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근처 공사장 외벽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 옆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들여다보지 마시오!이때 들여다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들여다보지는 않더라도 보고 싶은 욕망은 인간본능이다. 평범한 것도 금지시키는 순간 신비로운 것으로 탈바꿈하고, 가질 수 없기에 더욱 더 욕망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크 라캉은 간단명료하게 '인간은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라는 명제를 이미 세상에 던진바있다.
구약에 나오는 '10계명'을 비틀어 다시 해석해본다. 억지춘향이 될 런지 모르지만.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평범했던 이웃의 아내는 매혹적인 대상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금지된 것을 욕망하게 된다는 것인데, 웃고자하는 비유치고는 너무 많이 나간 걸까. 아무튼 가질 수 없기에 더 크게 보이는 것이 금지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먹으라는 채소는 안 먹고 몸에 나쁘다는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컴퓨터 게임만 좋아한다. 자크 라캉의 짧은 명제가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금지의 위력은 소박한 '소시민'들에만 적용될까. 시대를 앞서간다는 엘리트 집단은 교양과 지혜로 무장되었으니 금지의 힘을 가차 없이 피해갈 것이란 생각이 들긴 한데. 반드시는 아닌 것 같다. 결국 신이아니라는 말이다.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1918-2015)의 이야기다. 그는 박학다식했고 많은 분야에 탁월한 지식과 식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 수준의 지식인인 데다가 언변까지 뛰어났으니. 어떤 상대와 토론해도 밀리지 않았으며 예리한 논점, 세련된 어휘선택과 정확한 발음으로도 호평을 받은바있다. 구태여 흠을 잡자면 너무 완벽주의적인 성격 때문인데 주변 사람들을 자주 긴장시키곤 했다는 점이다. 그의 자서전, ‘아직 하고 싶은 말’(Was ich noch sagen wollte)에서 ‘어떤 다른 여성과 인연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누구인지 이름은 밝히지 않고, 단지 과거 한때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이라고만 했다. 그 여자는 유부녀로 두 딸의 엄마이고, 자신보다 17살 어린 자유민주당(FDP) 당원이었다. 독일 총리가 되면서 도의적으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헤어졌다고 고백했다.
영국의 처칠 수상(당시 60세)은 런던 사교계에서 유명한 도리스 캐슬로시(당시 33세)란 여성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은 그해 여름을 프랑스 남부 한 별장에서 함께 보냈다. 처칠은 도리스에게 ‘당신은 내게 축복이고 햇살’이라고 썼고, 둘은 매년 여름 그곳을 찾았다. 처칠은 이 별장에서 안락의자에 누운 육감적인 도리스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렸다. 그것도 무려 3장이나 그렸다. 도리스는 1940년 처칠이 그린 육감적 초상화 세 점 중에 한 점을 가지고 몰래 미국으로 떠났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처칠은 이 초상화가 누출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불륜은 그의 정치생명에 종말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리스는 그해 마침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림은 찰라에 회수됐다. 둘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미국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연애편지가 반세기만에 공개됐다. 당시 35세였던 케네디는 결혼을 한 달 앞두고 한 스웨덴 여성과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녀는 21세였다. 이들은 프랑스의 휴양지 리비에라에서 만났고 밤새 춤을 추며 열정적인 입맞춤을 나눴다. 하지만 3주 후 케네디는 예정대로 재클린과 결혼하게 된다. 결혼은 그들을 둘을 갈라놓았다. 불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야기다. 가톨릭교회는 그의 선종이후 그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렸다. 영국의 BBC방송국은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2016년2월15일에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오로 2세가 한 유부녀에게 30년 동안 보낸 절절한 러브레터(love letter) 다수와 여러 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캠핑도 스키도 산책도 함께 즐겼다. 1976년 9월 편지에서 이 여성을 교황은 '나의 사랑하는 테레사'라고 부르고 '신이 준 선물'이라 했다. 나중의 편지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그대는 헤어질 것을 말하지만 나는 대답할 말이 없군요.’ 다른 편지에서는 ‘나는 해답을 찾았소. 나는 바로 그대에게 속하고 그대의 것이오. 언젠가 내가 그대에게 건넸던 스카풀라(scapular·司祭의 겉옷)처럼 그대가 멀리 있든 곁에 있든, 그대는 늘 내 곁에 있소‘. 여성은 교황과 같은 폴란드 출신으로 미국 국적을 가진 철학자이며 작가인 안나 테레사 티미니카였다. 이 러브레터는 폴란드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것으로 모두가 교황이 보낸 것이며, 여성이 교황에게 보낸 편지는 한 통도 없었다. BBC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사제의 독신서약을 어겼다"거나 "순결을 깼다"고 말하진 않았다.
일부일처 문화는 모든 문명국가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금관옥조와도 같은 제도다. 중혼이나 외도를 금지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금지사항이고 도덕적으로 벗어난 행위임을 알고 있었기에 생긴 일이기도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되돌아옴'을 선택했다. 진화론적 이론을 구태어 접목해 볼 때, ‘더 많은’(양적 욕구) 짝을 추구하는 남성의 전략과 ‘더 나은’(질적 욕구) 짝을 추구하는 여성의 전략이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아무튼 금지는 평범을 신비롭게 만들고, 신비는 욕망을 이끌어 낸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린 인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