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좋아! 동박새부부의 물사랑!
물이 좋아! 동박새부부의 물사랑!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9.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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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사계절 구분 없이 수목원에서 만날 수 있다.
그 모습이 원앙부부나 기러기부부 못지않다.
“사람보다 났다”는 말이 입에 붙는다.
스프링쿨러를 빌어 사워를 끝낸 동박새부부가 나란히 포즈를 퓌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스프링클러를 빌어 샤워를 끝낸 동박새 부부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원선 기자

덥고 지루하던 여름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연달아 들이닥친 태풍(8호 태풍 바비, 9호 태풍 마이삭, 10호 태풍 하이선)들이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삶을 더욱 곤궁하게 만들어가는 가을의 초입이다. 하지만 계절의 순환을 뉘라서 막을까? 곡식들이 들판에서 황금빛으로 여물고 과일들은 나뭇가지 끝에서 형형색색, 알알이 영근다.

늘 우중충하게 하늘을 뒤덮던 구름을 빗자루로 쓸어낸 듯 맑고 깨끗한 날 대구수목원에서 동박새 부부를 만났다. 숲속을 까불까불 촐랑거리며 다니는 이 새는 몸길이가 약 12Cm 정도로 참새와 비슷한 크기다. 암수 비슷한 색깔을 가졌으며 몸의 윗면은 황록색이고 날개와 꽁지는 녹색을 띤 갈색이다. 아랫면은 흰색이며 특히나 눈 둘레 흰색의 가는 털이 모여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어 눈깔사탕을 보는 듯 눈이 돋보인다. 참새목 동박새과로 아시아 동부와 일본 및 한국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중부 이남, 특히 제주도와 울릉도 등 섬 지방에 흔한 텃새이다. 그 밖에 서해 섬에도 드물게 모습을 나타낸다.

동박새가 언제부터 수목원의 텃새로 자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대충 잡아도 5, 6년은 훨씬 이전 같다. 동백꽃을 유난히 좋아하다 보니 내륙지방에서는 특별한 새이기도 하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철새로 분류되었지만 정착화한 텃새처럼 현재는 사계절 구분 없이 수목원에서 만날 수 있다.

초가을을 맞아 대부분의 스프링클러는 작동을 멈추었다. 붉게 익은 일본 목련의 탐스러운 열매가 청딱다구리와 오색딱다구리, 쇠딱다구리, 직박구리 등등 새들을 불러 모으는 아래쪽 숲 사이로 여전히 물을 뿜는 스프링클러 삼형제가 나란히 섰다. 그냥 지나치면 존재의 가치가 지워질 정도로 쫄쫄거리는 물줄기다.

하지만 동박새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이 귀한 물인 모양이다. 부부는 나란히 스프링클러에 올라앉는 등 물장구를 치는 기분으로 들까분다. 그 모습이 원앙부부나 기러기부부 못지않다. 평소에도 어울리는 모양이 예사롭지가 않은 새들이다. 둘이서 짝을 이루면 아주 각별하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절대로 곁을 내주질 않는다. 물론 한 눈을 파는 경우도 없어 보인다. 한 녀석이 날아들면 부창부수, 다른 놈도 쪼르르 뒤따라 날아든다. 지금까지 겪어본 결과 둘의 사랑은 각별하여 먹이 다툼도 보질 못했다. 추운 겨울철에는 체온을 나누려는 듯 찰싹 붙어 앉고 물을 찾은 지금도 멋진 포즈를 취하는 등 남다른 애정행각을 과시하고 있다.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입에 붙는다.

스프링쿨러에 올라 앉은 동박새부부의 다정한 모습. 이원선 기자
스프링클러에 올라 앉은 동박새 부부의 다정한 모습. 이원선 기자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동박새 부부의 사랑놀음을 지켜보노라니 은근한 질투심까지 인다. 보고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함께 누워서 당신에게 물었죠. 여보,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은가 하여 물었죠. 당신은 그러한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하는 원이엄마의 편지글처럼 늘 어여삐 여기며 사는 새 같다.

먹이는 양보하여 나누어 쫓고, 기쁨은 부리를 맞대어 더하고, 물은 몸통을 비벼가며 같이 맞아 벌레를 떼는 등 자유분방하게 삶을 즐기던 부부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듯 몸을 숨겼다가 재차 날아들었다.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이력이 붙어 피하는 기색이 없어 보인다. 그저 물이 좋고 가을 나들이가 좋은 모양이다. 자세를 잡아 파닥이는 힘찬 날갯짓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긴다.

사람도 좋고 부부도 좋은 윈윈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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