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㉞스스럼없이 하던 엽기적인 놀이
[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㉞스스럼없이 하던 엽기적인 놀이
  • 정재용 (엘레오스) 기자
  • 승인 2020.10.08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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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성적으로 잔인한 존재인가?

농촌의 아이들은 심심했다. 학교에 가면 여자아이들은 본관 건물 화단 근처에서 사방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넘기, 오자미놀이 등으로 재미있게 보냈으나 남자아이들은 별로 할 게 없었다. 축구공 하나만 있어도 즐겁게 보내련만 모든 게 귀하던 시절이라 체육수업시간 외에는 공을 내주지 않았다. 공연히 여자아이들 노는 데 훼방 놓는 게 놀이였다. 연필깎이 칼로 여자아이들이 놀고 있는 고무줄을 잘라서 달아나고, 땅따먹기로 그어놓은 선을 발로 문지르고, 오자미를 주워서 멀리 내던졌다.

집에 오면 농삿일을 돕느라 전혀 놀 틈이 없었다. 소꼴 하러 가서 낫치기하고 소 먹이러 가서 모래밭에 노는 것 정도였다. 여름날 대낮에는 모두가 쉬었다. 이때 아이들은 수문으로 목욕하러 갔다. 목욕하다가 심심하면 물고기를 잡았다. 잡은 물고기는 수양버들 작은 가지를 꺾어서 아가미를 꿰었다.

여름방학이면 곤충채집, 식물채집 과제는 단골이었다. 방아깨비, 베짱이, 여치, 매미, 잠자리, 나비 등 곤충을 잡아 말려서 수수깡 속대 위에 얹고 ‘하루핀’으로 꽂아두었다가 와이셔츠 통에 담아서 냈다. 이는 일본어의 바늘을 뜻하는 ‘하리’(針, 침, はり)와 영어 ‘핀’(pin)의 합성어다. 바늘 모양의 ‘침핀’을 그렇게 불렀다. 매미는 소꼬리 털로 올가미를 만들어서 잡았다. 올가미를 긴 막대 끝에 매달아 살금살금 나무 밑으로 가서 매미 앞다리에 갖다 대고 성가시게 굴면 매미가 걸려들었다. 몇 번 밀어내다가는 다리 하나를 집어넣었다.

짝짓기 중인 실잠자리. pixabay
짝짓기 중인 실잠자리. 픽사베이

잠자리도 왕잠자리, 범잠자리, 제비잠자리, 밀잠자리, 물잠자리, 실잠자리, 고추잠자리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밀잠자리는 마당비로 잡고, 물잠자리는 꼬리 쪽에서 손을 내밀어 손가락 사이에 날개를 넣어 잡았다. 물잠자리는 맑은 물이 흐르는 큰거랑에 많았고 왕잠자리는 주로 무논 위를 날았다. 왕잠자리 암컷을 잡으면 수컷 여러 마리 잡기는 누워서 떡먹기였다. 무명실에 잠자리의 발 하나를 묶고 그 실을 막대에 묶어서 “따아리, 따아리”구호와 함께 머리 위로 빙빙 돌리면 어디서 날아왔는지 금방 수컷 왕잠자리가 낚였다. 수컷은 암컷의 뒤에서 꼬리 끝을 암컷의 몸통 밑에 갖다 대고 암컷은 수컷의 뒤통수에 꼬리 끝을 고정시켰다. 포항해병대가 공수 훈련할 때 프로펠러가 앞뒤로 있는 헬리콥터 모양이었다. 수컷은 잡혔으면 잡혔지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었다.

밀잠자리는 집안 곳곳에서 마당비에 잡혔다. 보릿짚 볏가리에 앉아 있다가 잡히고 채전 울타리에 앉았다가 잡혔다. 아이들은 꼬리를 반쯤 잘라내고 그곳에 잘려나간 길이만큼의 보릿짚을 대신 꽂아서 날렸다.

