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모든 소주, 내 손 안에 있소이다"-수집가 유영훈 씨
"전국의 모든 소주, 내 손 안에 있소이다"-수집가 유영훈 씨
  • 도창종 기자
  • 승인 2020.07.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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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병 25년 발품팔아 작업실 전시장 꽉 채워
담배, 성냥, 호롱, 술, TV, LP판 라디오 등 수만점
집에 두기 벅차 40평 전시장에 소장
"지자체서 근대생활박물관 짓겠다고 하면 기증" 생각
전국 소주병도 셀 수 없을 정도
금복주회사 소주만 가지고 전시장 꾸미고 싶어
수집가 유영훈씨가 소장한 소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창종 기자
수집가 유영훈씨가 소장한 소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창종 기자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불과 30여 년 前 우리 국민들 중 절반 가량이 우표를 수집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우표는 놀이문화가 별로 없었던 아이들에게 한 웅큼의 구슬이나 딱지와 물물교환할 수 있었던 보물이었다. 중·고등학생들은 외국우표를 모으고 보며 세계 역사와 지리를 익히기도 했다. 어른들은 ‘고상한 취미’로 자랑하면서 외국, 우리나라 희귀한 우표를 ‘돈’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우표 수집의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달라졌다. 이제는 누구나 하는 평범한 수집은 따분하며,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남들이 다 모으는 걸 따라서 수집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 생각하며, 남들이 수집하지 않는 특별한 이색 수집가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겐 관심 없는 쓰레기일지라도 내 눈에는 보물이며 귀한 존재이면 그만인 것이다.

유영훈(55) 씨의 수집은 중학교 다닐 때 부터 취미로 우표를 모으며 시작됐다. 25년 前 회사일로 지방으로 출장 작업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철거 중인 구멍가게에서 '평생의 수집품'과 만나게 됐다. 그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유영훈 씨가 모은 소주와 담금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도창종 기자
유영훈 씨가 모은 소주와 담금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도창종 기자

 

그는 애주가도 아니다. 주량도 소주 1병을 넘지 못한다. “술 마시는 것을 즐기고 좋아했다면 어떻게 25년간 이 많은 소주와 술들을 이렇게 모았겠습니까, 아침·저녁으로 한 병씩 다 마시고 없앴겠지요, 허허.”

대구에서 살고, 경북 성주(星州) 작업장으로 출·퇴근하는 그는 25년 넘게 따지 않은 소주병과 빈 소주병을 모아왔다. 부(富)와 교양의 상징인 술 양주, 와인이 아닌 가격이 저렴한 소주를 수집한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 씨가 지금껏 전국으로 발품 팔아 모은 소주, 맥주, 전통주, 민속주가 수만여 병. 그중에서 소주만 대략 1만여 병 정도이다. 이 술들은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그의 40평 전시장을 장식품처럼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1950~60년대, 70년대 소주들이 전시장 한 쪽을 차지하고 있다. 

오랫동안 소주 수집을 해온 그는 우리나라 소주에 대한 지식도 해박할 수 밖에 없다. “1960~70년대 소주병 상표에는 학, 거북이, 원숭이, 두꺼비, 신선(神仙), 소나무 등 십장생(十長生) 과 영험한 동물, 사람을 소주회사들이 많이 사용했죠. 즉 술을 마신다는 것은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였겠죠. 70년대는 금복주 회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처음 코팅병 생산을 했고요. 지금은 시대가 변해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아져, 소주 도수를 낮춰, 여성들도 부담 이 마시기도 하죠.“

전국을 다니며 직접 발품을 팔아 소주병을 수집해온 그도 녹록지 않은 시간을 보냈겠지만, 가족들도 덩달아 고생해 자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표수집으로부터 시작된 수집여행

-근대사 자료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주는 문화적 고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시대는 새로운 물건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니, 한 번씩 사용하고는 다 버린다. 과거에는 상품의 유행 주기가 길어 물건에 대한 소비자들의 애정이 많았다. 그래서 아날로그 시절 물품들이 디지털 시대를 사는 아날로그족(族)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것 같다. 전국의 소주도 지금 복고풍 바람이 거세게 불고있지 않은가. 좋은 시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대구·경북 지역에 관한 근대사 자료들은 많은가

▶특별히 지역에 국한해서 소주와 근대사 자료를 수집하지는 않았다. 다만 소주병만은 대구·경북 소주 금복주에서 생산한 것들이 많다. 각종 소주병들은 전국으로 찾아 다니면서 모았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금복주 혹은 전국 소주만 가지고 전시관을 꾸미고 싶다. (그는 현재 네이버 카페 '팔도소주사랑방'에서 팔도소주 매니아 로, ‘작은아이들’은 팔도소주로 통한다.)

