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톺아보기] 안도현의 ‘연탄 한 장’
[문학 톺아보기] 안도현의 ‘연탄 한 장’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1.02.03 09:2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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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1994.

 

남편의 첫 발령지가 경북 봉화였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수도 녹이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보다 안 내리는 날을 꼽는 게 더 쉬울 만큼 눈이 풍년인 동네였다. 연탄불은 또 왜 그렇게나 잘 꺼지던지. 이제야 고백하지만 그게 다 내 잘못이었다. 새 연탄을 갈아야 하는데 기관지가 약한 탓에 가스냄새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퇴근해 올 때까지 기다리다 불을 꺼트렸던 것이다. 전근을 앞둔 우리에게 직원 부인이 “연탄집게는 던져버리고 가세요.”라는 말을 덕담으로 할 정도였다. 고생도 지나면 추억인가. 며칠 전에 남편이 뜬금없이 뱉은 말이 의미심장했다. “봉화에서는 김밥도 잘 만들고 냉면도 잘하더니…” 생략된 뒷말을 한참 곱씹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먼저 떠올라 반성케 한다. 보잘 것 없는 대상 속에서 참된 가치를 찾아내는 시안이 부럽다할까. '연탄 한 장’도 그렇고 연탄이란 소재로 시를 써서 이렇게 유명해진 시인은 보지 못했다. 요즘에야 전기, 가스 등의 연료가 대세지만 한때는 연탄이 서민의 독보적인 겨울 재산이었다. 시의 속살로 들어가 본다. 어려운 구절은 없다. ‘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말이 쉽지 실천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방구들’이란 시어가 토속적으로 읽힌다. 입춘인 오늘 나도 누군가에게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존재가 되어 늦추위를 녹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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