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
조우
  • 김상규 기자
  • 승인 2019.03.12 18: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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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가을이 2019년 봄에 안기다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한 아파트 앞 정원에 활짝핀 산수유 꽃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한 아파트 앞 정원에 활짝 핀 산수유 꽃

 

봄비를 맞고 산수유의 노란 꽃이 만발했다. 성큼 다가선 봄 속에 엉뚱하게도 빨갛게 익어 쪼그라든 열매가 꽃과 어우러져 눈길을 끈다. 무슨 까닭일까. 세월을 뛰어넘어 꽃과 조우하는 열매에 빠져든다. 어떤 간절한 사연이 있어 살을 에는 찬바람을 버티고 여기까지 와서 머물고 있을까. 세월과 세월을 아우르고 나타남과 사라짐, 아픔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상상의 나래 위로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가 노란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성탄제(聖誕祭)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에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셨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