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원도심 인문학 카페 '백년어서원'과 시인 김수우
부산의 원도심 인문학 카페 '백년어서원'과 시인 김수우
  • 강지윤 기자
  • 승인 2020.07.29 10:0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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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리의 나무 물고기가 각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떼를 지어 헤엄쳐 간다.
삶의 가치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길을 찾아서...

 

떼지어 헤엄쳐 다니는 나무 물고기와  함께 한  김수우 시인.  강지윤 기자
떼지어 헤엄쳐 다니는 나무 물고기와 함께 한 김수우 시인. 강지윤 기자

부산의 원도심 중앙동은 부산역과 옛 시청이 있던 광복동 사이 지역이다. 개항기, 일제 강점기, 6.25 등을 거치며 부산의 행정과 상업 중심지이자 문화의 산실이었던 곳이다. 6.25 때는 헤어진 가족 상봉의 약속 장소로 유명한 ‘40 계단’을 비롯한 근대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인쇄거리도 그 중 하나이다.

그 인쇄거리 초입, 오래된 건물 2층에는 ‘백년어서원’이란 북카페가 있다. 이곳이 여느 북카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차’가 주인공이 아니라 ‘책’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2층으로 난 좁은 계단참을 오르다 보면 강의 시간표와 커리큘럼 안내문이 빽빽이 붙어 있다.

-신화를 읽다, 삶을 살다 <낭독의 여울>

-오늘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 괴테의 파우스트 <부산MBC부설 문화도시네트워크,백년어서원>

-소설, 이야기의 힘과 꿈을 찾아가다 <2020 상반기 소설반>

-눌 독서회 <연을 쫓는 아이>

-목소리 별이 되다: 노인과 바다 <낭독모임>

-시에 들다 <시집읽기모임>

-제9회 백년서평 공모 <문화사랑 백년어, 부산광역시 중구청> 

대충 보아도 삶의 가치와 길을 찾아나서는 인문학 중심의 강의와 모임들이다. ‘차 한 잔 주문하시면 부산의 인문학 운동에 작은 디딤돌이 됩니다’ 같은 글귀도 보인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한쪽 벽에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나무 물고기 수십 마리가 줄지어 있다.

그들 몸에는 自, 空, 言, 沈, 爲... 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가만히 보니 물살을 타고 한 방향으로 떼지어 헤엄쳐 가는 모습이다. 차를 마련하고 계산하는 카운터를 제외하면 모든 벽면이 책으로 가득하다. 어떤 칸은 시집으로, 어떤 칸은 평전으로, 또 다른 칸은 카프카의 것으로 채워져 있다. 책의 감옥에 들어선 느낌이다.

우리들 말에 귀 기울여 달라는듯 서가에서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  강지윤 기자
우리들 말에 귀 기울여 달라는 듯 서가에서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 강지윤 기자

그 책의 감옥 속에서 스스로를 유폐한채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니며 사는 이가 ‘백년어서원’을 경영하는 시인 김수우(62)다.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으며 2005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몰락경전’으로 ‘최계락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를 넘어 산문집 ‘쿠바, 춤추는 악어’와 평전 ‘호세 마르티’ 등 16권의 저작을 펴낸 김수우를 ‘백년어서원’에서 만났다. 그는 넓이 뿐만 아니라 깊이에도 이른 드문 사람이다.

-뵙기 전에 수우라는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물水, 비雨 정도의 자연현상을 생각했습니다. 찾아보니 지킬守, 어리석을愚 였습니다. 어리석음을 지킨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습니다. 세상이 너무 영악하고 약삭바른 계산으로 흘러 가는 것 같아 ‘수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필명이지요. 서예전시회에 갔다가 ‘수우’를 보고 계속 마음에 떠올랐어요. 어리석어지고 손해를 보자. 영악한 시대를 뚫고 나가는 정신이 될 것 같았습니다.

-‘백년어서원’은 2009년에 문을 열었더군요. 그때는 부산에서 제조업이 빠져 나가고 곳곳에 혁신도시들이 생겨나고 팽창하던 때였지요? 해운대구는 관광특구가 되고, 센텀시티가 IT, 영화정보, 전시컨벤션 등을 가져가며 벡스코, 영화의 전당, 초고층 아파트, 최대의 백화점 등 도시의 축이 해운대로 옮겨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때 하필이면 왜 버려진 원도심에 북카페를 열 생각을 하셨습니까?