-수집가들은 특별한 취미가 없다고 한다. 수집 외 다른 취미는 없는지.

▶최고의 취미는 수집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달에 2~3번 정도 산에 약초를 캐러 가면서 등산도 한다. 앞으로 퇴직 후 카페, 소주전시관을 만들려고 하면 우선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 갖고 있는 수집품에 대한 목록을 대략 소개해 달라. 수집가들은 자기가 번 돈을 거의 자료 구입에 다 붓는 것 같더라.

▶나도 정확하게 몇 점인지 모른다. 크게 보면 담배, 성냥, 호롱, LP판, 산약초술, 텔레비전, 라디오. 전국 소주, 약주, 전통주, 등등 50년대부터 현재까지 생활에 관련된 물건들이다. 물건들이 너무 많아 집에 다 보관할 수 없어, 현재 성주 전시관으로 전부 옮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집에 대한 경비는 약 2억 원 이상 지출했을 것 같다.

-수집을 하면서 정말 어렵사리 구한 것도 많겠다. 가격이 높은 소주는 얼마 정도 하는가, 가격도 궁금하다.

▶수집을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 한 달에 2~3번 정도 김천, 고령, 가산 등 경매장에도 다니고, 산에 약초를 캐면서 빈병을 모으기도 했고, 골동품상회, 고물상회, 경매사이트, 오프라인 사이트 등도 뒤졌다. 한 번은 제주도에 계신 분이 귀한 소주가 있다고 해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가서 술을 구하기도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술 중에서 가격이 제일 높다고 생각하는 술은 희귀한 50년대 생산된 병마개가 따지 않은 소주병이 아닌가 생각한다, 잘은 모르지만 소주 수집가들 사이에서 병당 2~3백만원 정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다.“

-수집을 하는데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어떤 걸 구입할 건지, 또한 그 물건이 어디 있는지, 가격은 어떻게 흥정해야 하는지, 물건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그런 게 수집  초보자들이 궁금할 것 같다.

▶수집가는 개개인의 테마가 있듯이 자기만의 수집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오래 수집하다 보면 필요한 수집품을 판매하는 곳을 알 수도 있고, 오랜 경력의 수집가를 만나 조언도 듣고, 발품도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의외로 가격이 낮을 때도 있고, 상상 외로 가격이 높을 때도 있다. 그래서 수집을 하면서 주의할 점은 무조건 구입하면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수집가는 거의 구도자(求道者)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좋은 수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자료를 연구해 발표할 예정이 있나.

▶소주 관련 논문은 좀 거창하고, 소주와 근대사 관련 자료 전시장은 술을 조금 더 모은 후에 열 계획을 하고 있다.

-수집품을 돈 때문에 모으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향후 계획은.

▶수집품은 내가 모은 것이지만, 결국 내 것은 아니다. 귀중한 근대역사 자료들이다. 퇴직 후 내가 가진 자료들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근·현대사 전시관을 만들어, 지난 근대 생활역사를 알리고 싶다. 또한 전시장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지나간 전통생활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싶다. 요즘 신세대들은 우리 생활사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과거의 흔적을 모르고선, 멋진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고 본다. 혹시 지자체에서 근대사 박물관을 짓는다면 기증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또 아들이 둘 있는데 수집품을 이해해주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성주(星州) 이 자리에 생활사 카페 전시장을 만들어 노후를 아내와 같이 봉사하며 보내고 싶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언제나 서민의 애환을 달래준 건 비싼 고급술이 아니라, 소주였죠. 소주엔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구석구석 묻어 있고요, 훗날 제가 우리나라 소주전시관이라도 하나 차리면, 서민들의 주류문화 추억의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요.“