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의 섬, 세부(CEBU)에 빠지다④
천연의 섬, 세부(CEBU)에 빠지다④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10.15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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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가 된 리조트에서의 하루
참치의 맛을 파는 STK(Sugba Tuna Kilaw)
팡라오(Panglao) 바다 전경Ⓒunsplash.com(by Bobbi Wu@bobbiwu)
팡라오(Panglao) 바다 전경 Ⓒunsplash.com(by Bobbi Wu@bobbiwu)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알로나 비치(Alona Beach)의 이국적인 풍경과  ‘Lost Horizon’이라는 바닷가 카페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빠져 늦은 밤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였으니 속은 뒤집어지고 몰골이 말이 아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몇 번을 다짐하며 찾은 곳이 숙소 건너편 간이식당이다. 이른 아침 다 죽어가는 행색으로 들어서는 여행객이 의아했는지 여자 종업원은 한참을 쳐다본다. 자리에 앉으며 '그래도 해장은 해야지.'라는 말과 함께 탁자 위에 술병이 놓이고 습관적으로 술을 따르고 있는 어이없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어젯밤 일을 바둑 복기하듯 되돌리며 꾸역꾸역 속을 채우고 나니 속이 한결 편해진다. 천생 한국인이다. 해장술로 생기를  되찾고 있으니 말이다. 종업원은 그제야 안심했는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알로나 비치(Alona Beach)에 있는 카페 '잃어버린 수평선(Lost Horizon)'.임승백 기자
알로나 비치(Alona Beach)에 있는 카페 '잃어버린 수평선(Lost Horizon)'. 임승백 기자

트라이시클(Tricycle)에 실은 몸이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에 사정없이 흔들리며 뭉게구름에 마음을 태워 파란 하늘로 띄워 보낸다.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세상 구경을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걸어 다닐 수 있어 다행스럽고 먹을 걱정 하지 않아 감사하고 기다려 준 세상이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은 한적한 곳에서 멍이나 때려볼까 싶어 알로나 비치 북쪽 절벽 위에 있는  ‘클리프사이드 리조트(Cliffside Resort)’를 찾아가고 있다. 이곳은 스킨스쿠버(Skin Scuba)를 즐기는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지만, '멍 때림'의 최적지이다. 중심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어 단체 여행객이 찾을 만한 그런 곳은 아니지만, 한 번쯤 다녀간 사람이면 잊지 못하는 곳이다.

리조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천상의 조망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리조트와 바다가 한 몸이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리조트인지 알 수가 없다. 고급 호텔의 꾸며진 화려함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멋이다. 나무 아래 파란 눈의 노신사가 웃통을 벗은 채 바다를 향해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 있다. 안정된 자세하며 검게 탄 몸이 이곳에 꽤 오래 머문 모양이다.

바다와 하나가 된 클리프사이드(Cliffside) 리조트. 임승백 기자
바다와 하나가 된 클리프사이드(Cliffside) 리조트. 임승백 기자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바다 수영장에 몸을 담그며 세상을 잊는다. 수영장 밑 절벽을 때리는 파도 소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다. ‘천국의 문이여 열려라.'

이곳에선 특별히 할 게 없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수영도 하고 책도 보고 나무 아래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겨 보기도 하고 그냥 일탈을 만끽할 뿐이다. 지겨워지면 바(Bar)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담소를 나누는 여유로움을 가져 보는 게 전부이다. 가끔 거구의 리조트 사장이 다이빙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오면 “이곳이 천국인데 어딜 가자는 거냐?”며 고개를 흔들면 사장은 돈이 되지 않는 손님인가 싶어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 게 오히려 고맙다.

화장실에 갔던 벵칠이가 황급히 자리에 앉으며 투덜거린다.

“아! 쪽 팔려”

“무슨 일이 있었어?”

대답은 하지 않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길래 돌아보자 중년의 러시아 여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여자 화장실에서 당신이 왜 일을 보느냐?'라는 것이란다. 깜짝 놀라 화장실 문을 쳐다보니 'Female'이라 쓰인 종이 팻말이 높다랗게 붙여져 있더란 것이다. 어쩔 줄 몰라 아랫도리를 급히 잠그고 밖으로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잠시 후 문제의 러시아 여인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옆으로 지나간다. 그리고는 바(Bar)에 앉아 일행들에게 화장실 얘기를 하는지 깔깔대며 박장대소를 한다. 덩달아 우리도 웃으며 놀려대자 친구는 고개를 들지 못하며 연신 술을 들이켠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고 바다가 심상찮게 일렁이더니 장대비가 몰아친다. 야자수는 불어오는 비바람에 몸을 가누질 못하고 밤이 깊어 갈수록 비바람과 파도 소리가 굉음으로 바뀐다.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비바람은 잦아들고 밤새워 뒤척이다 밖으로 나선다. 날씨만 아니었다면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찬란한 해를 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절정 뒤 찾아온 고요함의 장관으로 인해 사라진다. 눈이 감긴다. 온갖 소리가 작아지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참 만에 들려오는 인기척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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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임승백 기자

“며칠 더 있으면 안 되냐? 멋진 곳이다.”

“좋지! 그냥 눌러앉을까? 집에 가지 말고?”

“선생님들! 정신 차리세요! 처자식이 기다린다.”

친구들도 마음에 들었는지 더 머물렀으면 하는 눈치다. 세 명이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다.

배낭을 챙겨 세부(Cebu)로 돌아가는 길에 보홀 박물관(National Museam Bohol)에 들러 현지인들의 삶과 마주한다. 섬 박물관에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 있겠냐마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을 조금이나마 알아보려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 싶어 찾은 것이다. 방문하는 관광객이 드문지 박물관 직원은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준다. 화려한 유물은 아니지만, 조각상이며 사진 그리고 유물들이 그들의 삶만큼이나 소박하다.

보홀 박물관 전경. 임승백 기자
보홀 박물관 전경. 임승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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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 유물들. 임승백 기자

박물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타그빌라란(Tagbilaran) 항구 인근에 있는 맛집 STK(Sugba Tuna Kilaw)로 향한다. 여행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다. 참치 턱살 구이가 별미인 이곳은 여행 성수기 때는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큰 덩치의 주방장이 구워내는 참치 요리는 일품이다. 보기에는 먹을 게 별로 없을 듯한 데 보기보다 살집이 많을 뿐 아니라 담백하기까지 하다. 무슨 양념으로 요리를 하였는지 달콤함과 부드러움이 입 안에서 한참을 노닌다. 그 맛에 놀라 몇 번이고 주방을 쳐다보지만, 거구의 주방장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고기만 구워댄다.

참치 맛이 채 가시기 전에 항구 터미널이 가까워지고 여행객과 호객꾼들로 시끄럽다. 또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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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인근에 있는 참치 요리 맛집 STK(Sugba Tuna Kilaw). 임승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