오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너무 화가 났어요. 저는 부산 영도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입니다.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아버지가 정해준, 결혼할 남자를 찾아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 서사하라로 갔습니다. 그후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에서 10년을 살다 대전으로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문학활동과 학업에 10여 년을 쏟아 부었습니다. 원시의 땅에서 전혀 새로운 근원을 마주하며 보낸 시간이 글쓰기의 뿌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20여 년 만에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오니 원도심은 알맹이가 빠진 빈 껍데기였습니다. 문화판은 너무 엉망이었고요. 영화를 볼래도, 그림을 볼래도, 방송국도 모두 해운대로 가야했습니다. 그때 부산은 문화 불모지로 불렸어요. 해운대는 소비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인쇄거리는 텅 빈 채 쓰레기만 날리고 낡은 건물들은 벌집처럼 비어 있었습니다.

역사도 있고 부산의 관문이며,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같은 전국 규모의 시장이 있는 이곳을 다시 살려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인쇄거리 초입의 '백년어서원'. 텅 빈 거리의 씨앗처럼 뿌려져 이제는 오순도순 인문학의  텃밭이 되었다.  강지윤 기자.
인쇄거리 초입의 '백년어서원'. 텅 빈 거리의 씨앗처럼 뿌려져 이제는 오순도순 인문학의 텃밭이 되었다. 강지윤 기자.

-그런 곳에, 그것도 북카페를 열어서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현실적으로 부딪쳐야 할 일이나 개업 비용 등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제가 좀 무모해요. 준비를 철저히 하거나 따지면 아무 일도 못한다고 생각해요. 죽으면 죽으리라 뭐 그런 마음이었지요. 마침 그때 한국 문화예술위원회에 공모해서 창작지원금 1천300만 원을 상금으로 받았습니다. 5백만 원으로 시집을 내고 남은 돈이 있었어요. 그 돈으로 계약했습니다, 전세 5백만 원에 달세 35만원에 세를 들어 저의 아버지와 아들이 수리하고 칠하고 했습니다. 올해 87세인 아버지는 오랫동안 원양어선 선장으로 일했습니다. 전기와 기계를 잘 만지시니까 지금도 맥가이버 할아버지로 불리며 온갖 수리를 다 해주십니다.

-백년어라는 물고기가 실재하는 이름인가요? 북카페에 서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궁금합니다.

서각하는 친구가 있어요. 오래된 시골의 옛집을 허물어서 나온 폐목을 땔감으로 쌓아 놓았대요. 아궁이에 집어넣고 타는 걸 보고 있노라니 너울거리며 타는 모양이 물고기가 말을 하는거 같더래요. 꼬리와 입만 다듬으니 물고기 모양이 되는 거예요. 그게 신기해서 하나씩 다듬고 이름을 붙이고 서각을 했지요. 그걸 보니 마음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와요.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나무가 목재로 자라는데 30~40년, 집으로 서 있는 시간까지 100년은 넘었을거 같아요. 100은 우리말로 온이라 해서 완전함을 뜻하지요. 수직으로 백년을 서 있다 수평으로 헤엄치며 흘러가는 물고기 백 마리만 있으면 뭐라도 하겠다고 했더니 어느새 친구가 백 마리를 만들어줘요. 그게 계기도 됐지요. 또한 물고기는 인류 문명사에서 깨어있음의 상징입니다. 깨어있을 때나 잠을 잘 때, 죽어서도 눈을 감지않는 물고기처럼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뜻이군요. 백마리의 물고기가 인문학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며, 삶의 가치를 찾아 나서는 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라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 건 언제부터였나요.

어릴 때 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어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었지요. 중학교 땐 등하교 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곳이라 버스를 타야 해요. 돌아올 때 차비는 학교 앞 대본집에서 책 빌리는 데 쓰고 걸어 다녔지요. 한참을 들락거리고 나니까 아저씨가 그래요. “야야, 이제 니가 볼 책은 없다” 가난한 집이라 전깃세 아낀다고 일찍 불을 꺼요. 아버지는 배 타고 바다에 나가시고 엄마가 잠들고 나면 몰래 일어나 밤새 책을 읽어요. 그러니 공부는 뒷전이지요. 하루는 상담실에 불려 갔는데 나중에 보니 무분별한 독서로 인한 정서장애라고 써 있더라구요.

