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인생혁명, 꿈을 채워가는 김영창 씨
도전과 인생혁명, 꿈을 채워가는 김영창 씨
  • 원석태 기자
  • 승인 2020.08.31 1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팔공산 언저리에서 창문을 열어둔 채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시간의 날개를 놓아주지도 않고 나이도 잊고 배움의 사냥꾼처럼 이리 저리 청년의 열정으로 오늘도 달려가는 김영창(75세)씨. 직업인으로 교직생활은 끝났지만. 배움과 도전의 꿈은 청년이다. 무엇이 그렇게 배움의 야망을 꾸게 한지는 모르지만 칠순을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와 어울려 보석을 캐기에 바쁘다. 퇴직 후 쉽지 않는 결심으로 도예와 문인화를 전공하여 배우고 익힌 솜씨로 꿈과 열정을 쏟은 70여점의 작품을 ‘사랑으로’란 부제가 붙은 도예개인전으로 남다른 칠순잔치를 하였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다른 분야 골프지도학과에 진학하여 이론과 실기를 배워 즐겁고 행복하게 건강을 챙긴다. 그는 삶의 모델이고 존경하는 사람의 전기를 쓸려고 문예창작학과에서 또 다른 꿈을 간직하고 오늘도 캠퍼스로 달려간다.

-본인 소개를 해 주십시오.

▶경북 상주시 모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대사대 부고를 거쳐 대구교육대학교와 대구대 사대 영어교육학과, 동대학원 영문학을 전공하여 초, 중등교사, 대구대학교 영문학 강사 및 대구교원연수원 강사 등 40여년 교직생활을 하였습니다. 65세 때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에 학사 편입하여 도예와 문인화를 전공하여 2013년에 졸업했습니다. 그 후 대구공업대학교 골프지도학과에 입학하여 2016년에 졸업했고 2019년에 계대 Artech College 문예창작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카우트 활동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연맹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베트남 참전 용사입니다. 목숨을 건 전투와 위험 속에서 강을 건너고 길이 없어도 가야했고 또 우거진 밀림 속에서 며칠씩을 야영하며 생존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스카우트를 맡게 되었고, 대원을 지도하는 대장(훈육지도자)으로, 대구 미8군 보이스카우트 대장, 세계총회 및 아-태총회 정대표, 세계잼버리 및 아-태잼버리 한국대표로 봉사했습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아-태지역 훈련교수, 훈련분과위원으로서 아-태지역 지도자 교수과정 강사 및 아-태지역 지도자 상급과정 워크숍 강사로 봉사한지 올해로 50년이 됩니다.

 

-퇴직 후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는 무엇 입니까?

▶교직을 퇴직한 후 스카우트에 더욱 더 미쳤지요. 2007년 필리핀 마닐라 근교 마킬링(Markiling) 산록에 있는 아-태지역훈련원에서 베트남 지도자 상급과정 워크숍에 강사로 봉사하던 중 강의가 없는 날 하늘을 찌르듯이 솟아있는 마킬링 산속의 열대림 속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두 갈래 길을 만나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중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평생 못가 본 길 그리고 가고 싶었던 길을 한 번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국 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학장님과 도예과 교수님을 만나 학사편입에 대하여 상의 하였습니다만, 대학 특성상 고령자 특혜가 없어 젊은 학생들 속에서 경쟁시험에 뛰어들어 합격하였으며 나이 차이를 넘어 어린 학생들과 즐겁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도예 전공하시고 문인화도 함께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업으로 이어 온 정미소가 뜻하지 않은 화재로 가세가 기울어 미술공부를 할 수 없게 되어 교직으로 나갔습니다만 특히 조소에 대한 꿈은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퇴직 후 늦게 대학에서 흙을 반죽하고 빚어 내 손으로 하나하나 형상화 되어가는 도자기를 보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또 청화백자가 너무 좋아 직접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졸업을 보류하고 서예과에 추천을 부탁해 사군자와 문인화를 공부하여 2년 뒤 죽농서단 회원이 되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도예제작에 밤낮으로 미친 5년이 지나고 2013년 봄 저는 아양아트센터에서 도예개인전으로 칠순잔치를 하였습니다.

 

김영창 씨와 함께 공부한 젊은 학우들.  김영창 씨 제공
김영창 씨와 함께 공부한 젊은 학우들. 김영창 씨 제공

 

-골프지도자학과도 졸업 하셨습니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평소 즐기던 운동이었지만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도예는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면서 건강관리와 많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문예창작학과에 다니고 계시지요?

▶계명대학교 Artech College 문예창작학과에 2019년 학사 편입하여 현재 재학 중입니다. 평생을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창시자 Lord Baden Powell과 스카우팅을 연구하였습니다. 스카우팅 개론 등 스카우트 관련 서적 6권을 출간 했습니다. 스카우트에 미치다 보니까 점점 더 그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의 사상과 업적에 대한 글을 쓰고 특강으로 전국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창시자 B-P는 존경을 넘어 내 삶의 Role Model이 되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각기 다른 작가가 쓴 그의 전기는 10권이 넘습니다. 내 손으로 그의 전기를 쓰고 싶어서 문예창작학과에 학사편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하여 세계연맹의 공식작가로 임명된 E. E. Reynolds의 1943년 판 B-P. The Story of His Life 이라는 책을 영국연맹 훈련원, Gilwell Park에서 한국인 최초로 DTC-21 훈련을 마치고 London의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번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계획이 있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씀은?

▶그의 전기를 쓰고 나면 군인과 스카우트의 두 가지 삶을 재미있게 표현한 그의 자서전을 번역할 계획입니다. 특히 저는 참된 행복의 길은 자기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처음 이 세상에 왔을 때 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십시오./ The real way to get happiness is by giving out happiness to other people. Try and leave this world a little better than you found it. 라고 한 그의 유언대로 힘써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여역수(學如逆水)라는 말처럼 배움이란 마치 물을 거슬러 배를 젓는 것과 같다고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힘쓰지 않으면 그대로 흘러 시간 속에서 퇴보하게 된다. 주름진 얼굴, 흰 머리카락을 자랑스러워하며 꿈을 품고 오늘도 먼 길 운전대를 잡으며 싱긋 웃는 눈은 21살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