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기적을 부르는 ‘사랑해밥차’ 최영진 대표
매일 기적을 부르는 ‘사랑해밥차’ 최영진 대표
  • 강효금·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8.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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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사랑해밥차'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최영진 대표.  이원선 기자
시간을 거슬러 '사랑해밥차'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는 최영진 대표. 이원선 기자

 

지난 8월 11일. 코로나19에서 잠시 시민들이 숨을 돌리던 날, 대구문화예술회관 맞은편에 빨간 밥차가 자리를 잡았다.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어느덧 나무 그늘에는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았다. 점심 준비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사랑해밥차’ 최영진(63)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장애는 봉사에 걸림돌이 아니다

최영진 대표는 시각장애인이다. 그가 어렸을 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회복될 수 있었지만, 시간은 그에게 그런 혜택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주어진 시간을 살아냈고 예술단을 만들어 시설을 방문하며 공연을 했다. 그때 만난 어르신들을 통해 그는 어르신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따뜻한 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모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몇몇 사람들을 모아,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직접 시장에 나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때가 2004년이었다. 예술단이 공연으로 얻은 수익금은 어김없이 ‘무료 급식‘에 쏟아부었다. 공연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어디든 달려갔다. 들어가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 급식비에 보태고자, 웬만한 설비며 음향 기계는 최영진 대표 손에서 만들어지고 조율되었다.

 

‘오병이어’, 그 나눔의 기적

최영진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사랑해밥차'가 자리 잡은 옆으로 삼삼오오 그늘에 앉아 급식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요일마다 사랑해밥차가 머무는 장소는 바뀐다고 한다. 화요일은 대구문화예술회관 맞은편에서 급식하는데, 매회 천여 명의 어르신이 찾아와 식사한다. 대충 계산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 텐데, 어디서 충당하는지 궁금해졌다. 최영진 대표는 매일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다. 쌀이 떨어져 가는데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쌀이 들어오고.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이 식판이 채워지고 나눌 수 있음은 기적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는 봉사를 하러 오는 봉사자들이 음식 재료를 가지고 오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싱싱한 채소를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빵이며 떡도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가끔 부모님의 생신이라며 ‘떡 상자’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때는 자녀들이 직접 어르신들에게 나누어주기를 권한다고 했다. ‘나눔’이란 마음이 함께 해야 하기에, 봉사를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사랑

가끔 옷을 잘 차려입은 분들이 사랑해밥차를 찾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왜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무료 급식을 하느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은 살아있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자 사랑이라고 최영진 대표는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아무리 부유해도 점심때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 오면 친구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밥도 먹고. 그 시간이 즐겁다고 어르신들은 이야기했다. 집에 있으면 괜히 며느리 눈치도 보이고 자신의 존재가 쓸모없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곳에는 친구도 있고 식사가 끝나면 공연도 있어 신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잊고 지내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사랑을 이곳 ‘사랑해밥차’에서 되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밥차 한쪽으로 이발을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보인다. 시내에서 미용실을 하는 헤어디자이너 십여 분이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더 많은 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오십여 명으로 인원을 제한해야 해서 그것이 아쉽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시간/ 왼쪽부터 서현애, 최영진 대표, 오상우 씨. 이원선 기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시간. 왼쪽부터 봉사자 서현애, 최영진 대표, 오상우 씨. 이원선 기자

 

봉사는 아무 대가 없이

봉사는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최영진 대표는 말한다. 정치색이나 종교가 개입되면 자신이 처음 마음먹었던 것들이 사라질까 두렵다고 했다. 선거 때면 정치인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가지만, 그는 어떤 경우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고 했다. 봉사가 어떤 세력에 편성해서 변질하기 시작하면, 그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한다. 코로나19 이전에 ‘황사’로 인해 야외에서 급식하기 어려운 날이 있었다. 그때 최영진 대표에게 떠오른 생각이 ‘도시락 배달’이었다. 대구광역시 서구, 동구, 달서구 주민센터에 연락해서 도시락이 필요한 사람들의 명단을 받았다. 홀몸 어르신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중심으로 그날 먹을 밥과 일주일 치 반찬을 준비해서 도시락에 담았다. 도시락을 배달하고, 다시 같은 수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기에 생각보다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200여 가구에 배달하던 도시락이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며, 그 점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일주일 치 반찬을 가져다주고 돌아서면 맛있게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했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식사는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된단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최영진 대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저는 환갑을 아주 거창하게 했습니다. 미역국을 끓여 여기 천여 명이 넘는 분들과 나누었거든요. 저처럼 이렇게 많은 분의 축하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이것만으로도 저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매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랑해밥차’ 안에는 최영진 대표의 사람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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