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숙의 ‘꽃’
임병숙의 ‘꽃’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08.19 10:00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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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숙의 ‘꽃’

 

이름에 '달'이 들어간 꽃은 왠지 정겹다. 이름만 들어도 순박하고 아련한 그리움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달을 닮아 드러내지 않는 몸짓과 애잔함이 묻어 있는 듯하다. 내 유년의 기억을 품고 있는 '달맞이꽃'과 '달개비'는 논둑에 지천으로 피었다.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색깔은 달라도 어감도 비슷하고 달처럼 순정한 몸짓으로 마음을 끌어들인다. 얼굴조차 쉽게 내밀 수 없어서 에둘러 표현한 듯한 '달거리'도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그 꽃은 달빛처럼 은밀하게 햇살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핀다.

꽃이 떨어진다. 발갛게 멍울 진 얼굴을 붉히며 바닥에 가만히 앉아 있다. 사십여 년을 달을 거르지 않고 내 몸을 거쳐 갔으면서 아직도 부끄러워할 게 남은 모양이다. 한 장씩 떨어지다 이슬이 되어 물속으로 미끄러진다. 한때 뭉턱뭉턱 떨어지던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긴 세월 달마다 피더니 이제 지친 걸까. 열정이 식은 걸까. 꽃이 빠져나간 자리가 휑해 보인다. 내게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모습에 불안감이 밀려든다.​

해마다 봄이 오면 베란다에 철쭉이 핀다. 밖에 한 번 나가본 적 없어도 피는 걸 보면 봄에 대한 의무랄까. 예의를 지키는 듯하다.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의식을 치르는지도 모른다. 베란다는 철쭉의 선홍색 이야기로 요동친다. 겨우내 벗은 몸으로 추위에 떨게 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원망하는 기색도 없이 화사하다. 철쭉은 미소만큼 성격이 밝고 구김살도 없어 보인다.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순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끌리듯 다가가서 철쭉과 눈을 맞춘 적이 있다. 간밤에 벌이라도 한 마리 다녀갔는지 낯꽃이 핀 얼굴은 열다섯 살 여자아이를 당황하게 했던 초경 빛깔이다. 선홍빛 꽃에서 그림색 향기가 났다. 친정집 뒤꼍에 밤꽃이 하얗게 피면 정신을 아득하게 하던 그 향기를 닮았다. 순간 내 얼굴이 발개졌다. 철쭉은 온몸으로 달거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달마다 꽃이 피지만, 철쭉은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모양이다. 그 대신 양도 많고 보름 이상 진득하게 머물다 간다.​

예전에는 나의 그곳에 꽃이 피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아릿한 통증의 비밀은 꽃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여자가 되는 걸 거부할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무리 궁리해도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꽃이 피는 날은 이른 아침 는개에 젖은 풀잎이 되어 온몸이 질척했다. 한여름이면 달을 건너뛰고 싶은 적이 몇 번이었던가. 나의 속내가 뭔지도 모른 채 꽃은 숭고한 사명을 지키듯 달을 거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곧이곧대로 약속을 지키는 순진한 여자아이 같다. ​

조물주가 만든 건 어디 놓아도 제 몫을 한다는 말이 있다. 세월의 나이테가 쌓이면서 꽃이 풀어놓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들렸다. 생명을 잉태하고 욕망을 배설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그곳은 우주는 품는 공간이었다.​​

꽃이 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리라. 꽃이야말로 우주의 발원점일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좀 더 성숙한 여자가 되었고, 몸으로 나누는 언어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듯하다. 때로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차례 꽃이 피었다 지고 나면 나의 몸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달빛을 따라 희뿌옇게 달뜨곤 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철쭉이 피었다. 흐벅지게 피던 모습은 사라지고 한쪽은 봉오리도 맺지 못한 채 잎사귀만 나왔다. 철쭉이 우리 집에 온 햇수를 가만히 떠올려본다. 벌써 육 년이 지났다. 동물은 인간의 나이와 세는 방법이 다르듯이 식물도 마찬가지인지 모르겠다. 철쭉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중년이 된 모양이다. 낯꽃이 사라진 표정은 한쪽이 텅 빈 듯하다. 꽃도 제대로 피지 못하면서 베란다만 어지럽힌다며 어머니가 치워버리겠다고 하신다. 그 말씀에 가슴이 심란해진다. 몇 송이 되지 않아도 꽃은 꽃이고, 내년에도 필 게 분명하다.​

지천명을 넘기면서 나에게도 변화가 다가왔다. 보름달이 기울어가듯 꽃의 양이 줄어들고 장미보다 요염하던 빛깔은 농도가 옅어졌다. 나에게서 떠날 채비를 하려는가보다. 막상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앞을 막고 싶은 건 무슨 심사일까. 전에는 그다지 반기지 않던 마음이 이기적으로 변했다. 나보다 먼저 꽃이 떠나버린 친구들처럼 짧았던 밤이 아득하게 길어지는 건 아닐까. 어떤 친구들은 난방기 앞에서도 얼굴이 붉게 물들고 땀을 흘린다.​ 여성을 잃는 모습을 보이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욕망이 퇴색하면서 꿈과 열정도 소멸하는 듯한 두려움이 앞선다. 머지않아 나의 그곳에서 피던 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빈 들판처럼 변할 모양이다.

