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㉜닳아가는 살들
[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㉜닳아가는 살들
  • 정재용 (엘레오스) 기자
  • 승인 2020.09.0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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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劍)이 숲을 이룬 가운데 서슴없이 뛰어들던 검투사들
벼는 날로 살쪄가고 농부는 말라갔다

벼 잎은 검이었다. 키 작은 벼는 단검, 키 큰 벼는 장검이었다. 벼 잎의 끝은 창처럼 뾰족하고 양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미세한 톱니가 촘촘히 박혀 맨살은 사정없이 베였다. 톱니는 물고기 비늘처럼 한 방향으로 뉘여 있었다. 벼 잎을 물고기에 견주면 줄기 쪽이 머리고 잎 끝이 꼬리였다. 왜가리가 물고기를 삼킬 때는 항상 머리부터 삼킨다. 그래야 비늘이 목구멍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벼 잎도 줄기 쪽에서 잎 끝 쪽으로 쓰다듬으면 괜찮았으나 그 반대 방향이면 손을 다쳤다. 벼는 잎 끝이 하늘을 향해 자라므로 논에 들어가면 손과 팔과 다리가 긁히기 마련이었다.

벼가 아직 한창 자라고 있는데 피는 날카로운 큰 잎에 열매까지 맺었다. 멀리 어래산이 펼쳐져 있다. 정재용 기자
벼가 아직 한창 자라고 있는데 피는 날카로운 큰 잎에 열매까지 맺었다. 멀리 어래산이 펼쳐져 있다. 정재용 기자

벼 잎의 가장자리는 서슬이 퍼런 칼날 같아서 농부의 팔다리는 크고 작은 생채기로 성한 데가 없었다. ‘검(劍)숲’으로 서슴없이 무논으로 들어가서 김을 매고, 농약을 치고, 비료를 뿌렸다. 특히 제초기를 밀고 빠른 걸음으로 벼 잎 사이로 걸어 다니다보면 긴 바지를 입었어도 종아리 부분이 쏠려 화끈거리고 살이 닳아서 벌겋게 됐다. 농부는 궁여지책으로 요소비료 포대 비닐을 잘라내서 각반을 찼다. 사지(四肢)에 비닐을 둘러 중세 기사가 갑옷을 입은 차림이었다.

벼뿐이 아니었다. 벼 포기 사이에 있는 피, 봇도랑에 있는 줄과 갈대, 채전의 옥수수 그리고 방천에 있는 강아지풀, 바랭이, 억새 따위의 새 잎이 모두 톱니로 돼 있다. 억새풀을 마을사람들은‘새피기’라고 불렀다. 새피기는 잎이 세고 칼날 같이 날카로워서 손을 베이기 일쑤였다. 이런 풀은 소꼴로도 적합하지 않았다.

농부의 온 몸은 햇볕에 타고 농약에 진물이 생기고 벌레에 물어 뜯겼다. 점심을 먹고 낮 12시 전후 방낮(대낮)에는 나무그늘이나 뒤꼍마루에 목침을 베고 누워 한 숨 낮잠을 잤다. 엊저녁 더위에 설친 잠까지 몰려와 매미 소리 요란한 가운데도 ‘백호야 날 살려라’ 코를 골았다.

얼굴과 팔다리는 햇볕과 물빛에 그을려 구리 빛으로 익고 손발톱은 닳아서 별로 깎을 것도 없었다. 오른쪽 장지발가락 발톱은 젖혀져 있고 양쪽 새끼발가락 발톱은 죽은 듯 검었다. 군복무 중 한 마디가 잘려나갔다는 농부의 오른쪽 새끼손가락 끝은 닳아서 빤질거렸다.