전 중학생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어요. 자꾸 생각하다 보니 안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도 없어요. 어차피 내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아버지가 신랑감을 구해놓고, 아프리카로 결혼도 안 한 사람에게 가라고 할 때도 갔어요. 죽었다 생각하고 갔죠.(웃음)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 때문이거든요. 불안하기 때문에. 마음이 일어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그 생각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백년어서원’도 한 달만에 결정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하루 24시간이 주어집니다. 여기 와서 보니 끊임없이 선생님을 찾고 부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책 한 권 쓰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시간을 어떻게 쓰길래 열 여섯 권의 책을 쓰고 쿠바까지 다녀오며 책을 쓰신 건가요. 그 많은 성과물을 내는 데는 비결이 있을까요?

바쁘고 부지런하다는 말이 부끄럽기도 하지요. 무슨 일이든 잘 하지는 못해도 꾸준히는 하죠. 시댁도 친정도 형제가 많은 집이라 일이 많아요. 저는 단순합니다. 서운한 일이 있어도 그 순간 지워버려요. 마음이 복잡하면 일을 못하게 돼요. 근심하는 게 있으면 바로 번민을 지워버리고... 그 전날 하던 고민을 또 하고 있으면 일을 진행하기 힘들어요. 오해 받거나 손해를 봐도 넘어 가면 그게 지혜인 거죠. 빨리 포기하고 단순하게 눈 앞의 일에 마음을 쏟는 거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지요.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시집에는 2cm짜리 단풍나무 묘목의 비밀을 들여다 보는 시도 있고, 사하라 사막이 바다였던 몇 십만 년 전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마치 현미경으로 나노의 물질을 보다가 천체망원경으로 우주의 비밀을 캐내듯이요. 흔히 시각(視覺)을 바꾸는 건 어렵다고 합니다만...

코끼리는 코로 나무둥치도 들지만 풀씨도 든다고 해요. 담대하고 섬세하라고 글쓰는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불가에서 하는 얘기처럼 ‘만법귀일’인 거죠. 글 쓰고 백년어하는 게 하나인 것 처럼 우주가 돌아가는 일이나 작은 씨앗의 일이나 자세히 살피고 감각을 훈련하는 일이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달라이 라마가 환히 웃으며 맞아준다.  강지윤 기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달라이 라마가 환히 웃으며 맞아준다. 강지윤 기자

-어려운 환경 조건일 때 ‘백년어서원’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부산 인문학의 탯자리가 되었습니다만... 그간의 이야기를 좀 들려 주시지요.

허허벌판 같은 곳에 ‘백년어서원’을 열었는데 지금은 이곳이 원도심 창작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또따또가’라는 이름으로. ‘따’로 활동하지만 ‘또’같이 활동한다는 뜻이지요. 이 일대의 텅 빈 점포나 사무실을 시(市)에서 임대하여 다양한 장르의 지역 예술가에게 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형, 음악, 사진, 문학 등 다양한 창작활동과 전시, 공연, 출판, 시민 교육 프로그램 등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3년 계약이 끝나면 또 따른 사람에게 기회를 줍니다. 그게 벌써 4번째가 되니까 여기 있는 작가들이 예술인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서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니까 협업이 되고 활성화가 되는 거죠. 예술문화축전, 골목프로젝트, 아트 페스티벌 등 생활 문화의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원도심이 살아나는 씨앗이 된 거네요. 보람이 크시겠습니다. 아무래도 아프리카 얘기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글에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가 아니라, 사막 한복판에서 아기도 낳고 그들의 배고픔과 가난과 모래바람, 근원의 시간에 대한 깊은 묵상 같은 걸 느끼게 됩니다. 그 곳에서의 경험이 인문학 운동과 상관이 있을까요.

비행기에서 보면 사막은 텅 빈 공간처럼 보이지만 하루종일 모래가 바람에 날리고 뿌리 뽑힌 가시 덤불이 굴러 다니는 곳이에요. 땅에서 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염소나 양들은 비닐이나 박스를 뜯어먹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닙니다. 한 달에 한 번 식량 실은 배가 들어와야 가게들이 움직여요. 사막은 너무 가난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래밭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합니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매일 기도하며 삽니다. 정신으로 물질을 이겨내며 살아가지요. 우리는 정신을 물질로 바꾸어 버렸어요. 나 혼자 배부르고 좋은 차 탄다고 좋은 세상인가라는 거지요.

