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한다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한다
  • 강효금 기자
  • 승인 2019.03.12 21:28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자, 비움의 철학· 패러독스의 철학

 

노자(출처: 위키백과)
             노자(출처: 위키백과)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일상적인 단어들을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단어를 찾아서’ 중에서

 

가끔 글을 쓸 때마다 내가 표현하고자하는 그 느낌을 살려줄 언어를 찾느라 수많은 시간을 흘려버릴 때가 있다. 이 단어를 넣으면 무언가 부족하고 이 단어를 넣으면 너무 흘러넘치는, 그럴 때면 생각나는 말이 있다.

도(道)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다.”

선문답(禪問答)처럼 느껴지는 노자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도(道)’라고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그 본질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언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가두고 그 밖으로 나오는 것들은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노자는 언어’라는 이름 아래 가두어지는 그 폭력성에 대해 되짚어 보라고 하는지 모른다. ‘이름’으로 규정짓고 틀을 만드는 대신, 과감하게 그 틀을 부수고 의미를 해체시켜보라고. 우리가 이름 붙이고 규정하기 전으로,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완전히 의미가 해체된 ‘무’의 상태에서 만나는 것,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 그러기에 무의미(無意味)’는 의미 없음이 아닌 의미의 해체를 통한 무’의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한다.”

노자는 우리가 대립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 無(있음과 없음), 下(높고 낮음), 醜(아름다움과 추함), 易(어렵고 쉬움)이런 개념을 대척점에 놓고 보지 않았다. 에서 생기듯 되돌아감은 도의 움직임”이라고 하며 미와 추, 선과 불선(선함과 선하지 않음), 유와 무가 서로 다른 실체를 지닌 것이 아니라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간다.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자신 안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 생명을 깨우고 생명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깨달으라 한다. 이를 깨닫게 될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음을, 가장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하고 말하고 있다.

 

어느 수도원에서 십자가를 본 적이 있다. 앞에는 고통스러운 모습의 예수가, 뒷면에는 기쁨에 가득 찬 예수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고난과 환희가 하나임을, 그 십자가는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노자 역시 유와 무는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그 아래에서 새로운 생명이 피워 오름을 이야기한다. 그런 면에서 노자와 예수의 이야기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려 하면 살 것이고, 살려하면 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