하거나 모른 체했다. ‘독재’란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홀(獨)로 재단(裁)한다는 뜻으로서 ‘홀로 가위질하듯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럼 권위는 좋은 말이고, 권위주의는 늘 나쁜 말일까. 예를 들면, "채소가 몸에 좋은 먹거리이다"라는 말과 "그러므로 우리는 채소만 먹어야 한다"라는 채식주의의 주장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느 게 권위이고, 어느 게 권위주의란 말인가? 후자가 권위주의라고 우선 가정해 두고 아래를 보자.

에리히 프롬(Ericj Fromm)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이다. 위키백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이다. 위키백과

‘권위’를 뜻하는 라틴어 ‘auctoritas’(authority)의 어근(語根)은 ‘auctor’(author)이다. 라틴어의 ‘auctor’는 ①문학에서 ‘저술가’라는 뜻이다. 이 뜻 이외에도 ②몸소 수행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원작자’(原作者)나 ‘원저자’(原著者) ③뛰 따를 만한 ’스승‘ ④’증인‘, ⑤보증인, ⑥어떤 결정에 조언을 주는 ’고문‘(顧問), ⑦’대리인‘ 등과 같이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다양한 의미들을 한 데 모운 중심축은 ②의 ’원작자‘라는 의미이고, 다른 용법들은 이로부터 파생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auctor'가 지니는 7가지 의미를 포괄해보면, 어떤 말이나 행동의 창작자이므로 다른 누구보다도 신뢰할만한 진정성과 본원성(本原性)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그 말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전형(典型)이 되고 보증의 힘을 가지며 타당성을 제공할 뿐 아니라, 권고하고 대리할 수 있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권위‘라는 라틴어 어원에서 파생된 의미 폭은 넓고 깊다. ‘auctor(英語 author)’의 다의성(多義性)에 따라 ②의 의미를 토대로 하여, 문학에서는 주로 ①에, 학문에서는 ③④에, 법률에서는 ④⑤⑥에, 정치에선 ⑥⑦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그럼 권위(authority)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어떻게 구별될까? 사실 권위와 권위주의는 둘 모두 ‘관계의 개념’들이다. 권위이건 권력(권위주의)이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그 관계의 효력을 일방적으로 강제하여 관철하는 반면, ‘권위’는 수용자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인정을 지향하고 이를 통해서만 관계를 획득할 수 있다.

‘권위’로 행한 행동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수용자에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오로지 지속적인 설득과 호소뿐이다. 진정한 권위는 권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권력은 권위에 가장 치명적인 적(敵)이다. 그 이유는 권위 위에 도덕적 잣대를 강제력으로 대체함으로써 권위를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원작자’(author)가 없는 곳에 ‘권위’(authority)가 존재할 수 없다. 서로가 타인의 탁월함을 권위로 기꺼이 존중하는 사회야말로 건강한 문화를 가진 사회다.

권위주의는 권위만을 내세우며 "나를 따르라!"고 외치지만 자신은 실천하지 않고, 나를 제외한 구성원들에게 지시할 때에 형성된다. 프롬(E. Fromm)이 말하기를 권위주의는 인간을 상하관계의 계층을 설정해 놓고 우열을 가리며, 강자에게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고, 약자에게는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성향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권위주의는 다른 사람의 견해에 관용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며, 늘 지배하려하며, 후배나 연하자가 늘 자신에게 복종적 태도를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말한다. 시쳇말로 권위주의는 '꼰대'와 다름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권위’는 가지되 "나와 함께 하자!"라는 생각으로 같이 동참하고, 앞장선다면 그 조직의 문화는 사뭇 다를 것이다.

타인의 장점이나 재능을 알아보고 인정하는 사람은 성숙한 민주시민이며 인격자다. 그러나 미성숙한 인격은 타인의 장점을 오히려 깎아내리고 무시한다. 이는 자신의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허세일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개인이나 조직에서 부정적 인간관계와 파당적 조직문화를 조성하는 불쏘시개이다.

사르트르와 보봐르 부인과의 계약결혼은 당대 사회를 놀라게 했다. 위키백과
사르트르와 보봐르 부인과의 계약결혼은 당대 사회를 놀라게 했다. 위키백과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다. 이유는 노벨위원회가 문학작품에 등급을 매기는 것도 잘못이지만, 이러한 방식은 부르주아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럴싸한 ‘권위주의’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 자체가 작위적(作爲的) ‘권위주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작가 사르트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작품과 ‘노벨 문학상 수상자 사르트르’라고 하는 작품은 권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노벨상이란 큰 권위를 얻게 되면 자신에게 이 명예를 준 기관이나 협회와 관련이 맺어지게 된다. 진정한 작가의 권위는 권위주의의 상징인 노벨위원회라는 기관을 동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간에는 자신의 이력서에 모모문인협회 회장, 모모문화예술인협회 회장, 모모협회 이사 등과 같은 장식품을 가슴팍에 주렁주렁 달아놓았다. 사르트르의 시선에서 보자니, 왠지 좀스럽고 다랍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권위’는 사람을 감화시키지만, ‘권위주의’는 사람을 굴복시키려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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