​구순이 가까운 앞집 할아버지는 얼굴이 검버섯이 유난히 많다. 약주를 좋아해서 늘 발그레한 할머니에 비해 말씀이 없고 행동도 느긋하다. 표정이 없는 얼굴은 아무런 욕망이나 희망도 없이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것 같다. 오래된 시간이 그을음처럼 묻어 있는 모습은 여느 노인들과 다르지 않다. 가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아버지의 수줍은 일상을 듣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하늘색 공공근로 조끼를 입고 거리를 청소하거나 개천 옆 공터에 호박이나 가지 몇 포기를 가꾼다. 한여름이면 도드라진 등줄기에 달라붙은 셔츠에서 푸성귀 냄새가 난다.

요즘 들어 할아버지가 외출을 자주 하신다. 하늘색 조끼 대신 당신의 주름이 묻어 있는 셔츠를 입고 손에는 가방을 든다. 벨트를 맨 허리가 햇살에 흔들려도 가방을 든 손등에 혈관이 까맣게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한자능력 검정시험 2급에 합격하고 1급 시험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에 다닌다. 내친 김에 컴퓨터도 배우는데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며 걱정하신다. 의외의 모습에 놀라워하며 치켜세우자 수줍게 '심심해서 기냥 댕겨유.'하신다. 할아버지의 비어 있는 그 자리에 소박하게 핀 '희망'이라는 꽃이 보인다. 얼굴에 가득 핀 검버섯은 노년의 빈자리를 채운 꽃이리라. ​

들판은 추수를 끝내면 속을 허옇게 드러낸다. 햇살은 저만치 비켜 있고 겨울바람이 차지한 그곳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불임의 땅으로 보인다. 많지 않은 농사를 지으면서 해마다 들판보다 먼저 봄을 맞이한다. 두럭을 만들고 씨앗을 뿌리면 무거운 흙을 들추며 여린 새싹이 고개를 내민다. 들판은 겨울이라는 빈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생명을 잉태한다. 나의 그곳에도 새로운 꽃을 피우려고 한다. 그것은 농밀하지도 않고 이른 새벽 달빛의 잔영을 품고 있는 달맞이꽃처럼 소박하다. 꽃이 늘 화사하지 않듯이, 인생도 늘 봄만 있는 게 아니다. 새로 맞이하는 중년의 인생은 순전히 내 손으로 가꿔야하는 꽃이리라.

물속에 멍물져 있던 꽃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나와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게 아쉬운 모양이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 보지만, 잡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더는 미련을 갖지 못하게 짐짓 냉정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흐트러진다. 순진하게 내민 손이 머쓱하다. 아무래도 다음에는 달을 거를 것 같다. 물 내림 버튼을 살짝 누르니 꽃이 물을 따라 빙글빙글 돌면서 사라진다. 무언가 비어 있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하는 또 다른 표현인 듯하다. 씨앗 하나가 나의 그곳에서 꼬무락거린다. 다음에 필 꽃은 어떤 빛깔과 향기가 날지 몹시 궁금하다.

2016년 제8회 흑구문학상 대상 작품

 

시인한테 상상력이 주식이라면 체험은 부식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수필가한테 체험이 주식이라면 상상력은 부식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시에서는 상상력이 창작의 원천이 될 테고 수필에선 체험이 창작의 원천이 되지 않을까? 시든 수필이든 또 다른 장르든 언어로써 한 끼니의 식사를 차리기 위해서는 글의 밑천 즉 주재료와 부재료의 조합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문학이란 어떤 목적의 수단이 아니다.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성공한 글쓰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꽃’이라는 작품은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의 긴 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줄 모르게 술술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안정감을 유지하는 문장력 덕분이다. “철쭉은 온몸으로 달거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달마다 꽃이 피지만, 철쭉은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모양이다.” 여자의 숙명과도 같은 ‘달거리’를 철쭉에다 빗댄다. 한 장의 꽃잎으로 형상화하며 끌고 가는 힘이 돋보인다. 폐경과 갱년기는 1+1처럼 함께 오는 불청객이다. 몸 변화에 마음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숙연함이 행간에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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