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통곡과 눈물, 제대로 새겨들어야
지구의 통곡과 눈물, 제대로 새겨들어야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0.08.17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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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장마 어느 때보다 길고 많은 비 뿌려
재산상 피해와 사망·실종 등 인명 피해 속출
기후변화의 새로운 양상 슬기롭게 대처해야

무너지고, 넘치고, 찢어지고…. 하늘이 두 동강이 날 것처럼 목 놓아 울부짖던 천둥과 번개,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퍼부어대던 거센 빗줄기.

좁은 국토의 대한민국이 두 개의 색깔로 나뉘었다. 정치색이 아니라 기상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호우특보와 폭염특보 등으로 지역에 따라 날씨가 극명하게 대조되는 양상이다. 6월 하순부터 시작된 긴 장마가 50일 이상의 역대 최장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이제 서서히 물러날 채비를 하는가보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대구는 사람의 체온이나 기온이 별반 차이가 없다. 거기다 습도까지 높아 불쾌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비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에 비하면 이까짓 더위쯤이야 불만을 이야기할 형편이 못된다. 눅눅하고 답답한 아파트를 피해 숲이 있는 공원으로 나가보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으로 옷이 흠씬 젖어버리는 이 후텁지근한 날씨. 연신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식혀보려는 어르신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살짝 스쳐가는 바람결에도 ‘아이구, 시원해라’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대구 달서구 성당못 주변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는 어르신들. 허봉조 기자
대구 달서구 성당못 주변 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는 어르신들. 허봉조 기자

지난 주말,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비견될 영화를 다시 한 번 감상했다. ‘2012’라는, EBS(일요시네마)에서 상영한 재난영화였다. 지진과 화산폭발과 거대한 해일 등 자연재해로 한 순간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이 초토화되고, 주인공 가족은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사투를 벌인다. 영화가 처음 개봉됐던 2009년에는 너무 지나친 공상이라고 얼굴을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올여름 장마는 어느 때보다 길고, 많은 비를 뿌렸다. 비구름은 동서와 남북으로 방향을 이동해가며 돌풍을 동반한 국지성 폭우로 돌변했고, 두드러진 야행성까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장마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오랫동안 물기를 머금어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주저앉고, 불어난 물에 저수지의 둑이 터지고, 하천이 범람하고, 아파트가 물에 잠기고, 주차된 차들은 서로 뒤엉키거나 지붕만을 드러낸 채 둥둥 떠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삶의 터전을 잃은 재산상 피해는 물론 사망과 실종 등 인명 피해도 잇따랐다. 어디가 강이며, 평야인지. 어디가 도로이며, 하천인지. 차마 뉴스를 시청하기 민망할 지경이었다.

중앙재난대책본부에서도 ‘기후변화의 새로운 양상’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와 유사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당장 시급한 일은 눈앞의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기후변화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분석과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끊임없는 교육과 의식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무심코 행하는 생활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몸에 밸 수 있는 꾸준한 학습과 인식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남쪽으로부터의 고온다습한 수증기와 북쪽의 차고 건조한 수증기가 부딪히면서 많은 비가 만들어졌다는 기상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더불어 인간사회의 편의 위주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자원의 낭비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에 대한 설명도 자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말로만 친환경을 외칠 것이 아니라, 외형보다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정책을 추진하는 슬기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빌딩 숲에 가려진 하늘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자동차와 냉‧난방기구가 내뿜는 열기로 신선한 공기와 바람을 느낄 수도 없다. 이 후끈거리는 날씨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집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환경을 걱정하는 것은 특정 기관, 특정인의 역할이 아니다. 어떤 정책도 환경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몇몇 정부의 정책은 땜질식 또는 임기응변식으로, 지구의 경고를 무시한 발상이 의심되는 사례가 있어 아쉬움을 가중시킨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식을 바꾸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지구의 시한폭탄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지구가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들면 그렇게 오래도록 많은 비를 쏟아냈을까. 이제야말로 지구의 통곡과 눈물을 제대로 새겨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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