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물] 배익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이슈 인물] 배익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
  • 박기동 기자
  • 승인 2020.08.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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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공개 가능하다”
“간송본에 없는 묵서, 세종대왕 친필 가능성 높아”
진상규명과 취지훼손의 오해가 풀리면 한글날 이전에 공개 가능
상주본의 희소성이 빨리 빛을 볼 수 있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

 

배익기 씨가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 영인본을 펼쳐 들고, 간송본에 없는 상주본의 묵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황태 기자
배익기 씨가 훈민정음해례본 간송본 영인본을 펼쳐 들고, 간송본에 없는 상주본의 묵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황태 기자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3년 후, 세종 28년에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한문 해설서로 전권 33장 3부, 1책의 목판본)이 간행되었다. 훈민정음을 왜 창제했으며,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해설서였다. 그중 1940년에 안동에서 발견된 간송본은 1992년에 국보 70호로 지정되어 간송미술관에 관리되고 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인류의 소중한 문화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권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해례본이 2008년 7월 상주에서 나타났다. 국보 70호 간송본과 비교해 볼 때 ‘책의 크기가 원형을 유지하고 50여 글자 묵서(토씨)가 달려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전문가들의 평가와 주목을 받았으나, 소유권 분쟁 등 법정 다툼으로 이어져 안타깝게 상주본은 현재까지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세간의 이목은 10여 년의 세월동안 상주본이 온전히 보관되어 있는지에 쏠려 있다. 소유권 관련된 분쟁에서 대법원은 책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소장자인 배익기 씨는 소유권 무효화 소송을 제기하는 등 해법이 미궁에 빠져 있다. 2015년 3월 26일 화재 발생으로 행여 훼손되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도 존재한다.

지난 7월 하순 소장자인 배익기 씨를 만났다. 모두가 궁금해 하는 보관 상태와 실물공개 여부에 대해서 배 씨는 “화재 피해(2015년 3월 26일) 이후 공개된 2장 이외 나머지(모두 24장 중 22장) 부분은 국민들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더 이상 훼손이 되지 않게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배 씨는 덧붙여 해례본의 공개여부에 대하여 여건이 조성된 후 해결될 문제라 못박았다. 배 씨는 그 선결조건으로 “진상규명과 취지 훼손의 바로잡음”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배익기 씨(가운데)가 박기동 시니어매일 기자(왼쪽), 정인열 매일신문 논설위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황태 기자
배익기 씨(가운데)가 박기동 시니어매일 기자(왼쪽), 정인열 매일신문 논설위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황태 기자

구체적으로 그는 선결조건으로 진상규명을 원했다. 배 씨는 당초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상주본의 소유권 문제가 왜곡되어 진행된 점, 그리고 1천억 원이라는 보상을 바라는 불순한 의도로 잣대를 매기고 대가에만 집착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자신의 공개 의도와 순수성이 훼손된 점 등을 들었다. 그런 선결조건의 미해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소중한 문화재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상주본이 지닌 중요한 무한가치를 언급하고 전문 학자들이 이를 집중 연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배 씨는 “상주본에는 간송본에 없는 묵서 50여 글자가 있다”며 “이 묵서(토씨)는 세종대왕의 친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의미있는 자료다”라고 하였다. 배 씨는 그 이유로 “훈민정음 창제의 근본 뜻을 풀이한 해례본에 감히 묵서를 덧붙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신분의 사람은 세종대왕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아니라도 집현전 학자 중 정인지, 신숙주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배 씨는 그러면서 “2008년 최초 공개 당시 상주본을 접한 일부 학자가 묵서에 대하여 학자적 소견이 아닌 단순한 낙서(落書)로 간주하여 발표함으로써 상주본이 지닌 학문적 희소성에 먹칠을 했다”고 비난했다.

배 씨는 상주본이 지닌 또 다른 의미있는 가치로 “‘ㅇ, ‥, ㅈ’ 세 글자의 글씨체(글꼴)가 창제 당시와 현재 표기가 다르다”며 이에 대한 오류도 학계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올해 한글날 이전 상주본이 빛을 보게 하여 국민적 여망에 부응해 보면 어떻겠냐는 요청에 배 씨는 “지금까지 많은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대부분 중재자적 입장과 명분 쌓기용으로만 언급되다 말았다”며 “이제는 최종적으로 ‘청와대가 직접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방안’과 차선책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해 소장자에 대한 선(先) 보상 후(後) 정부가 개입하는 방안이 있지 않겠냐?”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개인적 바람은 국민 성금으로 소장자 지역에 박물관 등을 건립하여 범국민적 차원의 공감의 장을 마련하는 것 등도 다루어야 할 부분이라고 하였으나, 지금까지 겪은 심적 갈등과 논점에 벗어난 비난의 뼈아픈 경험이 앙금으로 쌓여 있어 일부 정치인들이 적당주의로 접근하는 방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창제 원리에 나타나는 방점으로 인한 오역으로 훈민정음의 근간이 크게 훼손될 수 있는 만큼 상주본을 통해 오역과 오류가 밝혀지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해 국민 모두가 여건을 조성하는 지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배 씨는 마지막으로 “이 소중한 문화재가 향토(경북+대구)에서 전문 사료관이 마련되어 이 지역의 문화적 자산으로 관리되길 바란다”며 나름의 희망도 피력하였다.상주본이 빛을 보기 위한 해결의 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실정법만 내세워 문화재청과 줄다리기만 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문화재 보전 측면을 가늠해 보면서 공익적 실익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쾌도난마 같은 발상의 전환은 없을까. 취재를 마치며 해결의 큰 실마리를 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길 간절히 바랐다. 알을 품은 어미닭과 알 속에서 부화되는 병아리가 힘과 지혜로 세상으로 나오는 ‘줄탁동시’의 슬기를 통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국민들 품으로 안기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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