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청라언덕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0.09.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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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의 길잡이.  안영선 기자

청라언덕에 가려면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에서 갈 수도 있지만 청라언덕역에서도 갈수 있는데, 걸어가야 할 거리는 비슷하다. 청라언덕역에서 출발하면 계명대 동산의료원 남문을 통하면 된다.

남문을 조금 오르면 박태준의 '동무생각' 노래비를 만날 수 있다. 동무생각 노래를 한 번 부르면 계성학교를 다니던 박태준이 사랑한 여학생 유인경을 생각을 할 수 있다. 안내소에서 팸플릿을 한 장 얻어서 보니 청라언덕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라고 하니 푸른담쟁이 언덕이란 뜻이다.

청라언덕에는 스윗즈, 블레어, 챔니스 선교사 주택이 있는데, 지금은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이 문이 잠겨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청진기, 일제강점기의 세균배양기 등은 볼 수 없다. 이들 선교사 주택의 기초가 된 돌들이 대구읍성돌이라고 한다. 

선교사들의 주택 옆에는 대구사과가 있게 한 시조목의 3세목 사과나무도 있다. 3세목이긴 하지만 대구사과나무의 조상을 본 듯한데 열매는 아주 작은 꽃사과 같이 작았다. 사과나무 근처에는 선교사들이 안장된 은혜정원이 있다. 마펫 선교사는 죽는 날까지 '대구는 나의 집' 이라고 하며 대구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다고 한다.

대구능금의 3세목.  안영선 기자

1919년 3월 1일 서울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역사적 만세운동이 대구에서는 서문밖 장날이었던 3월 8일 일어 났다.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대구출신 이갑성을 비롯해 대구지역 기독교계 중심에 있었던 이만집 목사, 김태련 조사, 그리고 백남채, 김영서, 이재인 등 교사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던 만세운동길은 집결장소를 이어주는 지름길 즉 비밀통로 역할을 했다. 이 길을 거쳐 90계단길로 집회장소로 갔다고 한다.

90계단에서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  안영선 기자

농민문학(2019년 봄호) 기미삼일운동백주년 기념 특집에 실린 졸시 '만세운동길 그길' 한 편을 읽으며 그날을 회상해 본다.

 

만세운동길 그길

                  안영선

 

1919년 3월 8일

대구의 서문 밖 장날

대구에도 거사가 일어났다

 

90계단길

삼일만세운동길

지금도 그 길에 가면

365일 태극기 걸린 허공에서

대한독립만세소리가 들려온다

 

33인 서명자 중 최연소

독립선언문 뭉치를 건너 받은

두 주먹 불끈 쥔 이갑성

눈빛은 강열하고 목소리는 단호했으며

이만집, 김태련, 박남채, 김영서, 이재인이 이끌고

계성학교 학생들은 한복을 입은 장꾼으로 변장하고

신명학교 학생들은 발래 하러가는 척하며 삼삼오오 모이고

대구고보 학생들은 일경의 저지를 뚫고 달려오고

성경학교 학생들도 눈치 살펴 모이고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비밀리 비밀리에

강화된 일본 경찰 감시의 눈을 피해

서문시장이을 이어주는 지름길 비밀통로

울창한 소나무 숲 만세운동길이 비좁았다

3월 8일 오후 1시 집결지는

섬유회관 건너편 옛 동산파출소 입구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인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죽을 힘을 다 했습니다

모두의 힘이 하나로 합해졌습니다

태극기도 같이 흔들립니다

목이 찧어져라 만세도 부릅니다

그 소리 멀리멀리 물결져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