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톺아보기] 손진은의 '만두-시를 위하여'
[문학 톺아보기] 손진은의 '만두-시를 위하여'
  • 김채영 기자
  • 승인 2020.10.14 10:00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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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은의 '만두-시를 위하여'

 

나는 속이 어른어른 비치는 만두를 좋아한다

모양을 빚기도 전에 굳어버린 반죽,

너무 많은 재료를 쑤셔넣어

속살 터진 건 재미가 덜하지

햇볕에도 그늘에도 쉬 속을 보이지 않는

피를 한 입 베어 물면

으깨진 재료들이

차려놓은 오늘의 식탁이 보인다

 

제 살 닳아버린 줄도 모르고

해와 달, 다른 데서 온 낯선 것들이

둥글게 부풀어 숨죽이는

그 고통과 설렘이 살짝 익은 것이

만두에는 들어 있어야 한다

한 입에 쏙 들어가지만

아까워 단숨에 먹지 못하거나

먹고 난 뒤에도 입속에 가슴 속에

열두 광주리의 풀무로 부풀어오는 것

 

잘 빚어진 것 같지만

다른 이가 배달한

숨도 죽지 않은 재료를 잔뜩 넣은 얼굴

쓰레기 단무지를 잔뜩 넣은 얼굴

만두는 그런 게 아니지

해와 달 그림자와 이슬,

천천히 그들 키운 것들의 상처와 고통, 한숨도

둥글게 아름작거리는 마음의 형상

마침내 난 꿈꾸지

여백 깊은 쟁반 하나가 화동그라니 받쳐든

지구라는 부푼 만두 하나를

 

 시집 『고요 이야기』 문학의전당. 2011. 11. 20.

 

흔히들 만두를 제갈공명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 유래를 찾아보면 사실이 아니라고 나온다. 어쨌거나 오늘날까지 먹거리로써 사랑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갖가지 재료를 다져 소를 만들고 그것을 밀가루 피로 감싸서 솥에다 찌면 만두가 완성된다. 고기가 주재료면 고기만두, 김치가 주재료면 김치만두, 사이즈가 크면 왕만두라 불린다. 13년 전 중국으로 문학기행을 갔을 때다. 인솔교수께서 북경대학 교환교수로 지내며 인연이 됐다는 현지인이 우리 일행을 만두전문집으로 안내했다. 나는 태어나 그토록 맛있는 만두는 처음 먹었다.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가뜩이나 향이 강한 중국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하던 터에 만두만은 국경을 초월하는 음식이었다.

손진은의 '만두-시를 위하여’를 읽는다. ‘나는’으로 시작한다고 반드시 시인 자신이라 장담할 순 없다. 화자, 즉 시를 끌고 가는 대리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속이 어른어른 비치는 만두’를 ‘교자’라 하던가. 만두는 역시 피가 얇아야 맛있다. ‘너무 많은 재료를 쑤셔넣어/속살 터진’ 만두든 인생이든 과해서 좋을 건 없다. ‘해와 달, 다른 데서 온 낯선 것들’이라 함은 온갖 부재료들의 출처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한 입에 쏙 들어가지만/아까워 단숨에 먹지 못하’는 대목에서 침이 고인다. ‘쓰레기 단무지를 잔뜩 넣은 얼굴’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안겼던 쓰레기 만두소 사건을 떠올린다. ‘지구라는 부푼 만두 하나’ 만두를 지구와 나란히 놓으며 시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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