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말 권하는 사회
(68) 말 권하는 사회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8.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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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현진건(玄鎭健)이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했다. 이 단편은 일제 치하 조선의 지식청년들이 조국을 잃어버린 상실감으로 날마다 술을 마시는 일상과 이러한 고뇌를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 그 암담한 항변을 주제로 삼았다.

이 단편은 밤 1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한숨으로 시작된다. 결혼한 지 거의 8년이 되었지만, 같이 있어본 날은 1년도 채 되지 못했다. 일본 동경에 유학 간 남편이 돌아오면 만사형통할 것이니, 그까짓 비단옷이나 금반지가 무슨 대수냐고 줄곧 기다렸던 아내였다. 그러나 빈손으로 돌아온 남편은 매일 한숨만 쉬며 나약한 몸으로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만취 상태로 귀가하는 것이 일과였다.

새벽 2시에 귀가한 남편에게, 누가 이렇게 술을 권하느냐고 아내가 따지면,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소!’ 라고 횡설수설했다. ‘조선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술 권하는 사회’를 남편이 원망하지만, 아내는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 라고 항변할 뿐이었다. 남편은 답답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아내가 붙잡는 소매를 뿌리치고 또 다시 밖으로 나간다. 멀어져가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에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하며 아내도 깊은 절망에 빠진다.

이 무렵 제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서구의 지식계급과 예술 청년들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고 했다. 헤밍웨이(E. Hemingway, 1899-1961)가 그의 소설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의 서문에 “당신들은 모두 잃어버린 세대의 사람들입니다.(You are all a lost generation)”라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말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 100여 년 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술 권하는 사회’처럼 우리 사회가 날마다 말을 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1차적으로 TV 화면에 나타나는 자막이다. 소위 방송 작가라는 (여성) 젊은이들이 시시각각 화면에 말을 권하고 있다. 그들은 뉴스를 제외한 각종 프로그램에서 장면마다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선제(先制) 공격처럼 자막을 뿌린다. 화면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 뒤에, 혹은 말과 말 사이에 번개처럼 자막이 나온다.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헛둘 헛둘’처럼 무슨 은어(隱語) 같은 말을 강요하고 있다. 불필요한 말을 부적절하게 권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자막들이 10대 청소년들의 정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제는 상식(常識, common sense), 즉 ‘일반적인 지식, 이해력, 판단력’에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말이 거침없이 쏟아지는 데 있다. 수학에서 증명이 필요 없는 공리(公理)와 같은 것이 상식이다. 방송국 당국자들의 사명은 얕은 재미와 인기로 시청률을 높이는데 몰두하는 것이 아니다. 매스컴, 특히 TV의 막강한 사회적인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하여 자라는 새싹들의 건전한 심성 함양과 창의적 사고 발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말 권하는 사회’의 두 번째 현상은 우리 사회에 심화되는 이념적 갈등의 병폐와 궤를 같이 한다. 지난 4월 코로나19 재난으로 온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지역 감정을 바탕으로 한 이념적 갈등이 온라인에 쏟아져서 또 하나의 아픔이 되었다. ‘우리는 옳고 너희들은 모두 틀렸다’는 흑백 논리로 자기 진영을 옹호하는 씨앗은 극단적인 말이다. 진보든 보수든 자기 집단을 강화하는 말을 수시로 만들어 내면서, 그 말을 강권하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있다. 각 진영의 대변인들이 총대를 매는 부정적인 ‘말’들은 마치 군인들의 실탄처럼 공유하면 저격용으로 발사되고 있다.

‘말 권하는 사회’의 정제되지 못한 언어 현상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 이럴 때 일수록, 같은 듯하면서 화합하지 못하는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아니라, 서로 다르면서 화합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차이에서 지헤를 얻는 화합과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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