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혼을 드높인 장수 논개사당
민족혼을 드높인 장수 논개사당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08.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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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어려운 상황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 민족의 혼을 드높인 충절의 표상
1973년 문화공보부 성역화사업 2만평부지 논개의 숭고한 충렬정신 기리는 사당
의암공원과 의암호수, 의암루 등 빼어난 주변 풍광과 어울린 지방기념물 제46호
민족정기의 회복과 국민정신교육의 계도적 차원에서 더욱 강조될 의리정신
논개사당은 장수시내가 잘 내려다 보이는 언덕배기에 적송 392그루가 조경수로 심어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장희자 기자

잔다르크는 평민 소녀로 프랑스와 영국이 영토의 지배권을 두고 수십년 동안 싸움을 반복 하던 도중 프랑스가 궁지에 몰렸을때 16세의 나이로 출전하여 오를레앙성을 탈환하는 등 맹활약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한 구국의 영웅이자 가톨릭 성인이다. 프랑스에 잔다르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국가적 전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져 민족의 혼을 드높인 충절의 표상 논개가 있다

논개사당, 의암사(義巖祠)는 전북 장수읍 두산리 산 3-1번지에 있으며, 198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됐다. 의암이란 그가 진주 남강에 뛰어들 때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린 바위의 이름이고, 이를 그의 사당이름에 붙인 것이다. 1954년 장수군내 각계 각층에서 성금을 모아 남산공원의 아래봉우리 꼭대기에 창건했고, 논개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렸다. 당시 부통령 함태영이 친필로 휘호를 내려 현판을 각자(刻字)하여 걸었다.

논개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인 의암사 뒷편에는 배롱나무꽃이 만개하여 충절의 붉은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장희자 기자

1960년대 후반기부터 성역화사업을 시작하여 1973년 문화공보부 승인을 얻어 장수읍 두산리에 2만여평 부지를 조성하여 1974년 사우(祠宇)를 이건하고 삼문과 담장을 설치했다. 주위 조경공사를 시행하고 관리사 및 광장을 조성하고 수명비(竪銘碑)도 경내에 이건했다. 장수군에서는 의암 주논개가 태어난 음력 9월 3일을 군민의 날로 정하여 논개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는 추모대제를 지내고 있다.

논개사당은 의암호앞에 조성되어 있으며 입구에는 변영로 시인의 논개 시비석과 의암사라 쓰인 입석이 나란히 서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조경수로 심어진 적송 392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로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드넓은 잔디로 가꿔진 광장으로 걸어가면 계단과 함께 첫번째문인 외삼문이 나타난다.  문 안쪽 우측으로는 생장향수명비석이 있는 비각이 있고 1846년 장수현감 정주석이 논개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고 논개가 장수태생임을 밝히는 글이 새겨져 있다

왼쪽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기념관에는 논개의 일부 유품과 남편 최경회장군의 유품이 소장되어 있고, 논개의 역사적 이야기들이 기록, 전시되어 있다. 논개부인의 성은 주씨이고, 장수군 장계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이 논개인 이유는 그녀가 태어난 사주가 갑술년 갑술월 갑술일 갑술시에 태어나 술(戌)자가 겹치는 것을 기이하게 여겨 딸을 술시에 낳은 것을 개를 놓은 것이라 해석하여 논개라 지었다. 아버지(주달문)가 마을 훈장인 양반가의 딸로, 5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숙부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숙부가 어린 논개를 이웃마을 부자인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팔아넘기고 도망을 갔다. 이 사실을 안 논개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피신하자 김풍헌이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소를 했다.

의암사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의암공원과 호수, 장수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모습이 펼쳐진다. 장희자 기자

 재판을 맡은 사람이 장수 현감인 최경회였다. 최경회는 논개모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무죄 방면하고 갈 곳 없는 모녀에게 관아에서 잔심부름을 하게 했다. 논개 나이 17세때 최경회와 부부의 예를 올린 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최경회를 따라 진주에 온다. 1차 진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던 조선의 의병과 관군은 2차 진주대첩에서는 10만 왜군과 7간이나 맞서 싸웠으나 결국 패하고 만다.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 자결을 하고, 논개는 남편의 복수와 나라에 충절을 다하기 위해 관기로 변장해 왜군 승전연회장에 들어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의암 바위에서 남강으로 투신했다는 주요내용이다.

15m정도 걸어가면 계단과 함께 두번째 문인 내삼문(휘광문)이 나타나며, 다시 2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20계단을 올라가면 세번째문인 삼문(충의문)이 나타나고 이곳 정면에는 논개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 우뚝 서 있다. 사당내 영정은 처음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렸으나, 그의 그림이 화법상 전통기법에 어긋나고, 그의 친일행적도 논란이 되어 김은호가 그렸던 초상화를 내리고, 대신 한국 전통 초상화법에 맞게 그린 윤여환화백 영정을 안치하였다

사당 뒷편에는 때마침 배롱나무꽃이 만발하여 그의 나라를 위한 충절의 붉은 마음과 초상화에 나타난 푸른기상이  와 닿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위해 바치는 숭고한 애국정신에 고개숙인다

의암호수 건너편 산봉우리 아래 조망권이 좋은 언덕배기에 논개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장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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