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트로트열풍과 시니어 세대
(79) 트로트열풍과 시니어 세대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0.08.18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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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사랑의 콜센터입니다’ ‘몇 학년 몇 반 누구시지요?’

이어서 7학년 ◯반 ◯◯라는 낭랑한 목소리가 '미스터 트롯' 7인의 멤버 중 한사람의 선택과 함께 기계음을 통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정겹다.

자막엔 굵직한 글씨로 ◯◯노래만 들으면 아픈 것도 싹 없어진단다.

시사교양프로 마이웨이의 ‘내일은 미스터 트롯’에서 배우 김영옥(84)이 등장한다. 가수 임영웅의 광팬으로 모친의 미장원을 찾아가서 인증 샷을 찍는가 하면 임영웅이 부른 노래를 몽땅 수합해서 편집한 노래집을 들고 다니면서 ‘영웅앓이’를 한다. 80대 할머니답지 않게 임영웅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단다. 그가 부르는 ‘보랏빛 인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바램’ 등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 바로 그 모습으로 임영웅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어 들으면, 전신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단다. ‘사랑의 콜센터’ 녹화장을 방문한 김영옥에게 임영웅은 꽃다발을 안겨주고 건행(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을 외친다.

눈물을 글썽이는 80대 할머니에게 보내는 30대 청년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다. 이는 어디 배우 김영옥만이 지나온 인생길일까?

노랫말을 새겨보면 모든 70~90대 시니어들의 살아온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다. 10대 가수 정동원의 ‘보릿고개’ ‘희망가’라든가 영탁의 ‘막걸리 한 잔’등도 바로 시니어들의 지나온 생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며칠 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일은 미스터트롯 대국민 감사콘서트’첫 공연이 열렸다. 코로나로 4차례나 연기된 끝에 문진표 작성, 체온 체크, 좌석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과 함께 방역비만 10억이 투자된 콘서트였다는데 ‘날 보러 와요’로 무대가 열리자 힘찬 박수와 함께 떼창 금지로 응원도 어렵지만 그래도 5천여 관중을 완전히 사로 잡아버렸다. 엄마와 딸이 팔장을 끼고, 백발의 할머니가 손자의 손을 꼭 잡고 홍조 띤 얼굴로 웃으며, 반백의 부부가 소년 소녀 시절로 돌아가서 응원봉을 흔들어대며 신이 난다. 정말 너무도 멋진 광경이다.

솔직히 시니어 세대들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다.

지금의 시니어들은 예전부터 수평문화로 동갑계, 동창회, 동우회 등 나이가 비슷한 또래 문화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세대차가 큰 벽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소통이 안 되는 그래서 더욱 외로운 세대들이다. 더구나 경로당, 복지관 등이 모두 폐쇄되어서 갈 곳이 없는 노인들에게 선풍을 일으킨 ‘미스터 트롯’이야말로 10대부터 90대까지를 한마음으로 만들어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함께하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었다.

트로트는 어원이 영어의 ‘빠르게 걷다’ ‘바쁜 걸음으로 뛰다’에서 나온 네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정형화된 리듬에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을 주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한 장르다. 1920년대 말경부터 일명 뽕짝이라고도 불리면서 1960년대 이후부터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민족의 애환으로 ‘이 풍진 세월’ ‘낙화유수’ ‘황성 옛터’ ‘목포의 눈물’등 대중들의 생활 속을 파고들어서 민족혼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민족의 한을 노래에 담기도 했다.

또한 광복이후 분단과 전쟁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경험은 ‘이별의 부산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꿈에 본 내 고향’ 등 지금의 시니어 세대와 어려운 세월을 함께해 왔다.

한때 서양 바람이 불면서 트로트가 멀어지고 코로나19로 더욱 얼어붙던 와중에 ‘미스터트롯’이 시니어들의 취향을 저격하면서 새바람을 일으켰다. 이제 수직문화에만 익숙한 시니어 세대로 하여금 10대부터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소통문화를 낳았고, 젊은 시절의 트로트를 향한 열망이 시니어들의 노년의 외로움을 넘어서 은근한 정으로 가슴을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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