잠자리의 다리를 자르기도 했다. 잠자리 다리는 세 쌍인데, 여섯 개 다리 모두 중간 이하 부분은 메뚜기 뒷다리처럼 까끌까끌했다. 아이들은 이 까끌까끌한 부분을 모두 잘라내고 “도끼, 도끼”노래를 불렀다. 잠자리는 노래에 맞춰 움직이듯 다리의 남은 부분을 꼬물거렸다. 방아깨비를 잡아서 긴 뒷다리를 한 손에 몰아 쥐고 있으면 디딜방아를 찧는 것처럼 끄떡끄떡 방아를 찧었다. 메뚜기와 방아깨비는 소죽 끓일 때 여물 위에 얹어서 쪄 낸 후 날개와 껄끄러운 부분이 있는 뒷다리를 끊어내고 간장과 고추장에 볶아서 도시락 반찬으로 했다.

개구리도 아이들 장난을 비켜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보리 짚대를 참개구리나 청개구리의 항문에 꽂아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구리가 황소 앞에서 배를 불렸을 때처럼 빵빵하게 될 때까지 바람을 불어넣었다. 소풀을 하다가 뱀이 나타나면 여자 아이들은 기겁을 도망을 치고 남자 아이들은 용감하게 돌로 머리를 쳐서 죽였다. “설죽이면 밤에 짝을 데리고 집으로 찾아온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이 왔다는 것은 고추잠자리가 무리를 지어 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파란 하늘에 빨간 고추잠자리는 선명했다. 저녁 무렵이면 하루살이를 사냥하느라 마당 위에까지 몰려와 빙빙 돌고 아이들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마당비를 들고 쫓아다녔다. 그냥 재미로 잡았다. 잠자리 사냥은 어둠살이 낄 때까지 계속됐다.

논에는 벼메뚜기가 뛰어다녔다. 재수 좋으면 ‘어불랑 붙은’놈을 잡기도 했다. 암컷 등에 수컷이 올라타고 짝짓기 하는 중이었다. 미리 됫병(흔히‘댓병’으로 불렀다)이나 삼베주머니를 가져갔으면 거기에 담을 수 있었으나 빈손으로 논둑을 지나다가 메뚜기가 보이면 강아지풀 줄기에 목을 꿰어서 줄로 엮었다. 메뚜기의 목과 몸통 연결부위는 단단한 피부가 둘러져 있었는데 줄기로 그 부분을 아래에서 위로 꿰었다. 메뚜기가 줄기에 연이어 매달려 대롱거렸다. 방아깨비도 함께 꿰었다.

1985년 추석, 황분조(당시 53세) 씨 가족이 읍내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의 왼편으로 난 농로를 따라 1km 정도 걸어가면 소평마을이다. 안강-기계 도로변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고, 안강읍 소재지 건너 멀리 형제봉산이 보인다. 정재용 기자
1985년 추석, 황분조(당시 53세) 씨 가족이 읍내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의 왼편으로 난 농로를 따라 1km 정도 걸어가면 소평마을이다. 안강-기계 도로변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고, 안강읍 소재지 건너 멀리 형제봉산이 보인다. 정재용 기자

학교 가는 길의 양쪽에는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흰색 코스모스와 분홍색 코스모스가 어울려 가을바람에 한들거렸다. 코스모스 한 송이의 꽃잎은 8개다. 아이들은 흰 코스모스의 하나 건너 하나씩 꽃잎을 떼어내고 하늘로 던져 올리면 헬리콥터처럼 빙그르르 돌아서 날아갔다. 떼어낸 자리에 분홍색 코스모스 꽃잎을 끼워 넣어 알록달록하게 만들기도 했다.

겨울이면 양지바른 축담(지대, 址臺)의 틈으로 줄지어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개미를 돋보기로 태워 죽였다. 처음에는 개미를 따스하게 해 준다더니 나중에 보니 초점을 맞추어 괴롭히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고기 아가미를 꿰고, 메뚜기 덜미를 꿰고, 개구리와 곤충으로 장난을 천연덕스럽게 했다. 심심하니 꽃과 곤충을 가지고 놀고, 방학과제로 채집을 하고, 물고기나 메뚜기를 잡아가면 부모님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잔인도 길들여지는가? 농촌의 천진난만한 아이들도 어쩔 수 없는 ‘가인이 후예’였다.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는 아들 둘이 있었다. 가인과 아벨이었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로 시기심이 발동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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