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을 찾아서
'깨진 유리창'을 찾아서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0.09.22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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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험적 ‘사회적 거리두기’ 강의

가을 학기는 봄학기에 비해 아무래도 짧게 느껴진다. 1학년 유기화학 강의가 매주 월, 목요일 오후 마지막 교시에 5층 공동강의실로 편성되었다. 유기화학은 탄소를 포함하는 유기 화합물의 분류, 명명, 제법, 반응, 성질과 기능 및 응용에 관한 학문 분야로서 식품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전공기초 과목이다.

과거에는 주로 판서를 하면서 강의를 하다 보니 다양한 화학 반응과 메커니즘들을 가르치는데 힘들고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하고 소프트웨어들이 개발되어 여러 단계의 화학 반응도 파워포인트 등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강의실이 5층에 있어서 학생들의 동선(動線)이 길고 마지막 수업이라서 긴장이 풀리는 탓인지, 수업 분위기가 예년에 비해 유달리 산만했다. 평소 자율적인 분위기에 의존하여 강의를 해오던 터이라서 개의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으나, 두어 주가 지나고 수강 신청 변경 기간이 끝나도 강의실 분위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천인소지 무병이사(千人所脂 無病而死)’, ‘천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 병이 없어도 죽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를 인용하면서 수업 중에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당부하고, 수업 환경의 개선을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앞서 강의실 책걸상들을 전후좌우로 같은 간격이 되도록 새로 배치하였다.

바뀐 강의실 환경에 학생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차분하게 수업에 임하였고, 우리는 12월의 종강 때까지 쾌적한 수업과 면학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해가 바뀌어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성 폐렴이 세계적 대유행의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확산되고, 인류의 모든 활동이 제약을 받게 되었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에 이어서, 사람들 간의 적절한 거리와 간격을 유지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방역 원칙이 되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은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 1931~2012)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 1935~2019)이 제창한 이론으로, ‘깨진 유리창’과 같은 아주 작은 무질서라도 방치를 하게 되면, 그것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과 범죄가 생기고 퍼져 나간다는 이론이다.

1970~80년대에 뉴욕의 지하철은 크고 작은 범죄들이 자주 발생하는 범죄의 온상이었으며, 뉴욕시는 여행객들이 혐오하고 기피하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줄리아니 (Rudy Giuliani, 1944~) 시장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도입하여 지하철의 낙서를 지우고, 유리창을 갈고 사소한 법률 위반과 범죄들을 단속해 나가기 시작하자, 사건 사고와 범죄들이 줄어들면서 뉴욕은 다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도시가 되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사소한 고객 불만이나 제품 하자들을 개선하여 기업의 경영 개선과 가치 향상을 도모하는 비지니스 전략에도 자주 이용된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미증유(未曾有)의 시대를 겪으면서, 임시변통의 미봉책(彌縫策)이 아닌 진정한 뉴노멀(New Normal)을 만들고 확립해 나가는데 우리 주변의 ‘깨진 유리창’을 찾고 반영하는 것이 선행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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