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지식 아닌 지혜로 세상 보는 혜안을
(78) 지식 아닌 지혜로 세상 보는 혜안을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0.08.1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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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홍언필의 일화다. 어느 여름날 홍언필이 사랑채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무언가 배를 누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떠보니 자기 배 위에 커다란 구렁이가 꽈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홑적삼으로 전해오는 구렁이의 차가운 느낌이 섬뜩하고 두려웠지만 몸을 움직이면 구렁이가 물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스스로 내려갈 때까지  꼼짝 못하고 두려움만 점점 커졌지만 소리 지를  수도 없어 속이 바삭바삭 타고 있었다. 그때 사람이 오는 소리가 들리며 여섯 살 나는 섬이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면서 그 무서운 광경을 보게 된다.

섬이는 잠시 보더니 그냥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 버린다.

홍언필은 아버지의 위급한 모습을 못 본 체하는 아들이 야속했지만 여섯 살이 뭘 하겠나 기대하지 않았다. 잠시 뒤 아들 섬이는 연못에서 잡은 개구리 3~4마리를 들고 들어와 살금살금 아버지 가까이에 가서 개구리를 던졌다. 개구리를 던지는 순간 구렁이는 잽싸게 아버지 홍언필의 배에서 내려가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 그제서야 홍언필은 일어나 숨을 몰아쉰다. 훗날 섬은 선조 때 영의정까지 오르게 되는 명재상이 된다.

'원님과 비단장수’이야기도 있다.

비단장수가 하루 종일 다니다가 피곤하여 산기슭의 산소 옆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비단이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고을 원님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목격자가 있느냐?

네 - 앞에 망부석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원님은 망부석을 포승으로 묶어서 관아로 끌고 들어오게 했고 이 모습에 사람들은 어리석은 원님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어대는데, 원님은 손가락질하며 비웃은 사람들마저 다 잡아들이게 해서는 나가고 싶으면 비단 한 필 씩을 가져오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원님의 명이라 거역하지 못하고 비단 한 필 씩을 원님에게 받치니 비단장수보고 네 물건을 찾으라고 해서 범인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위의 두 이야기에서 우리는 지혜로움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또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지혜라고 하면 알고 있는 지식을 적당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오늘날의 사회 변화를 보면서 우리에겐 이러한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노인들은 살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젊은이들을 지도하고, 젊은이들은 이러한 어른들을 잘 따라주어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였다. 이젠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인류 문명 발생이후 수천년에 걸쳐 쌓여온 지식이 최근 2~30년 사이에 만들어진 지식의 양과 비교되는 시대다.

이제는 날마다 엄청나게 불어나는 새 지식과 함께 어제의 지식이 오늘 쓸모없는 낡은 지식이 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날은 누가 새로운 정보를 빨리 접하고 활용하느냐의 정보 활용 능력이 지식인, 정보화 시대이다. 그런데 시니어들은 아직도 과거의 갑옷을 입은 채 오늘을 바라보려고 하니, 결국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시니어들을 보고 수구 꼴통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도 꼰대라는 대명사를 쓰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시니어들은 지식이 아닌 살면서 익혀온 지혜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