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초등학교 54회 동기회
군위초등학교 54회 동기회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0.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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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역사가 있는 명문 군위 초등학교

군위(軍威)라는 이름은 김유신(金庾信)의 신라 군과 소정방(蘇定方)의 당나라 군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이 백제를 치기 위해 각 부대의 기치를 드높이고 위엄있게 도열한 모습을 보고 군사 군(軍) 자와 위엄 위(威)자를 써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다.

군위는 지리적으로 팔공산을 끼고 대구와 연결되어 있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군위 의성으로 결정되어 지금 군위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대구광역시로 편입이 추진되고 있어 천지개벽이 될 정도로 군위는 들뜨고 있다.

군위에는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선사가 주석했던 인각사가 있다. 인각사 주위에 일연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앞 학소대에 높이 100m 너비 60m의 인공폭포를 흘려 보내 주위 경관과 어우러져 청량감을 느낀다. 흐르는 개울물은 깊지 않아 아이들과 물놀이를 할 수도 있어 가족 나들이로 맞춤하다.

군위 출신 근대 인물로 김수환 추기경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 추기경이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때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석하며 민주화를 부르짖다 피신해 들어오는 학생들을 품어주기도 한 큰 언덕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탄생지에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을 조성했다.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 잡아 수많은 신자와 일반 국민들도 찾는 명소가 되었다.
군위 초등학교는 군위군 군위읍 동서 5길 28에 위치하고 있다.

군위 초등학교 전경  동창회 제공
군위 초등학교 전경. 동창회 제공

1907년 사립 진보학교로 개교하고 1911년 군위공립보통학교로 개칭. 1950년 군위국민학교로 바뀌었으며 1986년 전국 교명 통일로 군위초등학교가 되었다. 올해까지 105회 졸업으로 1만4천485명이 배출되었다. 군위초등학교는 ‘배움과 나눔으로 꿈을 키우는 행복학교’란 슬로건으로 현재 우옥련 교장 선생님이 맡고 있다. 본교 출신으로 김수환 추기경, 박순자 국회의원, 이기광 울산지방법원장, 육군 공병감을 지낸 고재균 장군이 있다. 학계에는 대구교육대학 홍상완 교수, 계명대학교 이남현 교수가 있다. 문인으로는 안경환 수필가, 김수진 시조시인이 있다.

다음은 시조시인으로 군위문인협회 부지회장으로, 영남문학 이사로 문단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 군위초등학교 54회 김수진 회장의 소회를 옮긴다.

군위 초등 54회 6학년 1반 앨범 동창회 제공
군위 초등 54회 6학년 1반 앨범. 동창회 제공

군위초등학교 54회는 1969년 363명이 졸업했다. 졸업한 지 어언 54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유년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점심 도시락조차 싸오지 못했던 친구들이 많았던 시절! 통학 거리가 멀어서 같은 학년이라도 나이가 두세 살 차이가 났다. 되돌아보면 지금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어려운 때였다. 의식주가 형편없었던 시절이었기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교실의 책상과 의자 등도 낡았으며, 운동장의 체육시설도 미끄럼틀이 유일하였다. 학교 건물도 지금처럼 벽돌이나 시멘트로 된 건물이 아니었고, 외벽은 콜타르가 입혀진 판자로 되어 있었다. 화장실도 수세식이 아닌 푸세식이어서 변을 보면 오물이 튀어 올라왔다. 그때는 달걀귀신 소동도 있었다.

가방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서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다녔다. 참고서도 별로 없었고 문제집도 귀했다. 공책도 종이 질이 좋지 않은 황색지였고, 필통이라고는 양철로 된 것뿐이었다. 교과목은 도덕,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음악, 미술, 체육, 서예 교본 등이었다.

수업 이외의 특별활동으로 봄에는 냇가에 가서 자갈 주워오기, 나무 심기, 여름에는 송충이 잡으러 가기, 가을에는 교내 낙엽 청소하기, 겨울에는 난로 불쏘시개용 솔방울이나 삭정이 줍기를 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학업 활동이었다. 여름 장마 때 비만 오면 강 건너 사는 학생들은 강물이 불어나기 전에 귀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 수업으로 마쳤다. 체육활동으로 남녀별 송구 대회(핸드볼 경기대회)가 인기가 있었다. 가을 운동회 때는 흰 런닝셔츠에 검은 팬츠 차림으로 달리기를 하고 그물 밑으로 빠져나가는 장애물 경기가 인기 있었다.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을 위해서 미국의 원조로 전지분유가 배급되어 우유를 먹어 보았다. 그 뒤에 정부에서 강냉이죽(옥수수죽)이 나왔고, 뒤이어서 강냉이빵이 배급되었다. 돌이켜 보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가는 옛 추억이다.

54회 동기회 베트남 여행 (좌로부터 김수진. 사공영. 박용경. 이외순. 이갑연. 고순옥. 최숙자. 정화수. 백영기) 동창회 제공
54회 동기회 베트남 여행. 왼쪽부터 김수진, 사공영, 박용경, 이외순, 이갑연, 고순옥, 최숙자, 정화수, 백영기 씨. 동창회 제공

졸업하면 중학 진학률이 30% 미만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은 사회로 직업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농삿일 거들면서 고향을 지키기도 했다. 모두가 사회 각 분야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 경제, 공업 분야에서 많은 부를 이룬 친구도 있고,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예술계에서 이름을 떨친 친구들도 많다. 고향에서 원예업을 하는 친구, 대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 학업을 계속하여 교수, 교장, 교사가 되어 후학을 지도한 친구들도 있다. 내과의사, 치과의 등도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체장을 맡아 일하는 자랑스런 친구도 있다. 자랑스런 동기들을 소개하면, 김수진(재 대구군위군향우회장, 재구경북도민회 부회장), 김한우(전 군위문화원 국장), 박영기(대구광역시 체육회장, 기은상사 대표), 박용경(구미 ㈜드림텍 전무이사), 박준성(전 서울 성신여대 교수), 우종욱(서울 내과 전문의), 이성우(대구 이성우 치과 원장), 이영숙(전 중등학교장), 이희석(전 동성철구건설 대표), 장성환(전 대구수도사업소장), 장일수(전 보훈처 과장), 정인수(전 중등학교 교사), 정화수(대두상사 대표), 최순대(서양화가), 함인호(전 청도교육지원청 교육장).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했지만 우리 동기들은 사회 각처에서 많은 활약을 하여 자랑스럽다.

김수진 동기회장 근영
김수진 동기회장.  방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