제가 들은 경험담 하나를 얘기할 게요. 어느 젊은 친구가 귀농을 했어요. 밭을 일구어 양파를 두 이랑 심었대요. 양파가 너무 잘 됐대요. 2만원이더랍니다. 산양을 기르면 수입이 좋대서 길렀더니 500ℓ에 5천 원을 받았답니다. 너무 분하고 속이 상하더래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파는 양파답게 산양은 산양답게 잘 자랐는데 돈이 안 되는 게 문제인 거죠. 정신을 물질로 바꾸는 사회에서,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일, 거기서 의미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년간 하루 8시간씩 일하며 사는데 돈은 한푼도 집에 가져간 적이 없어요. 남편도 처음엔 못 받아 들였지만 지금은 계단도 고치고 청소도 도와 줍니다. 대신 내가 여기서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펴 내는걸 보고 이해하는 듯합니다. 마치고 집에 가서 저녁 식사후 11시면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또 백년어 일은 누군가가 늘 도와줘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쿠바’에 대한 책을 두 권 쓰셨습니다. ‘쿠바, 춤추는 악어’와 ‘호세 마르티 평전’입니다. ‘쿠바’도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450페이지에 달하는 쿠바 문화 보고서입니다. 쿠바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지요.

2013년 ‘한국문화예술회작가’에 공모해서 쿠바를 가게 됐습니다. 인간은 가졌던 시간, 배웠던 걸 이용하면서 살 수 있는거 같아요.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쓰던 스페인어와의 인연으로 쿠바를 가게 됐습니다. 다녀오면 책을 내리라 하고 쓰던 원고를 들고 갔는데 분위기가 우리랑 너무 달랐어요. 사람들이 거리에서 너무 행복해 보여요. 가난한 사람들이 깔깔거리고 살아요. 왜 그런가 궁금해서 내가 가져간 공부거리 다 젖혀놓고 그 사람들 사는 걸 들여다 보기 시작했죠.

이 사람들이 왜 행복해 보이나. 그런데 가는 곳마다 ‘호세 마르티’ 동상이 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사회주의가 만들어낸 영웅인가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니에요. 불안하지 않은 사회,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 나라였어요. 그 사상의 뿌리에 ‘호세 마르티’가 있는 거에요. 국부처럼요. 그의 작품 27권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내가 고민했던 부분이 이 사람 사상에 다 들어 있어요. 6개월 만에 돌아와서 2015년 다시 쿠바에 갔습니다. 19세기에 씌어진 원전이니까 해독이 불가능한 것도 많았습니다. 지도해줄 선생님을 찾아, 죽을만큼 힘들게 고생하면서 ‘호세 마르티 평전’을 썼습니다. 그를 이해하면 쿠바 역사와 혁명, 사회와 문화 등을 이해하게 됩니다.

책의 바다의 작은 서가. 강지윤 기자
책의 바다의 작은 서가. 강지윤 기자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백년어서원’ 활동의 비중을 글쓰기에 두고 싶습니다. 글쓰기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진실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일이고 또 한 권의 책으로도 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물고기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이를 주제로 씌어진 글들이나 비평, 시, 서평, 등 여러 사람의 글들을 모아 계간지 '백년어'를 발간해 왔습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책이 40호를 넘겼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되는 일은 아니지요. 백 마리의  물고기마다 분양을 받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매달 보내 주시는 후원과, 시간과 마음을 내서 인문정신을 실천하고 키우는 손길들이지요.  먼 데서 차 한 잔 마시러, 책 한 권 구하러, 강의를 들으러 걸음하여 주신 모든 분들이 바다가 되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일 년에 한 번 '백년어 서평'을 공모하고 시상도 하고 있지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궁금해 합니다. 우리에겐 어떤 강의가 도움이 될까요?

강의보다는 토론을 해 보고 싶습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죽음의 지혜’같은... “가치있는 죽음은 무엇인가? 삶은 가치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라고 ‘호세 마르티’는 얘기합니다. 나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장맛비가 추적거리는 오후 그와 긴 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산골 옛집에서 헐려 나온 폐목을 다듬어 물고기를 깎아 저마다 이름을 달아주자 그들은 지느러미 펄럭이며 물살을 갈라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다. 지금 우리가 갇혀 있는 진퇴양난의 세상도, 수직으로 서 있던 나무가 수평의 바다를 헤엄쳐 가듯 속도와 능률로부터 좀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연대와 이해. 공존과 보듬같은 너른 대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