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수련 꽃의 대관식' 대구수목원의 밤을 붉게 유혹하다
'빅토리아수련 꽃의 대관식' 대구수목원의 밤을 붉게 유혹하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9.01 1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여왕을 기념하여 학명을 Victoria regia(빅토리아왕 또는 국왕)로 명명하였다.
어린아이가 올라앉은 퍼포먼스의 연출이 있어서 세간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안쪽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용암이라도 들끓고 있을까?

 

왕관 모양으로 대관식을 끝낸 빅토리아수련꽃의 화려한 자태. 이원선 기자
왕관 모양으로 대관식을 끝낸 빅토리아수련꽃의 화려한 자태. 이원선 기자

대구수목원(대구 달서구 화암로)에서 빅토리아수련꽃의 3시간에 걸친 대관식(戴冠式: 유럽에서 임금이 즉위한 뒤 처음으로 왕관을 써서 왕위에 올랐음을 일반에게 널리 알리는 의식)이란 매직 쇼를 관람했다.

빅토리아수련의 원산지는 가이아나와 브라질의 아마존강 유역이다. 1801년경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에서 식물학자들의 눈에 띄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아르헨티나와 아마존강 유역에서도 발견되던 중 1836년경에 영국의 식물학자 존 린들리가 빅토리아여왕을 기념하여 학명을 Victoria regia(빅토리아왕 또는 국왕)로 명명하였다.

빅토리아 수련은 여름철 저녁에 물 위에서 피는데, 처음에는 흰색 또는 엷은 붉은 색을 띄지만 2일째부터는 차츰 붉은색으로 변해간다. 이윽고 저녁이 깊어지면 완전히 붉어 왕관의 모습으로 변했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물 속으로 잠겨서 꽃으로서의 일생을 마감한다. 꽃의 지름은 25∼40cm이고 꽃잎이 많으며 향기가 있다. 잎의 크기는 1.5~2m로 사람도 올라앉을 정도로 크고 넓다. 또한 잎의 뒷면으로 잔가시들이 촘촘하여 일명 ‘큰가시연’으로도 불린다.

이와 관련해서 남해의 모 사찰에서는 합장한 스님이 올라앉았으며, 대구수목원에서도 몇 년 전 수목원에서 허락한 가운데 어린아이가 올라앉은 퍼포먼스의 연출이 있어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단년생으로 꽃이 크고 화려하다보니 정원의 장식용으로 탐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쉽게 키울 수 있는 식물은 아니었다. 귀한 만큼 그 가격이 만만찮아 한때는 거의 일천만원 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당시는 대한민국 내에서도 두서너(경기도 시흥 관곡지 등) 곳에만 제배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가격도 많이 내려 현재는 수십만 원 정도로 몸값이 낮아진 상태다. 하지만 함부로 키울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는 라니뇨와 엘니뇨현상이 교차하는 등으로 그동안 모질게 변해버린 대한민국 날씨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에 대구수목원에서 2년여 간 실패를 거듭했다. 과거의 기록에 의하면 한때는 30여 송이가 대관식을 가졌지만 실패한 2년여 간은 겨우 두서너 송이, 금년도 아직 10송이를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30여 송이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귀한 꽃인지도 모른다.

4시 30분경에 수목원을 찾았을 때 빅토리아수련은 그저 평범하여 5월의 목단꽃처럼 검붉은 것이 복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이후 시시각각으로 꽃이 변하기 시작했다. 바다가 갈라지고 땅이 솟아오르듯 꽃잎들이 일제히 움직여 아래로 축축 처져 내린다. 꽃의 내부에서 본능에 따라 생리적인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천산갑의 몸통 같고, 또 용의 비늘을 포갠 듯하고 장군들의 갑주를 닮았다. 뭇사람들의 눈에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가시박의 기세등등하게 뻗어가는 여린 순 같고 우후죽순이 뻗어 올라가는 기세 같아 변하는 모양새가 눈에도 확연하다.

빅토리아수련꽃이 왕관으로 변해가는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원선 기자
빅토리아수련꽃이 왕관으로 변해가는 모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원선 기자

삼각대를 세워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에 이끌려 왔다는 아주머니들조차 30여 분에서 1시간여를 지켜보더니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며 눈을 씻어 신기해 마지않는다.

그 변해가는 모양새를 볼라치면 목단꽃처럼 검붉은 꽃잎이 몽땅 아래로 쳐지자 그 안에서 붉은 양파를 영상케 하는 동그란 물체가 불현듯 떠온다. 이 또한 처음에는 납작하던 것이 점차 둥글어져 풍선처럼 부푼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자연의 신비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느 정도 부풀어 오르자 이번에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흡사 불을 뿜다가 잠시 멈춘 화산의 분화구를 보는 듯하다. 그 안쪽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용암이라도 들끓고 있을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중에 서서히 날이 저문다.

“이제 어떻게 됩니까?” 그때까지도 자리를 지키던 아주머니께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은 던진다. 또 어떤 아주머니께서는 “이런 사진은 어디에서 구경할 수 있나요?”하며 개인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카페 주소나 블로그 등등을 묻는다. 그때 명함을 한 장 드리며 “화요일쯤 검색하면 볼 수 있습니다”고 하자 “인터넷 신문이에요! 끝까지 봤으면...!”하고 말끝을 흐린 뒤 아쉬움이 남는 듯 주춤주춤 다리를 뜬다.

이제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붉은 양파모양이 위로 치솟아 천천히 벌어지면서 가늘지만 노란색 줄무늬를 선보이며 화려한 왕관모양을 이룬다. 빅토리아수련 꽃이 절정에 다달아 화려한 대관식을 갖는 것이다. 때는 오후 7시 30분경, 어둠이 수목원을 완전히 집어 삼켰다. 이제는 인위적인 불빛이 없다면 그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는 지경이다. 번쩍번쩍 이곳저곳에서 후레쉬가 불빛이 터진다. 그때마다 문득문득 드러나는 왕관의 모습은 그간의 화려했던 매직 쇼가 끝나 대미를 장식하는 듯하다.

화려한 일생인 만큼 꽃에게 주어진 고작 48시간, 그 중 38시간이 지나 이제 남은 시간은 10시간이 채 안 된다. 그러고 보니 평범하게 35시간을 보낸 뒤의 3시간여의 모진 산고 끝의 화려한 금의야행, 짙은 어둠속에서도 천연덕스러운 빅토리아수련은 빅토리아여왕의 머리 위에 얹힌 왕관처럼 루비가, 사파이어가, 에메랄드가, 호박이, 다이아몬드가 황금으로 만든 둥그런 테를 빼곡히 장식하고 있는 듯 아름답다.

내일 아침이면 물속으로 잠겨 짧은 생을 마감할지라도 오늘 저녁 만큼은 최고의 한때를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어쩌면 밤을 지새워 은연중 신데렐라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