농약 치다가 속이 메슥거려서 논둑에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감자 갈아 먹이면 낫는다’는 속설이 있었으나 결국은 병원으로 실려 갔다. 벼멸구나 이화명충나방을 죽이는 살충제도 치고, 벼가 침수되면서 생기는 벼 흰 잎마름병과 질소비료 과잉으로 발생하는 도열병에는 살균제도 쳐야 했다. 도열병으로 벼 잎이 붉게 변하면서 줄기 채로 녹아내리면 농부의 속내도 녹아내렸다. 농약을 치면 벼에 붙어 있던 해충들이 날아오르고 논 위로는 벌레를 낚아채려는 제비 떼가 군무를 벌였다. 그 벌레를 먹은 제비새끼들은 며칠 내 모두 죽었다. 농부는 긴 옷을 입고 농약을 쳤는데도 피부가 가려워서 매일 저녁 연고를 발라야 했다.

서동댁의 장남 황수경 씨는 상농(上農)이었다. 일머리에 밝고 부지런했다. 자기 논일을 일찍 끝내고는 돈벌이에 나섰다.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재빨리 그에게 농약 살포를 맡겼다. 부인은 경운기 곁에 서서 농약 고무 통에 담긴 고무호스를 풀어주고 당기는 일로 남편을 도왔다.

농부의 몸뚱어리는 먼저 보는 놈이 임자였다. 낮에는 쇠파리와 각다귀가 달라붙고 밤에는 모기가 물었다. 무논에 들어가면 거머리가 피를 빨고 논에서 나오면 지게가 업어 달라 기다리고 있었다. 소꼴을 하다가 낫에 베고 무거운 짐에 눌려서 연골이 남아나지 않았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니”는 진리였다. 농부는 가족을 위해 자기 한 몸 닳는 것을 모윤숙(1910~1990)이 들려 준, 6.25 전쟁에서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죽은 국군 소위의 말처럼 기쁨으로 여겼다.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더위를 단번에 날리는 방법은 목물이었다. 농부는 펌프 아래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아들은 펌프질해서 길어 올린 물로 등을 씻었다. 짙은 팥죽색깔 잔등으로 옥구슬 같은 냉수가 굴러 떨어졌다. 아들은 명태껍질을 연상시키는 농부의 등을 정성껏 문질렀다. 왼쪽 견갑골 아래 팥알만 한 검은 점이 보였다.

피부의 대부분은 단백질로 구성돼 있다는데 농부의 식단은 허기를 달래는 탄수화물 위주였다. 농부는 달걀 하나라도 시장에 내다 팔 생각부터 하고, 두부 한 모, 꽁치 한 마리도 망설이다 샀다. 나이를 먹을수록 피부는 거칠어지고 손발은 닳기 마련이었다. 말아 올린 삼베 바지 아래로 드러난 장딴지의 하지정맥류가 한층 불거져서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마을에 배 나온 사람은 없었다. 텔레비전 연속극의 사장은 으레 배가 나온 탤런트의 몫이던 시절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바쁜 가운데도 짬을 내서,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여행을 다녔다. 1974년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정재용 기자
마을 사람들은 바쁜 가운데도 짬을 내서,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여행을 다녔다. 1974년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정재용 기자

겨울이 좋은 것은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농한기고 해충이 없다는 데도 있었다. 대신에 빈대, 이, 벼룩이 괴롭혔다. 낮에 개와 놀던 아이는 개벼룩에 옮아 몸을 긁어댔다. 저녁을 먹고 나면 저마다 이야기책을 펼치듯 내복을 벗어들고 호롱불 앞에 모여 앉아 이를 잡았다. 몰두하다가 눈썹과 머리카락이 그을렸다. ‘새가리’(서캐)는 불에 태워 죽였다.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이면 용모용의검사를 했고 머릿결 속에서 서캐가 발견된 여자아이는 꾸중을 들었다.

가을바람이 불면서 벼는 살쪄가고 농부는 말라갔다. 농부는 허수아비를 만들 생각을 했다. 그날 저녁은 완두콩 넣은 호박범벅이었다. 농부는 아내를 향해 눈길을 둔 채 아이들 앞에서 모처럼 호기를 부렸다. “내일은 토끼 한 마리 고아먹자. 아침 일찍 잡을게.” 잡는 것은 언제나 농부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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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2020-09-18 20:05:16
정기자님 글 정진해주십시오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